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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권리’ 외면, 이렇게 대처하세요
‘소수자 권리’ 외면, 이렇게 대처하세요
  • 김수아
  • 승인 2023.02.17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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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성소수자 지지자를 위한 동료 시민 안내서』 지니 게인스버그 지음 | 허원 옮김 | 현암사 | 288쪽

성소수자 지지는 정체성이 아니라 연대 활동을 지칭
이미 획득된 게 아니라 끊임없이 행하고 배우는 일

올해 2월 3일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의 별세 소식이 알려졌다. 많은 성소수자들이 안타까움과 슬픔, 추모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런데 포털 서비스의 뉴스 댓글의 상황은 달랐다. 임보라 목사의 생전 행적을 비하하거나, 성소수자에 대한 맥락 없는 비하와 멸시 표현이 넘쳐났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삭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려는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관련 단체와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사회적 편견이나 일부 보수 세력의 반대에 묻혀버리고 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성소수자의 ‘앨라이(지지자)’가 되어서 해야 할 일과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그럴듯한 앨라이”이다.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의 공간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고, 그래서 사람들을 숨겨야 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어서 앨라이로 활동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지침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지침의 상당수는 미국 맥락에 맞는 것이다. 한국의 독자가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 포용적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접수 담당 직원에게 성소수자 관련 인식 교육하기’는 미국 맥락에서의 근본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성소수자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바라보아야 할 미래상과 그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한국의 맥락에서 이를 재구성해서 활용할 수 있는 지침도 적지 않다. 

이 책에서 앨라이로 살아가기에 대해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앨라이는 정체성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연대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이다. 앨라이로 살아가기는 이미 획득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행하고 배우는 일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언어적 편견의 교정, 직장과 학교, 단체 등에서 변화를 지지하기 위한 활동,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 제도적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다. 실용적 지침서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퀴즈나 예시를 통해 다양하고 현실적인 사례 속에서 앨라이가 해야 할 말, 할 수 있는 일과 하면 안 되는 말, 하면 안 되는 일들을 정리해놓았다. 흔히 하는 실수의 목록을 제시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되돌아보기를 권하며, 흔히 사람들이 제기하는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 추구’라는 문제제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덧붙여져 있다. 

최근 우리 사회 공정의 맥락은 ‘같은 것을 같게’하는 데 초점을 둔다. 여성폭력방지법이 있다면 남성폭력방지법이 있어야 공정하다는 주장이 통용되고 있다. 동성애 프라이드가 있다면 이성애 프라이드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을 완전히 진공 상태에 두고, 아무런 사회적 조건이 부여되지 않은 투명한 개인에게만 성립할 수 있는 논의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소수자의 권리 주장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회의 문제를 만났을 때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응대법을 제안한다. 

혐오와 차별의 철폐를 위한 구조적 변화 노력만큼이나 개인의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이 제도 혹은 민주주의(다수결)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상황에서, 성소수자를 교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바꾸었기 때문에 이 책의 제안이 필요 없어지는 미래를 기대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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