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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종·빈곤’ 해방일지…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가
나의 ‘인종·빈곤’ 해방일지…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가
  • 김수아
  • 승인 2023.03.17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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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페미니즘이 계급에 대해 말할 때』 벨훅스 지음 |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312쪽

백인 중산층 여성에게 유리했던 페미니즘의 구호
신자유주의적 욕망은 빈곤층에게 정신적 폭력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번역된 바 있는 벨 훅스(1952~2021)의 이 책은 20년도 더 전에 쓴 것이었다. 이 책은 서구의 백인 중심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이 가속화되던 시점에 나왔다. 하지만 지금 현재 한국 사회의 여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던지는 “어떤 위치에 서서 이야기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페미니즘이 중산층 백인 여성의 의제에 한정되지 않고 모두를 위한 이론이자 실천이 되기 위한 핵심적 인 것이다. 인종과 젠더, 그리고 계급의 교차성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 온 벨 훅스는 이 책을 통해 계급이라는 이슈가 가족이라는 단위에서부터 존재하는 것이고, 일상생활 속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 계급이 젠더 관계와 인종, 이를 구획하는 각종 사회 제도 및 교육 그리고 공간의 구획 등과 상호작용하면서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론적 쟁점을 촘촘하게 이끌어가는 형식이 아니라 생애사 혹은 에세이처럼 보이는 글쓰기 형식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주변 공동체, 도시로 확장하면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데에는 효과적인 형식이기도 하다. 벨 훅스는 자신의 대학에서 경험이 계급으로 인한 모멸과 고통의 기록이었음을 보여주고, 같은 인종 내에서도 ‘엘리트’ 집단이 계급을 이유로 “저들과 우리는 다르다”라고 말하는 데 대한 비판적 시선을 던진다. 이 책에서 벨 훅스가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은 빈곤층과의 연대이다. 이 연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적 사회 구조에서 더 이상 계급은 존재하지 않고, 개인의 노력을 통해서 언제든지 이를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벨 훅스는 이러한 인식이 빈곤층을 무시하게 만들고, 자신과 ‘다른’ 존재라고 여기게 만들고, 빈곤 문제가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문제인 것처럼 만들어버린다고 말한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해왔던 ‘중산층 주부의 불만’이 인종과 계급에 따라 다른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흑인 여성에게 일자리는 해방적 기획이라기보다는 가사와 노동을 모두 해내야 하는 이중적 부담을 가중시켰고, 페미니즘의 구호는 전적으로 백인 중산층 여성에게만 유리한 것이었다. 벨 훅스는 상층 계급의 여성의 성공이 페미니즘으로 포장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페미니즘의 자유가 경제력과 동의어가 되는 현상을 경계한다. 이러한 자유에 대한 상상은 보수주의적인 것이고, 그런 페미니즘은 보수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의 비판은 계급과 빈곤 문제와 아울러 여성 문제를 드러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정 직군이나 직위에 올라선 여성의 숫자가 무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가 페미니즘의 성공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그는 탐욕과 소비를 추동하는 현대 자본주의가 페미니즘이 계급 문제를 다루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욕망은 더 많은 소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도록 하는데, 이러한 물질적 부의 전시를 통해 개인의 가치가 나타난다는 인식이 자연화될수록 빈곤층에게는 정신적 폭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연대의 가치를 구성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벨 훅스의 제안이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규범적 제안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이 계급의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급을 비가시화하면서 강화시키고, 기후 위기와 같은 전 지구적 위기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계급을 말하는 것으로부터 연결의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이는 외부에서 타자의 빈곤을 관찰하는 위치가 아니라, 타자와 함께 하는 자리에서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연대의 지점을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돼야 한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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