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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환락가에서 ‘환각’으로 결핍 채우려는 아이들
[글로컬 오디세이] 환락가에서 ‘환각’으로 결핍 채우려는 아이들
  • 조관자
  • 승인 2023.03.31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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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19세 일본 청년의 자작곡 「Overdose」(과다복용)는 한국의 10대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일본어를 몰라도 몽환적 음색과 빠른 전자음, 애절함과 경쾌함이 절묘한 퇴폐 감성을 빚어낸다.

그 첫 소절은 “Dose, give me, give me. 사실은 알고 있었어, 그러면 안 되는 거. 알고 있었지만, 이 손 틈을 빠져나가는 모든 게 사랑으로 보였어”로 시작한다. 

집안의 비리를 폭로한 전우환 씨가 스스로 ‘마약을 하고 진실을 말한’것처럼, 그 노랫말은 환각 속에서 사랑을 말한다.

신주쿠의 거리 영상에서는 감기약을 과다 복용한 소녀가 행인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다가 드러눕는다.

여린 감성으로 올바름을 찾는 이들은 세상에 대한 허탈과 낙망을 환각으로 채운다.

투명하지 못한 사회에서 ‘해상도 낮은 꿈’을 꾸려고 약을 찾는다.

‘바름’과 ‘사랑’에 대한 결핍은 갈망을 낳고, 결핍과 갈망이 클수록 집착과 중독으로 이어진다. 

일본어로 오버도스를 검색하면 알고리즘이 ‘도요코키즈’(トー横キッズ)로 안내한다. 코로나 시기 생겨난 이 용어는 SNS를 통해 가부키쵸의 TOHO시네마 빌딩 옆에 모여든 10대, 주로 지방에서 가출한 청소년들을 가리킨다.

처음 그곳은 부모에게 학대받고, 학교에서 환영받지 못한 또래들이 비슷한 감성을 나누는 ‘해방구’였다.

하지만 유흥업소가 밀집된 환락가가 안전할 리 없다. 

언론 보도 후 파출소 경찰관들이 토호 시네마 주변에 모이는 청소년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사진=조관자

 

편의점이나 라면집에서 아르바이트도 가능하지만, 성매매와 원조교제를 시도하는 소녀들과 호스트로 스카웃되는 청소년들이 늘어났다.

10대가 연루된 노숙자 상해치사 사건, 보호단체 대표의 성추행 사건도 있었다.

언론이 ‘도-요코 키즈’를 집중 보도하자, 경찰의 단속도 강화됐다.

그 결과 매일 30~40명씩 보이던 ‘도-요코 아이들’은 줄었지만, 오사카의 글루코상 다리 아래 등, 대도시의 지하로 흩어지는 추세라고 한다. 

10년 만의 가부키쵸 배회, 필자는 호스트 산업의 비대한 팽창에 두 눈을 의심했다.

호스트의 얼굴, 지명도와 수입을 선전하는 대형버스가 쉴 새 없이 가부키쵸 주변을 달리고, 한국 음식점과 장터가 있는 대로변 건물에도 호스트클럽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가부키쵸를 잠입 취재한 서적과 인터넷 기사를 촘촘히 찾아 읽고 나니, 머리가 무거워졌다.

호스트 업계의 장치는 교묘해서 여성들이 호스트를 지명할 때 지불되는 금액에 경합이 붙는다.

아이돌의 팬덤처럼 여성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호스트의 인기를 높이려고 수십, 수백 만 원을 건다.

호스트에 열광하는 여성 중 9할 이상이 성매매로 번 돈을 호스트에게 바친다.

호스트클럽 경영자 A씨는 “그녀들은 호스트클럽에 다니기 위해 일해요. 호스트클럽이 사라지면 그녀들도 출근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성매매가 불법인 일본에서 유흥업 종사자로 직업의식을 갖고 자신의 생계를 지키는 여성들도 있다.

하지만 성매매녀(風俗嬢)로 불리는 여성 다수가 한 남성 고객에게 1~2만 엔 받은 돈을 모아서 호스트에게 몽땅 소비한다면, 그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렇게 몰입하다가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자살도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청소년 사인 중 1위가 자살이니, 그 수가 적지 않을 것이다. 

가부키쵸에 있는 공익법인 ‘일본가케코미테라’(日本駆け込み寺: 에도시대 여성들이 남성의 폭력이나 바람에 시달리다가 도망쳐 들어간 절의 이름을 딴 상담소)의 현수성 소장은 “연애를 하기 때문이지. 상대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가케코미’는 ‘엔키리’(縁切り)의 의미이다. 절에 뛰어 들어간 여성은 상대 남성과 연을 끊고 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현 소장에게는 남성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않는 여성의 상담도 들어온다.

“헤어질 결심을 한다면 그 남자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알려주고 자립을 도와주지. 결심 못하는 여자들도 있어요. 집착 때문이야”

오버도스의 노랫말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집착과도 거리가 멀 듯하지만, 약물 중독과 절연하지 못하면 그 삶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지 싶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약물 중독과 자살이 늘어난다. 

대학의 연구자로서 나는 이 젊은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재일교포인 현수성 소장과 “가치관을 바꾸고 싶다”는 다나카 요시히데(田中芳秀) 씨에게 “함께 연구해보자”는 약속을 하고 3년만의 도쿄 출장을 마무리했다.

 

 

조관자 서울대 일본연구소 HK교수

도쿄대 대학원에서 일본사상사를 공부하고 학술 박사 학위를 받았
다. 일본의 국학, 한일의 지식 교섭을 연구하고, 내셔널리즘의 충돌
을 넘어선 사상과제를 찾아 동시대의 사회문제를 조사·연구하고 있
다. 저서로 『일본 내셔널리즘의 사상사-'전시-전후체제'를 넘어서 동
아시아 사상과제 찾기』, 『포스트 코로나: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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