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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의 심리학
세뇌의 심리학
  • 최승우
  • 승인 2023.03.28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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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스트 A. M. 메이를로 지음 | 신기원 옮김 | 에코리브르 | 329쪽

누가 저항할 수 있다고 쉬이 말하는가!
 

인간 정신에 대한 극심한 압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실제 경험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역작.

이 책이 출간된 해는 1956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책이 나온 때가 1950년대인만큼 주로 중국 전체주의와 나치의 사고 통제, 정신적 살해, 세뇌 등을 다룬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적지 않다.

사고 통제·정신적 살해·세뇌가 작동하는 원리는 변하지 않았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 역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큰 사회 문제로 대두한 것 중 하나가 가스라이팅이다.

가스라이팅이란 거부, 반박, 전환, 경시, 망각, 부인 등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연인이나 가족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많이 발생한다.

이 역시 ‘세뇌’의 한 범주라 할 수 있다. 또 사이비 종교에서도 신도들을 묶어두는 방편으로 ‘세뇌’ 기술을 사용한다.

세뇌란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던 의식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하거나, 특정한 사상·주의를 따르도록 뇌리에 주입하는 일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헌터는 ‘세뇌(brainwashing)’는 중국어 洗腦에서 유래한 말로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을 수동적인 공산당 추종자로 만들기 위해 체계적인 사상 주입, 전향, 자기고발을 이용하는 의식을 뜻한다고 정의했다.

‘정신적 살해(Menticide)’는 저자가 만든 단어로, ‘마음’을 뜻하는 ‘mens’와 ‘죽이다’는 뜻의 ‘caedere’를 합한 말이다. 두 단어 모두 형틀의 뒤틀린 변형으로, 언뜻 더 허용 가능한 수준인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는 천 배는 더 나쁘며, 심문자에게는 천 배는 더 유용하다.

세뇌가 심리학적 연구 대상이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따라서 이 책 역시 한국전쟁 당시 중국 공산군 포로로 잡힌 미국 해군 대령의 일화로 시작한다.

한국전쟁 때 미국 해군 부대 소속이었던 프랭크 H. 슈와블 대령은 중국 공산군에 포로로 잡혔다. 심한 심리적 압박과 신체적 학대가 몇 달 동안 이어진 끝에, 그는 미국이 적에 대한 세균전을 펼쳤다는 ‘자백’ 기록에 서명했다.

여기에는 관련자들의 이름, 임무, 전략 회의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이는 전체주의자들에게는 엄청나게 가치 있는 선전 도구였다.

그들은 전 세계에 다음과 같은 뉴스를 전했다. “미국이 국제법을 어기고, 평화를 사랑하는 중국 인민들을 상대로 질병을 퍼뜨리는 박테리아를 실은 폭탄을 터뜨렸다.”

슈와블 대령은 귀국 후 이 자백을 부인하며, 군사법원 심리에 출석해 스스로를 변호했다.

“제 마음속에서 우리 해군 제1전투비행 부대가 세균전을 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회의, 비행기, 작전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같은 나머지 것들은 저에게는 사실이었습니다.”

대령은 계속했다.

“말은 제가 했지만, 생각은 그 사람들의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거짓말인 것을 알면서도 앉아서 그 말이 사실인 것처럼 느끼게 하는 글을 쓸 수 있는지, 이것이 제가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 사례는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포로에게 큰 거짓말을 하도록 조작한 예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치적 목적의 정신적 강요 문제와 이것이 초래하는 결과를 직면해야 한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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