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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위한 숙제
민주주의를 위한 숙제
  • 신희선
  • 승인 2023.02.27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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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저녁 뉴스를 시청하면 현실과 호흡을 잘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진실은 뉴스가 세상을 보는 당신의 시각을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지난 1월 함께 읽은 책 『휴먼카인드』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평소 학생들에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하니 날마다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라고 말해 왔기에, “뉴스를 멀리 하라”는 문장에 천착했다. 

저자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드 코레스폰던트(De Correspondent)>라는 대안 언론을 만들어서 심층보도에 기반해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다.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주류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챗GPT’의 등장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켜가고 건강한 시민의식을 어떻게 키워갈 것인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브레흐만은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일곱 가지 재앙과 마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당의 무력화, 시민간 불신, 소수자 배제, 무관심한 유권자, 부패한 정치인, 부자들의 탈세, 확대되는 불평등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가 현재 마주하는 실상이기도 하다.

요즘 ‘핫한’ 챗GPT에게 한국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질문해 보았다. 챗GPT는 빈부격차, 정치적 양극화, 부정부패, 국가안보, 고령화 및 환경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답했다. 문제는 지금의 한국 상황이 냉소와 혐오라는 비극적 경로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현정부를 ‘검사독재 정권’으로 규탄하는 야당과 이를 거칠게 비난하고 있는 여당의 대결구도에 정작 국민은 없다. ‘막말’이 오가는 정치 뉴스는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고 있다. 

브레흐만의 말처럼, 인간의 선한 본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극적이고 해로운 뉴스를 끊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뉴스는 네트워크를 따라 빠른 속도로 유통된다. 소셜미디어는 각자의 진영논리를 증폭시키는 시스템이 돼버렸고, 현실 인식의 간극도 정치적 입장처럼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안토니오 네그리가 말한 다중(multitude)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의 감시자(Watchdog)로서 언론매체의 역할이 부실한 상황에서 사회변혁의 주체로서 이들은 디지털 연결을 통해 일상의 이슈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있다.

은밀해진 권력에 조종되지 않는 ‘깨시민’이 민주주의를 나락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버팀목이다. 브레흐만이 “낡고 지친 민주주의를 괴롭히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강조한 것도 시민참여형 정치다. “차분하고 신중히 생각하는 대화”에 참여하는 그들이 희망이다.

2023년 봄 학기 개강을 앞두고 등장한 챗GPT는 교육 현장의 혁신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어떠한 질문에도 수 초 만에 답변을 쏟아내는 챗GPT에 암기로 경쟁하는 교육은 큰 의미가 없다.

AI에게 맡길 수 없는, 대체할 수도 없는 인간의 호기심과 질문능력,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해 숙고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무수한 정보가 범람하고, 가짜뉴스가 의도적으로 유포되는 디지털 환경은 비판적인 사고를 더욱 필요로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으려면 ‘디지털’에 대한 강조만큼 ‘리터러시’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우리 삶에 중요한 이슈를 찾아 분석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민주시민은 탄생한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에게 뉴스를 보며 세상을 읽고 대안을 생각해보자는 숙제는, 디지털 시대에도 포기할 수 없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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