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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이 만들어낸 ‘악마의 학문’이라는 착각
'주류' 경제학이 만들어낸 ‘악마의 학문’이라는 착각
  • 양준호
  • 승인 2023.03.1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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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후기산업사회연구소 소장

내가 전공한 경제학은 ‘비주류경제학’으로 불린다. 이른바 ‘주류경제학’에 포괄되지 않는, 경제학계의 절대적 소수파를 의미한다. 경제학 영역에서 ‘주류’라 하면, 경제주체인 개인의 합리적 선택과 무한한 효용함수 추구를 미시적 전제로 하는 시장경제 시스템의 자기 완결성을 강조하고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영원불멸의 것으로 절대화하는 학문을 말한다. 대학에서는 주로 미시경제학으로 불리며 무소불위의 ‘필수과목’으로 군림하고 있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대표적이다. 거시경제학 영역에서도 통화주의 이론 등의 주류들이 그 세를 과시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 대학의 경제학 강단을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반해, ‘비주류경제학’이라 하면, 주류경제학이 설정하고 있는 전제와 명제들의 비현실성과 몰역사성을 지적하면서, 시장경제 시스템은 완전한 형태로 작동되지 못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생산체제 역시 불안정한 것이며 또 상대화되어야 할 ‘역사적인’ 시스템에 불과하다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을 말한다. 자본주의 비판이론으로서의 마르크스경제학이 대표적이다. 그 문제의식을 직간접적으로 계승하면서 경제분석에 있어 역사와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제학들도 이에 속한다. 이들은 주로 ‘이단파(Heterodox)’ 경제학으로 불린다. 단적으로 말해, 전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칭송을, 후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우리나라 강단 경제학의 소수파이자 불청객이며 ‘이단’이다. 주류경제학의 거점이 되어버린 대학의 경제학 강단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자본주의를 사수하는 주류경제학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수적 열위의 구조 안에서, 이와 같은 비주류경제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일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를 뛰어넘는 대안적 경제체제를 지향하는 ‘좌파(?)’들에게 국가의 연구비를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비주류경제학자들이 그 학문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연구비 지원을 받아내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대학 내 독점그룹인 주류경제학자들은 학생들을 대기업과 정부 그리고 국제기관이 선호하는 인재로 양성해야지 그들에게 자본주의를 ‘삐딱하게’ 보는 법을 가르쳐서 되겠느냐 하고 다그친다.

비주류경제학을 학생들의 영혼을 좀먹는 ‘악마의 학문’으로까지 인식하며 비난하고 경계한다. 일정한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비주류경제학적인 문제의식의 사회인들이 대학원에라도 들어오려고 하면, ‘그런 위험한 경제학을 공부해서 직장생활 계속할 수 있겠느냐?’하며 그야말로 ‘이단’ 취급을 해버린다. 국가 연구비 배분과 대학의 이와 같은 주류경제학 독점체제 하에서, 하나의 분명한 학문으로서의 비주류경제학은 심각한 재생산 위기에 직면해있다. 결국, 우리나라 학생들과 시민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위한 이론적 기반들을 접하고 싶어도 그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이렇듯, 경제학 교육과 학습이 종교나 신앙이 아님에도, 자본주의를 또 시장경제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구조적으로 이단시한다. 경제학 영역에서 주류경제학의 ‘절대적 패권체제’의 명백한 폐해이지 않을 수 없다.

주류경제학의 본산인 미국은 열외로 하더라도, 유럽과 일본 대학에서의 비주류경제학은 그것이 강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는 적으나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관련 학문 후속세대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배출되어 그 재생산도 담보되고 있다. 이는, 비주류경제학이 국가 차원의 연구비 배분에 있어서만큼은 ‘이단’ 취급받는 상황으로까지는 가지 않은 것에 기인한다. 또, 예컨대,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 대학에서는 비주류경제학 전공의 신임 교수를 같은 비주류경제학 전공의 선임 교수들이 심사하여 임용한다. 그래서 정치경제학, 경제사, 현대자본주의론, 포스트케인지언경제학 등의 관련 과목들이 대학 강단에서 간판을 닫는 일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대학은 학문의 다양성을 담보해야만 한다. 대학은, 이윤 극대화 또는 정책의 효율화를 목적으로 구성원들을 통일된 이론과 입장에 일사불란하게 수렴시키는 것을 본질로 하는 기업이나 정부조직과는 다르다. 학문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의 상하운동에만 맡겨두면 모든 경제적 불균형이 해소된다는 주류경제학의 주장과는 달리, 그 경제적 불균형은 경제적 약자들의 ‘피눈물’을 동반하는 공황 및 경제위기와 같은 ‘폭력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해소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 학생들과 시민들이 ‘비현실적 언설’의 주류경제학이 구축한 ‘절대적 패권체제’에 더 이상 구속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후기산업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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