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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에 빠지는 청소년, 스스로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
도박에 빠지는 청소년, 스스로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
  • 김예나
  • 승인 2023.03.23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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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_ 네 번째 주제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② 도박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 학교 정글에 이어 네 번째 주제로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시각을 4회에 걸쳐 싣는다. 김예나 한국침례신학대 교수(상담심리학과)의 두 번째 글이다.

중독문제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인식이 
다른 정신건강 장애에 비해 낮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된다는 인식 때문에 
다른 장애보다 치료를 덜 받는 경향이 있다.

한 포털 사이트에 다음과 같이 두 개의 질문이 등록되었다. “도박 기간 3개월, 입출금 200만 원 정도면 처벌 수위가 어느 정도일까?”, “불법 스포츠 도박에 입금 4천만 원, 환급 4천400만 원 되는데 처벌될까?” 질문을 올린 질문자는 몇 살일까? 첫 번째 질문자는 16세, 두 번째 질문자는 20세라고 자신의 나이를 밝혔다.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청소년들이 처음으로 도박을 경험하는 나이는 평균 11.3세다. 도박 때문에 주변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린 경험은 14.9%, 자살을 생각한 경험은 8.8%나 된다. 호기심에 한두 번 해볼 수 있는 행동이라고 하기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극도의 긴장감·불안감 vs. 짜릿함·해방감

청소년들이 도박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 이유를 도박의 특성 측면에서 이야기해보자. 우선, 도박은 돈이나 가치가 있는 물건을 걸고 확률과 운에 의해 승부를 다투는 것이다. 그렇기에 도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재산상의 이익이 더욱 높게 평가되면 될수록, 확률과 운에 의해 빠르고 쉽게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불안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큰 승리를 따낼 경우, 뒤이어 찾아오는 극도의 짜릿함, 안도감, 해방감은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경험이 된다. 판돈이 크면 클수록 이겼을 때 돌아오는 보상도 커지니 배팅액을 키우고 싶은 욕구와 욕망이 치솟게 된다. 

짧은 순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는 스릴감을 한 번 맛보면 누구도 빠져나오기 쉽지 않게 된다. 특히나 도박에서의 승리는 확률과 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얼만큼의 보상이 돌아오게 될 것인지의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간헐적 강화’가 단 한 번의 도박 승리 경험을 중독으로 이어지도록 만든다. 천국과 지옥을 가장 실제에 가깝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도박이다.

카드 게임을 지켜보는 아이에게도 도박은 짜릿하다. 언젠가 저 아이도 성인 도박자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 1894~1895, 캔버스에 유화.

청소년 도박자에서 성인 도박자로

도박에서의 쾌감을 맛본 청소년들이 과연 도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전문가의 입장에서의 정설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소년 도박자가 성인 도박자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 성인이 되어서 합법적으로 경제 생활을 시작하면, 도박으로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이 커지기 시작한다. 대출을 받는 것도 수월해지고, 부모도 관리·감독을 하지 않기에 더욱 심각한 도박자로 변해가기 쉬워진다. 

그렇기에 청소년 도박중독자들이 최대한 청소년 시기에 회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후의 막대한 폐해를 예방하는 길이다.

도박, 감기처럼 스스로 보호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청소년들이 도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답을 ‘자발적 회복 행동’에서 찾아보자. 자발적 회복은 공식적인 치료를 받지 않아도 중독으로부터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현상을 말한다. 다른 정신건강 문제보다 중독 분야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 중 하나다. 물론 중독 문제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인식이 다른 정신건강 장애에 비해 낮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된다는 인식 때문에 다른 장애보다 치료를 덜 받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중독 분야에서 자발적 회복을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중독자들이 스스로 도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회복적 노력을 더욱 흔하게 한다는 것을 반영한다. 

국내의 한 중독심리전문가는 이러한 현상을 감기에 비유하며, 흔히 사람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병원에 가기 전 자기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기 전에 따뜻한 물을 마시거나 몸을 따뜻하게 하고, 평소보다 잠을 더 많이 자는 등 감기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을 ‘스스로’ 시도한다는 것이다. 

도박에 빠져 있는 청소년이라면

그렇다면, 중독에 빠진 우리 청소년들도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는 회복적 노력을 하지 않겠는가? 그 회복적 노력이 결국 청소년이 도박의 수렁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자신을 회복의 길로 안내하지 않겠는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청소년은 미래가 당기는 힘이 훨씬 강하며, 주체적으로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다. 청소년이 자신의 고통 속에서 힘들어 몸부림치더라도, 결코 그 순간 자포자기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약한 존재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청소년이 도박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자발적 회복행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 도박에 빠져 힘들어 하는 청소년이라도 이 행동을 통해서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도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발적 회복 행동 리스트]

① 가까운 친구나 선·후배와 상의한 적이 있나요?
② 부모나 선생님,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거나 청한 적이 있나요?
③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더 이상 도박을 안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나요?
④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해 본적이 있나요? (사이트 탈퇴, 통장·카드 폐기, 휴대폰 바꾸기, 광고 메시지 차단하기 등)
⑤ 도박으로 잃은 돈이나 빚을 노력해서 메꾸거나 갚아본 적이 있나요?
⑥ 주변 사람들이 게임하자는 요청을 거절한 적이 있나요?
⑦ 그 행동을 하지 않는 친구들을 새로 사귄 적이 있나요? 
⑧ 밖에서 하는 놀이나 여가활동을 늘린 적이 있나요?
⑨ 필요한 정보를 찾아본 적이 있나요?
⑩ 주변 사람들에게 용돈을 포함한 돈 관리를 부탁한 적이 있나요?
⑪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린 적이 있나요?

김예나 한국침례신학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한국침례신학대에서 학부, 석사를 마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독심리전문가이자 건강심리전문가로서 특히 행동중독 분야에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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