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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을 의심하라…기억 아니라 ‘경험’이 사실
직관을 의심하라…기억 아니라 ‘경험’이 사실
  • 김선진
  • 승인 2023.02.24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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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지음 |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727쪽

수억 년 지구의 역사를 통틀어 만물의 영장으로 등극한 인간. 유약한 신체 조건을 극복하고 생태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생각하는 능력이었다. 인간의 문명을 일궈낸 인간의 지혜는 21세기를 맞이하며 자기 파괴적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 인간의 자본주의적 욕망이 초래한 전염병 팬데믹과 온난화의 확산이 초래한 전지구적 기후재앙이 인류와 지구의 종말 시계를 앞당기고 있다. 이제 그것도 모자라 인간들은 신냉전의 총부리를 서로에게 겨누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라는 영광스런 유산이 지금처럼 부끄러울 때가 있었을까.

세상의 많은 불행은 인간의 불합리한 판단과 선택의 결과다. 대표적인 사례가 푸틴이 위대한 러시아의 영광을 회복하겠다는 망상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한 지도자를 국민 대부분이 지지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의심은 이미 20세기에 충분히 확인됐건만, 인간은 여전히 역사의 교훈을 배우지 못한 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잘못된 선택의 바탕에는 잘못된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밝힌 사람이 바로 행동경제학을 창시한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대니얼 카너먼 교수다. 그는 2002년 심리학자로는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그가 쓴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은 인간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본성을 낱낱이 해부해 인간의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동안 행동심리학을 대중적으로 알린 책으로는 2017년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시카고 대학 리처드 탈러 교수의 『넛지(Nudge)』가 있지만 행동경제학의 원조인 카너먼 교수의 이 책은 행동경제학의 바이블로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생각에 관한 생각』은 공산주의 사상을 정립한 마르크스의 『자본론』, 진화론을 확산시킨 다윈의 『종의 기원』에 버금가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발했다고 감히 평가한다. 마르크스가 인간의 정치경제 권력의 욕망을 드러내고, 다윈이 인간의 신화적 믿음을 고발했다면, 카너먼은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 의심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그의 지성사적 업적이 절대 적지 않다고 믿는다. 인간 사고능력의 차별점은 자기를 객관화할 줄 아는 메타인지 능력에 있는데 그 메타인지의 최고봉은 바로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경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니얼 카너먼은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다. 사진=위키피디아

이 책의 미덕은 인간의 사고방식이 작동하는 원리를 다양한 심리 실험과 사례들을 통해 실증적으로 밝힘으로써 독자에게 자기 자신을 제삼자처럼 한걸음 떨어져 들여다보는 체험을 하게 한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감탄할 만한 부분은 책을 읽는 내내 반박할 엄두가 나지 않는 논리정연함과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사유의 깊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과 경제학이라는 사회과학 분야 서적이면서도 추상적 개념을 어떤 철학적 사색보다 명쾌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같은 학문 분야 연구자로서 탄복하게 된다.

인간 사고를 직관적인 ‘시스템 1’과 이성적인 ‘시스템 2’의 개념으로 구분한 것과 인간의 자아를 경험 자아와 기억 자아의 개념을 제시하며 비교한 부분은 탁월한 설명이다. 빠른 생각과 느린 생각을 유발하는 두 주체의 은유를 들어 인간의 정신작용을 다양한 예시와 함께 설명하면서 왜 인간의 사고가 다양한 인지적 편향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자아를 경험 자아와 기억 자아로 비교하면서 인간은 실제의 경험을 중시하는 경험 자아보다 편집되고 취사 선택된 기억 자아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 예시와 함께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두 인격의 은유적 비교를 통해 인간의 행복 체험이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 보여주면서 개인의 삶에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행복도를 높일 수 있는 제도적·정책적 가능성까지 제시하고 있다. 그는 또한 몰입 심리의 대가 칙센트미하이가 연구 방법으로 고안한 ‘경험 표집법’을 응용, 행복을 측정하기 위한 ‘일상 재구성법’을 개발했는데 이는 사회과학 분야 연구자들에게 매우 실용적이고 유용한 방법론으로 활용될 가치가 높다.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그럴수록 직관이 참조할 만한 과거의 경험들은 점점 무용하게 되고, 인간의 비이성적 판단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빈도는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이 어리석은 편향에서 벗어나 현명해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자기 자신의 성급한 직관을 의심하고 데이터에 근거한 통계적 판단에 기초하는 것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은 결국 잃어버렸던 사유의 힘을 복원해 인간의 현명함을 회복하고 주체적 자아의식을 각성케 함으로써 인간 행복을 증진하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김선진 
경성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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