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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예술이론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최고의 예술이론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 이승건
  • 승인 2023.03.3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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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하다_『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레온 골든 英譯 | 하디슨 주니어 해설 | University Presses of Florida | 1981 | 308쪽

고전 독서에는 좋은 길라잡이 필요
예술학의 선구자 아리스토텔레스

서양예술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이론서를 집필한 사상가를 꼽으라면 단연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가 뽑힐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스승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의 미학사상을 계승하여 예술을 모방(mimesis) 개념에서 접근하면서도, 플라톤이 외면세계의 수동적이고 충실한 복제로서 예술(모방)을 이해한 것과는 달리, 예술적 모방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상태보다 더 아름답게 혹은 덜 아름답게 나타낼 수 있다는 내용 등을 주장하는 그리 길지 않은 한권의 책을 집필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예술가는 자기 나름의 모방 방식으로 실재를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했기에, 그럼으로써 후대에 있어서 예술창작에 관한 이론적인 언급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그의 『시학』이 전범(典範)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브왈로(Nicolas Boileau-Despréaux,1636~1711)의 『시학』(L’art poétique, 1674)과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의 『회화론』(Della Pittura, 1436 / 라틴어 본(De Pictura)은 1435년)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후자의 경우, 회화의 이론을 성문화할 때 이렇다 할 만 한 그 분야의 고전은 없었을 테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 이론의 고전이 그 모델로 삼았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자신이 직접 공표한 공개적인 저작과 아소스(Assos)와 리케이온(Lykeion)에서 강의를 위해 쓴 기록물인 강의용 저서로 구분한다. 『시학』은 후자의 저서 무리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현존하진 않지만, 희극을 다룬 『시학』의 2부 역시 이 부류에 넣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에 관한 저서와 관련해서는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2016)가 『장미의 이름』(1980)에서 소설의 소재로 삼은 바 있다.  

 

고전 서적의 독서는 언제나 만만치가 않다. 그러나 좋은 길라잡이 주석서를 만난다면 책읽기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 극복되며 즐거움 또한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다고 여겨진다. 레온 골든(Leon Golden)의 『문학도를 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Aristotle’s Poetics: A Translation and Commentary for Students of Literature, University Presses of Florida, 1981) 역시 이런 부류의 책으로 흔히 만날 수 없는 수준 높은 주석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책은 『시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두 명의 학자에 의해, 각각 앞부분은 원 저작에 대한 레온 골든의 영어 번역(translation, 3~52쪽)을 그리고 뒷부분은 하디슨 주니어(O.B. Hardison, Jr.)의 주석(commentary, 55~296쪽)을 위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뒷부분 주석 부분에서 「서론: 해석의 기초들」(55~62쪽)과 「에필로그: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에 관하여」(281~296쪽)를 통해 『시학』 텍스트 자체의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관에 대해 낯선 탐방인을 친절하게 인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문(Ⅴ~Ⅵ쪽)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 관한 종래의 풍성한 연구들을 송두리째 섭렵한 채 전문 주석가로서 나름의 해석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시학』의 그리스어 책 제목은 작시술(作詩術, peri poietikes)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책의 제목을 통해 『시학』이 ‘시를 짓는 기술’을 다루는 예술창작에 관한 이론서임을 알아 챌 수 있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를 뮤즈에 의한 영감의 문제로 바라 본 당시 고대 그리스인들의 입장과는 달리, 시 역시도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규칙의 지배를 받는 테크네(technē)의 일종이라는 관점 아래 모방 개념에서 제예술을 바라본다(제1장, 1147a). 여기에 비극의 정의(제6장, 1449b)와 뮈토스(mythos)를 비롯한 비극의 6요소(제6장, 1450a), 그리고 시가 역사보다도 더 철학적이고 중요한 이유(제9장, 1451b)와 시인이 행해야 하는 바(가능하나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보다 불가능하나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의 모방, 제24장, 1460a) 등의 주장을 통해, 스승 플라톤이 형이상학적ㆍ윤리학적 가치판단에 의해 미와 예술의 본질을 구명하여 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예술에 관한 독창적이고 확고한 미학적 견해를 뿜어낸다.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은 미학으로부터 예술학을 독립시키고자 한 19세기 반(反) 관념론적 미학으로서 예술학(Kunstwissenschaft)의 태동 이전에 예술에 대한, 예술에 의한, 예술을 위한, 예술을 논한 예술학의 비조(鼻祖)로서 손색이 없다. 이 지점에서 그의 『시학』은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고 하겠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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