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7:40 (금)
박안경기
박안경기
  • 최승우
  • 승인 2023.03.08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능몽초 지음 | 문성재 옮김 | 전6권 2588쪽 | 학고방

능몽초 원작의 정수를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완역본

중국에서 송ㆍ원대에는 직업적인 이야기꾼(‘설화인說話人’)이 관중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 행위를 ‘설화’라고 불렀다. ‘설’은 들려주기telling, ‘화’는 이야기story라는 뜻이다.

설화는 시각적인 효과도 중시했지만 주로 청각에 호소하는 서사 예술이었다. 따라서 단시간 내에 생생하고 명쾌한 서사로 관중에게 흥미를 유발하고 좌중을 휘어잡는 데는 추임새의 과장, 인물 형상의 만화화, 줄거리의 참신성, 구성의 치밀성이 흥행의 성패를 좌우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러한 설화의 대본인 ‘화본話本’이 ‘독서를 위한’ 소설로 선보인 것은 그로부터 삼사백 년 후인 명대부터이다.

상업 경제가 발달하고 크고 작은 도시들이 도처에 형성되면서 글자를 읽을 줄 알고 왕성한 구매력을 갖춘 도시인들이 주요한 문화소비계층으로 급부상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문화적 취향에 영합하는 통속적인 화본소설이 독서시장에서 각광 받고 다양한 아류작들이 잇따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렇게 독서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강화되면서 지식인이 송ㆍ원대 화본의 틀을 모방한 소설을 짓는 풍조가 유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서막을 연 것이 바로 즉공관주인卽空觀主人의 《박안경기》였다.

《박안경기》는 명ㆍ청대 독서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으면서 중국 고대의 백화소설이 집단 창작의 단계에서 개인 창작의 단계로 진입하고, 저잣거리 이야기꾼의 서사 예술이 문학 창작물로서의 소설로 전환하는 단계를 보여주는 생생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야기꾼이 저잣거리에서 ‘손님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쓰던 투박한 비망록이 어느 사이에 서재에서의 차분한 감상을 위한 고상한 문학 작품으로 격상된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