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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문체부, ‘저작권 교육’ 가이드라인 제작해야
교육부·문체부, ‘저작권 교육’ 가이드라인 제작해야
  • 류원식
  • 승인 2023.03.20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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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 시대, 출판 저작권이 위태롭다 ⑦ 학술출판 저작권 보호 정책은_류원식 교문사 대표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어서면 태블릿PC나 노트북을 꺼낸다. 종이책을 펼치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19이후 대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함께 지정교재가 사라지고, 학생들의 불법 스캔이 늘고 있다. 교수신문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저작권을 무시한 ‘불법 PDF’ 등이 속수무책으로 돌아다니는 디지털 ‘불법 복제’ 문제를 주목한다. 코로나19 이후 불법 복제 실태에 대한 학술출판계의 저작권 보호 정책 대안을 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함께 대학생 대상 저작권 교육 가이드라인을 
제작해서 대학에 배포해야 한다. 
불법 복제 외에도 저작물 표절이나 최근 이슈가 되는 챗GPT 등 
인공지능 생성 콘텐츠의 이용 안내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매출이 큰 출판사는 어딜까? 엘스비어 출판사 등이 속한 웰렉스(RELX) 그룹이다(2021년 기준). 이 외에도 글로벌 상위 출판사에는 과학·기술·의학(STM) 위주의 학술 출판사들로 채워져 있다. 톰슨로이터(2위)·피어슨(4위)·와일리(7위)·스프링거네이처(8위)·맥그로힐에듀케이션(9위) 등 모두 매출 2~9조 원 수준의 미국과 유럽에 기반을 둔 STM 출판그룹이다.

이 기업들이 이처럼 거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과학·학술계와 출판계가 서로 밀고 당기며 세계의 기준을 제시하고 선도해나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이 학술 분야에서 떵떵거릴 수 있게 된 것일 테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한국도 각 분야에서 높은 학술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럼 앞으로 손꼽히는 학문의 중심지가 될 수 있을까? 부정적인 답변이 나온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학술 출판 생태계의 붕괴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스캔, 출판산업을 통째로 위협한다

대학교재는 학술 출판의 기본이자 고등교육의 근간이다. 학생들의 교재 불법 복제 문제는 지난 세기부터 계속돼 왔지만 일부 학생의 일탈로 여겼다. 그런데 최근의 양상은 산업 전체를 무너뜨릴 정도로 심각하다. 불법 디지털 스캔과 강의자료 공유 때문이다.

학생들은 책 전부를 스캔해서 전자파일 형태로 만들고, 친구들과 공유한다. 심지어 돈을 받고 판매하는 경우도 많다. 엄연한 저작권법 위반이고 불법이다. 교수가 제공하는 파워포인트(PPT) 자료도 책의 2차 저작물인 경우가 많고, 그런 파일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면 저작권법을 어기는 불법행위다.

불법 복제물이 늘어나면 좋은 책이 나올 수 없다. 불법 복제 콘텐츠를 보는 건 옆 사람 주머니를 터는 행동과 마찬가지다. 당연히 내야 할 책값을 내지 않아 책값은 뛰고, 수준 높은 새 책은 안 만들어진다. 저작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의 무한 루프가 반복되며 산업 자체가 주저앉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모를 리 없다. 단지 자신들의 불법 행위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양산하고, 얼마나 깊은 산업적·사회적 상처를 입히는지 가늠하지 못하는 듯하다.

지난 16일 서울대 학생회관 앞에서 불법복제 근절을 위한 캠페인이 열렸다. 사진=하영

무엇보다 ‘저작권 교육’ 더 적극 나서야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만큼 급박하다. 지금까지의 미온적 대처와는 다른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롭고 적극적인 저작권 보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저작권 교육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 대상은 학생은 물론 교강사, 대학 관계자들을 포함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가 함께 대학생 대상 저작권 교육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고 각 대학에 배포할 필요가 있다.

불법 복제 외에도 저작물 표절이나 최근 이슈가 되는 챗GPT 등의 인공지능(AI) 생성 콘텐츠의 이용 안내 등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이 내용을 토대로 강의 첫 시간에 교수가 학생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도록 한다. 동시에 교강사들은 강의자료 등 2차 저작물을 학생들에게 무단 제공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이 좋겠다.

대학본부는 교수들에게 저작권 교육 확인서와 보호 서약서 등을 제출받아 경각심을 일깨워달라. 대학 차원에서 신학기에 적극적인 저작권 보호 캠페인을 하는 것도 꼭 필요한 조치다.

에듀테크 강조 교육부, 저작권엔 관심 없다

정부와 검찰, 법원 등의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 정책당국은 학술 출판물에 대한 저작권 보호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특히 대학의 관리·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 교육부는 저작권 관련 회의조차 참석하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다. 명백한 책임 방기다. 검사는 “대학생을 범죄자 만들 필요 있겠냐?”며 기소유예하고, 가까스로 판사 앞에 세운들 “상습적이지 않다”며 가벼운 벌금형으로 끝난다. 불법을 저지른 학생은 안도하며 “별것 아닌” 이 과정을 커뮤니티에 공유하며 다른 이들의 불법을 부채질한다.

적극적인 단속과 법 집행에 따른 처벌은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 그럼에도 다들 손잡고 “학생들이니 봐주자”고 한다. 답답한 노릇이다. 굳이 형사처벌을 피하고 싶다면 저작권 보호 관련 사회봉사, 교육 이수 등의 대안을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아직 그런 사례는 못 들어봤다.

‘불법 PDF’ 유통되는 온라인 서비스는 책임없나

불법 복제물 거래가 이뤄지는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에 대해서도 법적·제도적 대책이 절실하다. 주요 플랫폼사의 카페와 온라인 중고마켓, 대학 폐쇄형 커뮤니티, 문서공유 사이트 등은 불법복제 파일이 유통되는 주요 채널들이다.

이들 사업자는 자신들의 온라인 서비스 내에서 벌어지는 저작권 위반 사례에 법적 책임이 없다며 발뺌하기 급급하다. 약관을 통해 저작권법 위반 소지 게시물을 금지한다고 알리고 있으며, 회원들의 불법행위를 일일이 막을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이들 사업자의 자발적인 조치에 기대서는 해결이 어렵다. 제도적으로 온라인 게시물을 올릴 때 경고창이 뜨도록 강제하고, 저작권법 위반 내용이 없다는 확인 뒤 게시글을 쓸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온라인 사업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그만큼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파파라치 제도 도입 검토하자

마지막으로, ‘파파라치’ 제도 도입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신학기가 되면 “당신 출판사 교재가 불법 PDF로 돌아다니고 있다”며 회사로 꽤 많은 제보가 들어온다. 제보하는 이들 대부분은 대학생들이다. 본인들은 적법하게 제값을 주고 샀는데 불법으로 공짜 PDF를 이용하는 주위 학생들을 보니 화가 나는 것이다. 이 같은 불법 거래가 이어지면 자신과 같은 정상적인 구매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 거래는 콘텐츠의 질을 떨어뜨리고 가격을 올린다. 불법 거래자가 정상적인 콘텐츠 거래자들의 돈과 권리를 빼앗는 꼴이다. 이런 정당한 억울함을 해소해줄 수 있어야 한다. 불법 복제물의 유통 현장에 대한 신고를 받고 이를 단속한 뒤 신고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이다. 단속된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저절로 떠오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10여 년 후 어느 날, 발전 없는 대학의 학술·교육 역량에 대해 혀를 차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왜 교수들은 학술 출판에 나서지 않고, 후학 양성에 관심이 없냐며 말이다. 국내에서 출판한 좋은 교재는 없고, 10만 원 넘는 해외 책들밖에 없으니 학생들은 해적판이나 구하러 다닌다고 지적할는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학생들이 책 좀 스캔한 것 같고 뭘 그러냐”고 생각하신 분들이 반성하게 될까?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보다는 앞서 소개한 학술 세계를 지배하는 서방의 대학과 출판사처럼 한국이 각 분야의 지식체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길 바란다. 그 시작은 저작권을 지켜 학술 출판의 성장을 이끄는 것에서부터일 것이다.

류원식 교문사 대표
대학교재를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 ‘교문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출판도시입주기업협의회 등에서 활동하며 출판계가 목소리 내는 데 힘을 보태기도 한다. 출판사에서 일하기 전엔 언론사에서 기자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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