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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대학의 위기, 과학기술은 어떻게 되나?
지역 대학의 위기, 과학기술은 어떻게 되나?
  • 전준
  • 승인 2023.03.06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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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과학 ⑤_지역 대학의 위기와 과학기술

과학이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과연 어떤 안목이 필요할까. 과학은 이해하기 힘들고 때론 소통이 힘들 때도 있다. 이에 화학을 공부하고 과학기술정책학을 전공한 전준 충남대 교수가 ‘과학의 과학’을 연재한다. 이 연재는 과학기술을 사회학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성찰한다. 다섯 번째는 지역 대학의 위기로 발생하는 과학기술의 교육-연구-인력 악순환 문제다. 그래서 완전한 연구중심대학으로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다음 문장에 눈길이 간다. “대학원생이 부족한 대학원은 연구 경쟁력을 잃게 되고, 경쟁력이 낮아진 대학원을 졸업한 인력들은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

 

대학의 위기는 지식의 위기다. 과학기술의 관점으로 보자면, 한국 대학의 위기는 한국 과학기술의 위기다.

과학기술사회학의 핵심 명제는 과학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다양한 답변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직관적으로는 과학기술이 개별 인간의 창의성의 우연한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기반 내에서 조직적으로 만들어지고 성취되는 사회적 결과물이라는 명제를 제시할 수 있겠다. 

우리는 과학기술이 번뜩이는 천재적인 영감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과학기술의 본질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국가 혹은 기업과 같은 권력 행위자들은 대학‧공공연구소‧기업연구소 등의 시스템에 비용을 투자하고, 일련의 교육과정을 통해 양성된 과학자들은 이러한 시스템 내에서 외부의 지원을 받으며 ‘직업으로서의 과학자’의 길을 시작한다. 이들의 일상 속에서 만들어진 과학기술은 과학자 사회의 동료평가를 통해 다듬어지고, 특허와 시장을 통해 구현되며,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즉, 과학기술은 사회의 틀 안에서 생애를 거치며 ‘수행’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대학의 위기는 교육·경제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의 위기이기도 하다. 한국 대학의 위기를 논할 때, 우리는 어떤 대학이 살아남거나 살아남지 못할지, 문을 닫는 대학들로 인해 지역경제가 위기에 처하게 될지, 더 나아가 지방소멸의 흐름이 되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한다. 수많은 연구 보고서들에 따르면 비수도권 대학들의 침체는 청년들의 미래 주거지역을 결정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대학이 침체되면 우수한 청년들이 지역을 떠난다. 매우 맞는 말이다. 그러나 대학이 근본적으로 지식생산의 장소라는 점에 대해 우리가 상대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학은 창조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는 학문 후속세대를 길러내는 곳이고,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이 이러한 후속세대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용광로이다. 대학이 문을 닫을 때, 창조적인 소우주 하나가 사라진다. 대학의 위기는 지식의 위기다. 과학기술의 관점으로 보자면, 한국 대학의 위기는 한국 과학기술의 위기다.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체계의 역사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고 압축적이다. 그 핵심에는 국가 주도의 연구소, 첨단분야를 개척하고 신규인력을 양성하는 대학, 그리고 공격적인 연구개발 투자로 경제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 사이의 연계가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체계는 무엇보다도 국가 주도로 설립된 연구소들을 근원으로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직후 남한의 대표적인 과학자였던 이태규가 “건국 설계의 하나로 과학기술부를 설치하자”는 칼럼을 발표했을 만큼이나 국가의 역할이 주목받았다. 

 

미국의 첫 연구중심대학으로 꼽히는 존스홉킨스대는 1876년 설립됐다. 전준 교수는 지역사회와 산업구조가 적극적으로 연계한 연구중심대 학(주립대학)을 강조했다. 사진=위키피디아

 

대학·국공립기관·기업의 R&D 3중주

실제로 광복 이후부터 1980년대를 아우르며 중소 규모의 국공립 연구소부터 KIST와 같은 대규모 국책연구기관들까지 그 전성시대를 누리며 국가의 연구개발역량을 견인했다. 1980년대에는 기업이 운영하는 사설 연구기관들의 양적·질적인 성장이 두드러졌다. 1980년 국가 R&D 예산의 38%를 차지하던 기업 연구기관의 비중은 1992년에는 73%까지 상승했다. 

과학기술처가 펴낸 1989년 과학기술연감도 “1980년대 우리나라 산업 기술의 핵심적 기술은 기업 부설 연구소에서 수행”됐다고 진단했다. 대학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기업 연구소들이 활성화됨에 따라 우수한 R&D 개발 인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높아졌고, 교육 기능에만 몰입하던 대학들이 1980년대를 거치며 연구 기능을 겸하게 된 것이 주요한 변화였다. 이처럼 불과 수십 년 동안 한국은 대학, 국공립 연구기관, 기업의 R&D 3중주를 구축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대학사회의 위기는 이러한 과학기술 연구체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우수한 석박사 인력들을 배출해온 국립대학들과 지방의 주요 대학들에 더는 대학원생들이 진학하지 않는다. 이는 거대한 악순환을 부른다. 대학원생이 부족한 대학원은 연구 경쟁력을 잃게 되고, 경쟁력이 낮아진 대학원을 졸업한 인력들은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방의 ‘대학원생’은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 기약 없이 서울을 배회한다. 

신진 연구인력이 탄탄하게 육성되지 못하면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체계는 극소수의 엘리트 인력들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도, 대다수 기업과 연구소는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하게 되는 이중의 난관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역의 우수 대학들에서 창조적인 에너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혁신의 씨앗이 될 수 있을 청년들이 그 길을 포기하고 방황하고 있다. 얼마나 큰 기회비용이 발생하고 있는지 우리는 다 알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대학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 완전한 연구중심대학으로의 총체적인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 미국의 주립대학들은 19세기에 걸쳐 지역사회를 위한 연구와 교육의 미션을 품고 설립됐다. 캘리포니아, 미시건, 위스콘신 등 일부 주들은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주립대학들을 길러냈는데, 그 핵심에는 지역사회의 산업구조와 적극적으로 연계한 연구중심의 대학 운영방침이 있었다. 이들 주립대학들은 전체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대학원생 지원과 연구비로 사용하며, 이렇게 축적된 연구 역량을 학부생들의 교육적 체험으로 순환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즉, 교육보다는 연구가 대학의 미션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역사회와 산업구조 연계한 연구대학

한국의 대학들 또한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대학의 미션을 재정의하는 차원의 혁신을 이루어 내야 한다. 단순히 학부생을 교육하는 것만을 존재 이유로 삼을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성과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평판을 바탕으로 학생 유치의 선순환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 필요하다. 모두가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관 재설립 수준의 조직개편,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 우수인력 유치를 위한 모험, 산업체와 국공립 연구기관과의 조건 없는 협력이 절실하다. 

교육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교육부의 지원을 받는 모든 대학이 고등교육의 저변 확대 기능에만 매몰될 필요는 없다. 일부 대학들에 대해서는 규제를 줄이고 과감한 구조적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개인이 아닌 사회와 조직의 결과물이고, 그 성공과 실패에는 명백한 정책적 요인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전준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과학기술정책학 석사를 했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회미래연구원에서 부연구위원으로 일했다. 현재 과학기술사회학, 환경사회학, 사회이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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