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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도 푹 빠져버린 철학자, 30년 은둔생활이 남긴 ‘삶의 지혜’
아인슈타인도 푹 빠져버린 철학자, 30년 은둔생활이 남긴 ‘삶의 지혜’
  • 홍성광
  • 승인 2023.02.17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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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664쪽

평생 무시만 당하다 세계적 반열에 올라선 비관주의자
상아탑 갇힌 강단 철학과 달리 에세이에 생활 철학 담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원제 『Parerga und Paralipomena』, 1851)의 개정판을 내는 기회에 기본적인 교정을 하는 이외에 부족하다 싶은 부분을 다시 보강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일반 독자가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이 담긴 장을 중심으로 보충했다. 그리하여 ‘사물 자체와 현상의 대립’, ‘범신론’, ‘저술과 문체’, ‘논리학과 변증술에 대하여’, ‘신화’, ‘심리학적 소견’, ‘관상론’, ‘소음과 잡음’ 그리고 ‘색채론에 대하여’ 장(章)이 새로 들어가게 되었다. 해설도 더욱 풍부하고 충실히 만들어 그의 의지 철학, 행복론과 인생관, 종교관을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은 『소품과 부록』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소품(Parerga)’에서는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을, ‘부록(Paralipomena)’에서는 주로 인생과 관련되는 심오하고 유익한 글들을 추려서, 편의상 ‘행복론’과 ‘인생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특히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은 출간 즉시 독일 교양 시민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쇼펜하우어의 방대한 에세이가 지식인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과 여성들로부터 갈채를 받음으로써, 뒤늦게 그의 주저였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9, 1844)가 새삼 세인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대중과 유리된 기존의 공허하고 난해한 철학과는 달리 쇼펜하우어의 에세이는 우리의 피부에 와닿는 생활 철학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 무시와 냉대를 당했던 비관주의 철학자가 만년에 세계적인 철학자의 반열에 올라서면서 행복을 만끽하며 강단의 철학 교수들을 비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쇼펜하우어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의 에세이를 읽으면, 그의 도발적이고 독창적인 시각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그 자신이 죽기 전에 예언했듯이 그의 영향은 사후 150년이 지나도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이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명의 시간을 보낸 쇼펜하우어가 시련과 좌절을 겪고 은둔 생활을 하면서 갖게 된 삶의 지혜가 문장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에세이집이 세인의 인기를 끌자 마치 눈사태가 난 것처럼 사람들은 쇼펜하우어에게 새삼 열광했다. 35년 이상 극단적인 냉대를 당하던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덴마크의 키르케고르는 1854년 ‘문학 잡담꾼이나 기자, 작가들이 쇼펜하우어 때문에 바빠졌다’라고 썼다. 그리하여 저자는 곧 유럽 전역에서 철학자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바그너, 키르케고르, 톨스토이 등이 큰 감명을 받았고, 아인슈타인과 비트겐슈타인도 큰 영향을 받았다. 니체는 21세 때인 1865년 쇼펜하우어의 주저를 읽고 열광적으로 빠져든다. 그래서 니체가 신학에서 철학으로 방향을 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쇼펜하우어(1788∼1860)의 초상화 사진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저자는 책의 맨 앞에 세바스찬 샹포르의 글귀를 인용하고 있다. “행복을 얻기란 쉽지 않다.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 행복을 얻기란 매우 어려우며, 다른 곳에서 얻기란 불가능하다.” 그는 외부에서 사물 자체, 즉 의지로 가는 길을 구할 수 없듯이 행복도 외부에서가 아닌 자신에게서 구할 것을 권한다. 그는 삶의 지혜라는 개념을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위한 기술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러한 기술을 가르치는 지침을 ‘행복론’이라고 일컫는다. 그는 자신의 비관주의 철학이 행복론 개념에 부합하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보다 높은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을 탈피해 세속적인 경험적 관점에서 행복을 논하고 있음을 밝힌다.

쇼펜하우어는 이 에세이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로마, 그리고 괴테를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문학가들의 저서와 사상에 근거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는 이전의 다른 철학자들의 공리공론과는 달리 피부에 와닿는 실제적인 삶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다. 특히 그는 그동안 천시 받았던 몸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주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가 된다. 그리고 이 책은 독자를 검증된 옛 고전과 만나게 해주는 부수적인 긍정적 측면도 있다. 이와 아울러 그는 자신의 사상을 여기서도 줄기차게 설파하면서 자신의 난해한 의지 철학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홍성광 
번역가·독어독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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