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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기의 한일 관계…교과서로 통제되는 ‘역사 인식’
혹한기의 한일 관계…교과서로 통제되는 ‘역사 인식’
  • 김세덕
  • 승인 2023.03.15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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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역사인식은 어떻게 말해지고 있는가』 기무라 간 지음 | 김세덕 옮김 | 박영사 | 304쪽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 분석
구체적 당사자 없고, 정의 불가능한 욱일기 문제

이 책은 한일간에 있어 여러 역사 인식에 대한 언설(言說)이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역사인식이 자국 내에서 어떻게 공유되며, 결국 양국 간에 어떤 마찰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다룬다. 예를 들어, 교과서 분쟁부터 위안부 문제, 욱일기 문제 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조감적으로 분석·고찰한다. 이들 뉴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한일 관계는 혹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2018년 10월 30일에 나온 한국 대법원이 ‘징용공(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식 표현)’ 문제에 대한 일본 기업의 위자료 지급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었다. 이후 급속히 악화된 한일관계는 이듬해인 2019년 7월 징용공 판결을 둘러싼 G20(주요 20개국·지역 정상회의)까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신뢰 관계는 현저히 훼손되고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한일 양국은 어쩌다 이런 상황에 이르렀을까. 이 책에서는 2개의 사례에 주목해 구체적으로 논술한다. 우선 주목하는 것은 양국 교과서의 역사 인식 전개다. 알다시피 역사 교과서에서 식민지 지배나 전쟁에 관련된 기술에 대한 문제는 그 자체로 한일 양국 간 역사 인식 문제의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교과서의 중요성은 그뿐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검정제나 국정제를 채택해온 한일 양국에서는 정부가 교과서 기술 내용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자신들의 국민을 그들이 생각하는 역사 인식을 습득하도록 유도해 왔다. 다시 말해 한일 양국의 역사 교과서 기술에는 그 시점부터 양국의 공적인 역사 인식이 반영돼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석을 통해 애초에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무엇이 그 본연의 자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역사 교과서에 이어 주목하는 것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인식의 변화다.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가 오늘날 한일 양국 간 역사 인식 문제를 둘러싼 최대 현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늘날 치열하게 논의되는 위안부 문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양국 외교 문제로 부상된 적이 없었고, 양국 언론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문제는 이러한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상징하는 이슈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거치며 다시 한번 양국의 역사 인식 문제가 어떤 요소에 의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즉, 문제는 한일 양국 사회가 위안부 문제라는 단일 이슈에 대해 어떤 과정을 거쳐 인식을 형성해 나갔는가 그리고 왜 그것은 달라졌는가이다.

이 책은 1990년대까지의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바탕으로 그 전개가 어떻게 오늘날의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정리한 후 오늘의 새로운 현상으로 욱일기 문제와 관련된 한국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왜냐하면 종군 위안부 문제나 징용공 문제와는 달리 욱일기 문제에서 구체적인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고, 애초에 ‘무엇이 욱일기인가’에 대한 정의조차 불명확한 채 사태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것을 통해 앞서 언급한 분석틀을 검토하고 더욱 정교화하는 것에 힘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 서문을 인용한다. 중요한 것은 식민지 지배의 종식부터 오늘날까지 이미 77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시대의 두 배가 넘는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일 양국의 근대 충돌의 출발점이었던 1875년 강화도 사건부터 시작하면 무려 147년이 흘렀다. 한국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의 역사는 이미 그 과반을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가 서양 열강에 개국하면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 오랜 고난의 역사를 거쳐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기까지보다 더 긴 기간이다. 

거기에는 변화가 있고 역사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역사를 너무 조잡하게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 문제를 둘러싼 역사란 어떤 것이며, 우리는 이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 왔을까. 이 책을 통해 한국 사람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할 수 있다면 필자로서 더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이다. 

 

 

 

김세덕 
오사카관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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