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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생태를 읽다
라틴아메리카 생태를 읽다
  • 최승우
  • 승인 2023.03.14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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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환 외 8인 지음|알렙|240쪽

‘생태 위기’의 시대에서 ‘생태 회복’의 시대로,
라틴아메리카의 생태에 관한 종합적인 분석

21세기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생태에 관해 종합적인 분석을 시도한 책이 나왔다. 『라틴아메리카 생태를 읽다』는 생태비평, 문학, 도시계획, 민속 철학, 역사, 교육, 인문지리학, 환경학, 중남미지역학이라는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신정환, 조구호, 박호진을 비롯한 아홉 명의 저자들이 라틴아메리카의 생태를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들은 ‘생태’라는 키워드로 라틴아메리카를 새롭게 이해하고, 기후위기에 맞서 생태문명을 건설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독자들에게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다양한 인식과 경험에 대한 분석을 전달하고자 한다.

저자들에 의하면, 오늘날 라틴아메리카는 세계적으로 생태적 전환을 위한 움직임을 선도하고 있으며,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지역이다.

소위 서구 선진국이 아닌 라틴아메리카에서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들이 보여 주는 라틴아메리카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통해 알아 보자.

지금, 왜 라틴아메리카인가?

2019년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기후위기 또한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로 인해 인류는 자본주의 문명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자본의 이윤 추구를 토대로 물질적인 풍요와 행복을 추구해 온 인간의 욕망이 가져온 것이 결국 그와 같은 재앙과 파멸이고, 인류 생존의 심대한 위협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자본주의적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때 자본주의 문명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생태문명이다. 생태문명은 인간과 자연이 동등한 관계를 맺고 서로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삶을 지향한다.

이 문명은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체 모두가 주인이라는 탈인간중심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삼는다. 즉, 인간 사이의 차별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 간의 우열과 경계도 지양하며, 자연도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식한다.

생태문명 속에서 인간과 자연은 이윤 추구를 위해 파괴와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자본주의 문명과는 다르게, 행위와 권리의 주체이자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해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지역이 바로 라틴아메리카다. 특히, 안데스 지역의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는 생태문명을 위한 법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며, 2008년 에콰도르는 세계 최초로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고, 볼리비아는 2010년대에 들어 ‘어머니 지구’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안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갔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같은 생태적 전환의 바탕에는 안데스 지역 원주민들의 세계관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들의 세계관에서 기본이 되는 원리가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따라서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수막 까우사이(Sumak kausay)’로 구체화된다. 스페인어로는 ‘부엔 비비르(Buen Vivir)’라고 하며, 우리말로는 ‘좋은 삶’, ‘잘살기’, ‘참살이’로 옮길 수 있는 수막 까우사이는, 한마디로 인간이 자연과 동등한 관계를 맺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라틴아메리카는 이와 같은 원주민들의 생태적 세계관에 기초하여, 다양하고 활발한 생태적 전환의 움직임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에 주목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 HK+사업단은 ‘21세기 문명 전화의 플랫폼, 라틴아메리카: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본 사업단은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생태문명으로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투여하는 다양한 노력을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추구하는 대안적 세계관과 삶의 방식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물을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부엔 비비르 총서’를 기획해 출판하고 있다. 부엔 비비르 총서에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 융합해 라틴아메리카의 생태문명을 탐구한 결과가 오롯이 담겨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생태에 관한 4년간의 연구 끝에, 이 책을 선보인다.

라틴아메리카의 생태를 인문학적으로, 사회과학적으로, 그리고 자연과학적으로 읽는다

이 책은 총 3개의 부,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자연관과 생태비평’을 다루며 생태 문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통해 인류 제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인식의 대전환을 모색하는 인문학적인 글들을 모았다.

먼저 생태비평의 정신과 그 주제들을 개관하고, 문학 작품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며 호수를 이용하는 농사와 라틴아메리카 토착 원주민들의 세계관에 큰 축인 ‘빠차마마’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신정환은 제1장 「생태비평의 정신과 몇 가지 주제들」에서 문학과 생태환경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생태비평을 소개하며, 논의의 포문을 연다.

그에 따르면 생태비평의 정신은 환원, 분기, 분리에 기초한 근대적 사고로부터 종합, 합일, 통합으로의 변환이다.

천정환은 근대성, 페미니즘, 동양 사상, 세계화 등의 문제를 생태비평의 관점에서 비교 분석하면서, 생태비평의 정신과 그 주제들을 개괄하고, 나아가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인식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조구호는 제2장 「『소용돌이』에서 아마존 밀림과 인간의 삶을 읽는다」에서 콜롬비아 출신 작가 호세 에우스따시오 리베라의 『소용돌이』에 대한 ‘문학생태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즉, 『소용돌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아마존 밀림으로부터 인간-자연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설정하는 방법에 관한 배움을 길어 올린다.

장수환은 제3장 「아스떼까 문명, 호수를 이용한 치남빠스 농사 이야기」에서 아스떼까 문명의 농사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한다.

농업은 지형과 기후를 포함한 자연 지리적 요소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아스떼까인들은 호수로 둘러싸인 자연적 제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고유한 치남빠스 농업 체계를 만들었고, 이는 그들 문명의 기반이 되었다.

장수환은 현재까지도 생태계와 농업이 조화를 이룬 자연순환 체계 농업으로 인정받는 아스떼까인들의 치남빠스 농업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박호진은 제4장 「빠차마마 이야기」에서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세계관에 접근한다. 박호진은 그동안 피상적으로 ‘어머니 대지’와 같은 의미로 소개되어 온 ‘빠차마마’를 안데스 지역 원주민들의 기록과 신화, 전설, 민담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그려 낸다.

그리고 이것이 라틴아메리카의 전통 사상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된다고 말한다.

제2부는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과 국토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즉,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프라 개발 사업들이 생태계 파괴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며 대안을 모색하고, 이와 관련해 원주민들이 직면한 문제를 살핀다.

김윤경은 제5장 「개발과 원주민 공동체: 멕시코의 마야철도 건설을 중심으로」에서 대규모 개발 사업을 몸살을 앓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주소, 구체적으로 멕시코의 상황을 다룬다. 특히 마야철도 건설 프로그램이 그 지역의 생태환경과 원주민의 삶의 공간, 원주민의 정체성 및 인식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지 등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양은미는 제6장 「브라질 원주민 문제의 현재화와 생태시민성: 까바나젱과 녱가뚜어의 의미 복원」에서 브라질 원주민 문제를 다룬다.

특히 녱가뚜어라는 원주민 언어의 역사를 통해 브라질 원주민들이 경험해 온 소외를 다루고, 원주민 언어의 공식화를 매개로 원주민들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일련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원주민과 브라질의 모든 소외된 이들을 온전한 시민으로 포용하는 생태시민성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 질문한다.

이미정은 제7장 「브라질 인프라 개발과 국토 통합의 함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범위」에서 한 국가의 균형적 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국토 개발이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범위와 방안을 모색한다.

특히, 브라질에서 진행된 여러 인프라 사업을 살펴보며, ‘성장과 보전’이라는 두 역설적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브라질 특유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범위를 찾는다.

제3부는 ‘기후위기 시대의 오염과 회복 이야기’라는 주제로, 기후위기에 직면한 라틴아메리카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린다.

두 저자는 먼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브라질 상파울루시에서 나타난 대기오염의 변화와 라틴아메리카의 ‘기후 회복력’ 현황을 각각 살펴보고, 그에 따라 요구되는 정책의 도입을 주장한다.

장유운은 제8장 「상파울루 시에서 코로나19에 따른 대기오염물질 변화」에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그중에서도 락다운 시기와 고농도 대기오염물질이 발생한 기간을 포함한 2020년 1년 동안 상파울루 시에서 나타난 대기오염물질의 변화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것이 시민들의 이동량 및 교통량과 연계됨을 파악하고, 대기질 개선과 공공 보건의 향상을 위한 정책들을 제안한다.

하상섭은 제9장 「라틴아메리카 ‘기후 회복력’ 현황과 기후 연계 공공정책」에서 라틴아메리카의 기후 회복력을 일별하고, 아마존 열대우림 개발과 보존 사이의 딜레마, 기후 회복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공공정책 실험을 두루 살펴본다.

나아가, 많은 중남미 기후 전문가들이 기후 회복력 개선을 위해 모든 국가가 취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구체적인 우선순위 세 가지―인프라 표준에 기후 회복력 구축, 구조적 취약성 감소, 혁신적인 금융 모델 탐색―를 검토·설명한다.

‘생태 위기’의 시대, 활로는 어디에 있는가. 저자들은 ‘생태 위기’의 시대에서 ‘생태 회복’의 시대로,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의 가능성을 라틴아메리카에서 모색한다.

나아가, 아홉 명의 저자들은 생태비평, 문학, 도시계획, 민속 철학, 역사, 교육, 인문지리학, 환경학, 중남미지역학이라는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생태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그리하여 저자들은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자연과학적인 시선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적인 시선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생태를 읽어 낸다.

기후위기,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생태 위기의 시대에 라틴아메리카가 보이는 생태적 전환의 가능성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책은 생태문명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다양한 인식과 경험, 그리고 그에 대한 다채로운 분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깊은 의의를 지닌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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