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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왜 대종교에 ‘치안유지법’ 적용했나
일제는 왜 대종교에 ‘치안유지법’ 적용했나
  • 장세윤
  • 승인 2023.02.24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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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임오교변: 대종교 탄압과 박해』 김동환·장세윤 외 3인 지음 | 선인 | 368쪽

종교운동 아니라 식민지 해방·독립운동으로 간주
일제의 탄압 법률에 대한 연구, 일본학계가 앞서

지난해 12월 26일은 일제 경무당국의 일대 대종교(大倧敎) 탄압사건인 대종교의 ‘임오교변’ 8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런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쇠퇴하여 존재조차 희미해진 대종교와 대종교 주도세력의 일제하 종교·독립운동은 잊히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 즈음해 공동으로 발간하게 됐다. 

 

‘임오교변(壬午敎變)’이란 1942년 12월 26일(음력 11월 19일) 일제의 허수아비 국가인 ‘만주국(현재 중국 동북지방) ’영안현(寧安縣) 동경성(東京城)에서 조선총독부와 만주국 경찰이 협동해 대종교 교주 윤세복 이하 간부 25명을 검거하여 박해를 가한 일련의 대종교 탄압사건을 가리킨다. 이때 사망한 10인의 대종교 간부를 대종교에서는 ‘임오십현(壬午十賢)’이라고 부른다. 교주인 윤세복의 무기징역을 비롯하여 김영숙 15년형, 이현익 7년형, 이재유 5년형 등 7인의 간부들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만주국 액하(掖河) 감옥에서 복역하다 1945년 8·15광복 이후 출옥했다. 

이 책의 끝부분에 부록으로 수록한 「임오십현 순교실록서(殉敎實錄序)」, 「십현(十賢) 약력」, 「기소역문(起訴譯文)」, 「구금고황(拘禁苦況)」, 「삼법회통(三法會通)」, 「대종교인과 독립운동 연원(淵源)」 등을 통해서 독자들이 대종교의 임오교변 수난사 관련 자료를 상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종교의 창도와 발전, 일제하 민족운동과 해방 이후 종교활동 등에 대한 주요 기록으로는 대종교 총본사(대종교 종경종사 편수위원회)에서 1971년에 비공식적으로 간행한 『대종교 중광(重光) 육십년사』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활자인쇄 단행본이 아닌 철필 등사본이고, 한자가 많아서 일반 독자들이 읽기가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대종교 중광육십년사』에 실린 중요 자료와 순교 인사들에 대한 기록을 알기 쉽게 재정리·수록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이 책의 간행은 국학연구소 김동환 연구원과 김종성 이사장의 노력, 그리고 롯데장학재단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필자는 이 책에 실린 「1942년 일제의 대종교 탄압과 치안유지법」 논문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나름의 새로운 해석과 평가를 반영해 보았다. 지금까지 상당한 조사․연구를 통해 ‘임오교변’의 실상은 거의 규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와 만주국 당국의 대종교 주도세력에 대한 ‘치안유지법’ 적용 탄압의 실상과 그 의미는 아직 규명되지 못했다. 일부 기록과 연구서 등에는 임오교변 당시 만주국 치안당국이 ‘잠행징치반도법(暫行懲治叛徒法)’을 적용하여 대종교 인사들을 탄압한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1941년 12월 제정된 ‘치안유지법’을 적용한 일대 조작 탄압사건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사실이다. 

이에 필자는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잠행징치반도법․잠행징치도비법(盜匪法)’을 검토한 뒤 만주국에서의 치안유지법 제정과 대종교도에 대한 치안유지법의 적용, 그리고 임오교변과 강철구․김영숙의 사례를 새롭게 정리해 보았다.

그 결과 만주국 당국이 대종교 세력에 대해 “국체변혁=조선독립”이라는 치안유지법 적용 기소(起訴) 의견을 그대로 적용하여 판결했던 사실은 대종교 요인들의 행위가 단순한 종교운동이 아니라, 식민지 해방운동 곧 독립운동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국체변혁은 명백히 식민지 ‘조선’을 일본제국이라는 ‘국체’로부터 ‘이탈’시키고자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해석(판결)된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일제(조선총독부와 만주국 당국)의 1942년 12월 대종교 대탄압(‘임오교변’)은 단순한 조작·처벌이 아닌 대종교의 민족(종교)운동적 성격과 활동에 대한 명백한 일대 탄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한편, 일제강점기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치안유지법 등 일제의 탄압 법률에 대한 연구는 한국학자들보다 오히려 오기노 후지오(荻野富士夫) 선생 등 일본학계에서 더 많이 연구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학계의 안타까운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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