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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대학소멸의 길을 열고 있다 
국가가 대학소멸의 길을 열고 있다 
  • 안상준
  • 승인 2023.03.0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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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안상준 논설위원 /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논설위원

최대 관심사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의 시범지역 선정이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세종시를 제외한 모든 광역시·도 단체장이 신청서를 냈다는 후문이다. 한편에서는 교수단체들이 이 사업의 진정한 의도를 의심하며 사업의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즉 교육부가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기는커녕 지자체로 권한과 재정을 이양함으로써 지방대학을 포기하는 수순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강하게 표출한다.

시범지역 선정 기준은 지자체의 의지와 역할에 절대적인 비중(90점)을 둔다.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자체는 대학지원 조직·인력구성 및 향후 구성계획, 지역의 자체 대학재정지원실적(2021~22년) 성과 및 23년 계획, 대학지원 관련 제도 현황 및 위원회 운영 주요 성과 및 비영리법인 지정 설립·지정 계획 및 조직·인력 구성계획을 작성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실시한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사업(RIS)의 성과지표를 중심으로 지자체의 향후 대학관리를 위한 인력·조직·관리계획을 살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이 사업의 세부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세 가지 의문이 들었다. 첫째, 재정지원의 지속성과 안정성이다. “지역주도로 재정지원을 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 비영리 법인 지정 또는 설립 필요”라는 문구에서 장차 국가는 재정지원에서 손을 뗄 수 있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사업계획 공고문 붙임2의 RISE 구축 방안 설계도를 보면 참으로 근사해 보이지만, 누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느냐가 이 사업의 핵심이다. “2025년부터 대학재정지원사업 예산 50% 이상을 지자체 주도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그 액수는 2조+α에 불과하다.

OECD 고등교육재정 평균치에 가려면 7~8조 원이 필요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지자체가 그 정도의 의지와 역량이 있을지 의문이다. 전국의 도 산하 도립대의 현실을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온다. “도가 무슨 돈이 있어서 대학지원 재정을 조달합니까?” 소리 높여 반문할 도의원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둘째, 글로컬대학 육성은 광역시·도의 대학 선별화 작업과 다름없다. 지역의 한두 개 특정 대학에 5년간 1천억 원씩 지원한다고 한다. 지역의 어느 대학이 선정될지 보나마나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여기서 소외되는 대학은 도 산하의 도립대로 편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대학의 주인인 사립대 법인이 소유권을 쉽게 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 충원과 대학 등록금 인상이 충족되지 않는 한 사립대학은 몹시 곤혹스런 처지로 몰리면서 ‘좀비대학’으로 남게 될 개연성이 높다. 한편 중소도시의 국립대학은 어쩔 수 없이 도립화를 수용하면서 국립대의 지위를 잃게 될 우려가 크다.

마지막으로 이 사업 제목의 ‘지역’은 서울을 제외하는 듯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서울에 밀집한 이른바 상위권 사립대학들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서 지자체의 관리를 받는 상황을 수용하리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업은 ‘지역’혁신을 내세워 지방대학을 정리하는 사업으로 정의함이 타당해 보인다.

수도권과 지역, 국립과 사립, 상위권과 지잡대 등 현실에서 다양한 층위로 복잡하게 형성된 한국의 대학체제를 교육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감추면서, 그 책임을 지자체로 떠넘기고 대학이 사라지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처사나 다름없다.

이주호 장관의 교육철학은 ‘교육의 상품화’이다. 그는 5·31교육개혁의 실무자로서 대학의 다양화를 내세워 한국 대학체제의 난맥상을 부추겼고,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으로서 고교의 다양화를 내세워 자립형사립고 등 고교서열체제를 확립했다. 이제는 한국 대학체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지방 사립대와 중소도시 국립대를 정리함으로써 새로운 대학체제의 문을 여는 것은 아닐까. 

안상준 논설위원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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