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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속 게임, 플레이어 어디 가고 ‘학습·교수자’만 남았나
교실 속 게임, 플레이어 어디 가고 ‘학습·교수자’만 남았나
  • 이은택
  • 승인 2023.02.22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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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게임과 학습』 이은택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146쪽

기술의 속성보다 사용법만 적용
참여하는 플레이어 경험이 본질

유행하는 교수법과 테크놀로지에 우르르 몰려들었던 많은 교육 종사자들이 시간이 지나면 중고 시장에서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메타버스가 그랬고, 올해는 챗GPT가 그렇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교실 안에서의 관계성은 변하지 않고, 변한 것이 없는데 새로운 교수법의 절차와 내용만이 소개된 것과, 테크놀로지의 속성은 무시하고 사용법만 익혀서 기존 수업 절차에 적용한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관성’이라는 가죽을 벗겨내지 않고, 겉으로만 새로운 것을 취한 결과이다. 

서론이 길어진 이유는 이 책을 ‘디지털 게임’이나 ‘보드게임’을 활용한 게임 활용 수업의 지침서로 오해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게임과 학습』은 게임을 수업에 적용하는 절차나 방법이 아니라 게임의 ‘본질’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게임과 학습』에서는 게임의 속성 중에서도 ‘플레이어 경험’에 집중하여 “왜 게임이 학습인지”를 밝혔다. 책 제목을 ‘게임 기반 학습’이 아니라 『게임과 학습』으로 정한 것도 게임과 학습을 같은 위치에 놓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임과 학습』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1940~ )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자크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가르치지 말라’고 했다. 처음 이 책에 접근할 때는 ‘무지한 스승’의 교수법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렇다면 교사의 역할은 무엇이냐?’, ‘교사는 없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질문으로는 무지한 스승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즉 무의식적으로 방법적 접근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런 질문은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반복됐던 것이다.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도,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도 ‘교사의 역할과 존재’에 대한 질문이 등장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등장으로 교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교사의 역할이 더욱 확장됐다. 

교실 속으로 들어온 게임 역시 ‘학습자 중심 교육’의 하나로 소개됐다. 그러나 교수자와 학습자의 구분된 관계에서의 게임 기반 학습은 게임과 점차 멀어지게 됐다.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게임과 달리 게임 기반 학습에 참여하는 사람은 오로지 ‘학습자’로 전락하게 됐고, 학습자가 된 플레이어는 교수자가 결정한 학습 목표·방법·내용에 따라 수동적으로 게임을 수행하게 됐다. ‘학습자’라는 용어의 이면에는 ‘교수자’가 존재하고, 교수자와 학습자가 가지는 ‘정의’ 때문에 각자의 정체성에 갇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임은 플레이어의 참여로 시작되고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게임은 책이나 영화와 달리 플레이어의 참여로 시작되고 완성된다. 책이나 영화는 독자나 관람객이 보거나 듣지 않아도 완성되지만, 게임의 경우에는 플레이어의 참여가 필수다. 예를 들어 바둑판과 바둑돌 자체를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다. 플레이어가 바둑판의 바둑돌을 놓기 시작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 자체가 게임이다. 그래서 게임 기반 학습에 게임의 원리가 잘 적용되기 위해서는, 게임 도구인 바둑판과 바둑돌을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플레이어에 의해 움직이는 게임의 과정 자체인 ‘플레이어 경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게임과 학습』의 1∼5장에는 게임 기반 학습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개념’을 정리했으며, 6∼9장에는 저자가 직접 현장에서 질적 연구를 통해 정리한 게임의 학습 경험의 주요 요소와 인사이트를 소개했다. 10장 ‘플레이어가 된 학습자’는 저자가 ‘학습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게임에서 정리했다. 게임 기반 학습에서는 교수자와 대칭되는 용어로 ‘학습자’보다는 ‘플레이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단어만 변용한 것이 아니냐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언어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인식과 배경이 담기기 마련이다. ‘플레이어’가 어쩌면 다가오는 미래교육의 ‘학습자’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이은택
고려사이버대 교수학습혁신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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