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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비극 차라리 공감하지 마라
공감의 비극 차라리 공감하지 마라
  • 최승우
  • 승인 2023.03.21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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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56쪽

신념은 소유물이 아니다
‘감정이입’보다는 ‘역지사지’가 좋다
나는 공감에 반대한다
“공감은 태양이 아니라 스포트라이트다”

공감 능력이 없다는 말은 정치적 비방의 용도로 자주 쓰이는데, ‘소시오패스’라는 딱지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기도 한다. 특히 진보가 보수를 향해 퍼붓는 비난 중의 하나가 공감 능력의 결여다.

그러나 공감 능력이 있기 때문에 비인간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우리의 편 가르기와 그에 따른 국민적 차원의 집단 패싸움은 심각한 문제에 이르렀다.

내집단에 대한 과잉 공감은 우리 편에 대해서는 무한대의 공감을 하지만 반대편에 대해서는 공감은커녕 최소한의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어 악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자신이 자기편에 대해 이미 쏟은 무한대의 공감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려고 한다.

강준만은 『공감의 비극』에서 ‘선택적 과잉 공감’의 비극을 말한다. 선택적 과잉 공감은 자기 성찰의 의지와 능력이 전혀 없는 가운데 내로남불을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집단이 자신들은 천사로 여기면서 자신들이 마땅치 않게 여기는 집단은 악마로 몰아가는 것을 말한다.

선택적 과잉 공감을 하는 사람들은 증오와 혐오를 먹고산다. 이들의 속이 후련해지려면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혐오해야만 한다. 이들은 자신은 정의의 편이고, 상대편은 불의나 악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증오와 혐오의 집단적 갈등은 바람직한가? ‘선택적 과잉 공감’에 브레이크를 걸 수는 없을까? 기존의 맹목적 공감 예찬론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차라리 그 어느 쪽에도 공감하지 않는 게 훨씬 더 나은 게 아닐까?

강준만의 『공감의 비극』은 6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마주 보며 달리는 기차는 세워야 한다, 제2장 정치인의 언어와 화법, 제3장 증오를 위한 공감인가?, 제4장 바보야, 문제는 ‘성격’이야!, 제5장 위선과 사기가 난무하는 ‘지방 문제’, 제6장 언론인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 이 책을 통해 공감의 그늘 혹은 공감의 두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이 스포트라이트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감은 ‘선택적 과잉 공감’으로 빠지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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