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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공대, 박정희 공대, 문재인 공대
윤석열 공대, 박정희 공대, 문재인 공대
  • 김종영
  • 승인 2023.04.05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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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주먹⑧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현대국가는 지식국가다. 지식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대학에서 나온다. 그런데, 대학과 학문이 붕괴되고 있다. 한국만큼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도 없다. 대학과 학문, 교육에 대한 비판적이고 통찰력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쓰고, ‘지식과 권력’ 3부작을 내놓았던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과)가 도발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학문과 정책(정치)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박정희 공대를 어떻게 윤석열 공대로 바꿀 것인가. 
윤석열 공대는 박정희 공대를 의대와 새롭게 결합시키면서 
‘IT + BT의 재조합 대학’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곧 윤석열 공대는 스탠퍼드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카이스트는 누가 만들었을까? 의외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1970년 4월 뉴욕공대 정근모 교수는 자신의 스승 존 헤너 미국국제개발처(USAID) 처장의 도움으로 30세 나이에 박정희 앞에 섰다. 저돌적이고 혈기왕성한 정근모는 한국이 후진국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연구중심 공대를 세워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발표가 끝나자 박정희는 당시 교육을 책임지고 있던 홍종철 문교부 장관에게 의견을 물었다. 육사 8기 홍종철은 박정희와 함께 5·16을 주도했고 초대 경호실장까지 역임했던 ‘박핵관’ 중의 박핵관이었다. 이때 홍종철은 강력하게 반대하며 좌중을 압도했다. 당시 대학은 데모를 주도하던 곳이기도 했고, 새로운 대학 설립은 다른 대학들의 반대를 뚫어야 했기 때문이다. 박핵관의 강력한 반대에 회의는 싸늘해졌고,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다. 

박정희 공대, 카이스트의 극적인 반전

이때 박정희는 “이 중에 대학을 잘 아는 남 박사의 의견은 어떤가?”라고 물었다. 남 박사는 한강의 기적의 주역,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의 남덕우 재무부 장관이었다. 남덕우는 문교부 장관의 걱정도 이해하지만, 경제발전을 위해서 연구중심 공대가 필요하기에 문교부 예산이 아니라 경제개발 예산으로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박정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한 말투로 이 공대의 설립을 문교부가 아니라 과학기술처에서 추진하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극적인 반전으로 박정희 공대, 곧 카이스트가 설립되었다. 카이스트(당시 이름은 카이스 KAIS)는 1971년 2월에 설립되었으니,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세워진 대학이다. 향후 광주과학기술원(1993), 대구경북과학기술원(2004), 울산과학기술원(2007)이 카이스트를 모델로 세워졌다. 카이스트를 박정희가 만들었으니 이들도 역시 박정희 공대라고 볼 수 있다. 이 4개 대학은 당시 문교부 장관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교육부 소속이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이다. 

한전공대 감사에 나선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가 감사원을 동원하여 한전공대(켄텍) 설립과정에서 불법을 찾아내겠다고 선포했다. 보수진영은 한전공대가 ‘문재인 공대’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한전공대는 논란이 있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고, 복잡한 절차를 밟느라 개교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윤 정부의 주특기가 수사와 감사니 파헤치면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는 구실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하책 중의 하책이다. 왜냐하면 비판은 창조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상책은 무엇인가? 윤석열 공대를 만들면 된다. 어떻게? 박정희 공대를 윤석열 공대로 바꾸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세계대학사를 연구하다보면 대학설립은 결국 최고 권력자의 리더십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현대 대학혁명을 일으킨 베를린 대학의 설립은 프로이센 왕의 결단 덕분이었다.

우리가 아는 세계적인 미국 주립대들은 링컨의 결단에 의해 세워졌다. 버클리, 위스콘신, 일리노이, 코네티컷, 플로리다, 메릴랜드, 미네소타, 오하이오 등의 주립대들은 1862년 링컨이 모릴법에 서명함으로써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MIT도 문을 닫기 일보 직전에 링컨이 구했다는 사실이다. 모릴법은 사립대도 지원할 수 있게 했는데 그 결정은 각 주의 정부에 맡겼다. 대다수 주들은 새로운 주립대학을 세웠다. 뉴욕과 매사추세츠는 기존의 사립대에도 기금의 일부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MIT는 1861년 4월 10일 세워졌고, 바로 이틀 후에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통에 대학을 갈 수 있는 젊은이는 극소수였다. 결국 MIT는 설립되자마자 망할 위기에 처했다. 1862년 대학설립 및 재정지원법인 모릴법이 통과되었고 MIT 설립자 윌리엄 로저스는 MIT가 그 지원금을 받도록 매사추세츠 정치인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 결국 매사추세츠 주는 MIT에 할당된 기금의 3분의 1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링컨이 없었다면 오늘날 MIT는 없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28일 열린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의사과학자를 국가전략 관점에서 양성할 수 있는 방안을 속도감 있게 준비하라”고 말했다. 사진=대통령실

카이스트·포스텍 ‘의대 설립’이 필요한 이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어떻게 박정희 공대를 윤석열 공대로 바꿀 것인가? 현재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사활을 걸고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책은 무엇일까? 의대 설립이다. 미국 대학에서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는 정책은 무엇일까? 의대 설립이다. 왜? 우리는 IT와 BT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다.

카이스트와 포스텍은 의사가 아니라 의사과학자를 의대에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쉽게 말해 mRNA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의사가 2억 원을 번다면, 탁월한 의사과학자는 수십조 원을 벌 수 있다.

나는 카이스트와 포스텍의 리더들이 미래를 볼 줄 아는 탁월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의대 설립과 의사과학자의 양성은 4차 산업혁명의 다른 축인 BT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은 IT는 강한데 BT는 굉장히 약한 나라다. 반도체 하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최근의 반도체 경기 침체가 주는 교훈이다. 

카이스트와 포스텍에만 의대를 설립하기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울산과학기술원, 광주과학기술원에도 의대를 설립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의사인력의 대규모 부족, 초고령화 사회의 진입, 글로벌 팬데믹 시대, BT의 절대적 중요성, 국토균형발전, 지방시대 실현 등을 고려한다면 2개의 대학보다 5개의 대학에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는 의대를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윤석열 공대 2개 보다는 5개를 만드는 것이 업적을 위해서도 좋다.  

BT혁명 일으킨 스탠퍼드의 ‘재조합 대학’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윤석열 공대가 아니라 윤석열 의대가 아니냐고. 스탠퍼드는 IT 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스탠퍼드는 BT 혁명도 일으킨 대학이다. 서울대 과학학과 이두갑 교수는 그의 책에서 스탠퍼드 의대가 BT 혁명을 일으키면서 스탠퍼드가 ‘재조합 대학’(Recombinant University)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의학과 생물학이 공학과 재조합되면서 바이오 ‘테크놀로지’(BT)로 재탄생한 것이다.

윤석열 공대는 박정희 공대를 의대와 새롭게 결합시키면서 ‘IT + BT의 재조합 대학’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곧 윤석열 공대는 스탠퍼드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미래는 IT와 BT의 결합이 결정한다고 말했다.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저 멀리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박정희도 링컨도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윤석열 공대라는 재조합 대학은 결국 리더의 결단의 문제다. 이번 정권에서 결단하지 못하면 다음 정권에서 하면 된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교육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최근 출판했다. 지식과 권력 3부작인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지민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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