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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국제 질서 3.0,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
자유주의 국제 질서 3.0,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
  • 최승우
  • 승인 2023.04.07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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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㊷ 전재성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4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달 11일 전재성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위기」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
다. 제43강은 김상환 서울대 교수(철학과)의 「동서양의 ‘자유’ 비교」, 제44강은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국제대학원)의 「미·중 관계와 패권 경쟁의 미래」, 제45강은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의 「다원주의적 국제 질서의 철학과 비전」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20세기 자유주의는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들, 즉, 공산주의, 사회주의, 군국주의, 나치즘, 파시즘과 경쟁해 승리했고,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가장 보편적인 정치 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냉전의 종식 이후 자유주의가 확산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이 글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성격과 역사를 통해 현재 국제 질서의 상황 및 국제 질서의 향방, 그리고 한국이 처해 있는 외교의 상황 등을 살펴본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상당히 논란이 많은 개념으로 국제 질서의 한 국면, 또는 특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흔히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국제 질서를 자유주의 국제질서라고 부르며 지금까지 이러한 질서의 성격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전반적으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논자에 의해 지적되는 바이다. 과연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핵심, 그리고 본질은 무엇이며, 앞으로 국제 질서는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인가는 한국에
게도 중요한 질문이다. 한국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하에서 발전해왔다.

한국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객체였을 뿐 아니라 이를 만들고 보완해가는 데에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본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지금,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향방을 진단해보고 앞으로 한국이 어떠한 국제 질서를 만들어갈 
것이며. 그 속에서 또한 발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미래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국제 정치 장의 변화와 더불어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 보편적인 가치로 확립됐고 새로운 거버넌스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라며 “자유라는 개념 인권의 가치 또한 재정의되고 재확립돼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온전히 정착된 것은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 주도의 단극 패권 체제가 수립하는 1990년대부터라고 볼 수 있다. 공산주의라는 적이 사라진 상황속에서 미국은 다른 국가들의 대 공산권 투쟁을 독려할 이유가 사라졌고 미국은 다른 국가들과 비견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냉전기에 존재했던 동맹국들을 여전히 유지했고 군사적 패권을 지탱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구했다. 경제적으로 막강한 힘을 보유한 미국은 자국 중심의 다자주의 제도들을 확장해나갔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확장이라는 기치 아래 다른 지역과 국가에 대한 개입도 더욱 확대했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확장이라는 기치 아래 다른 지역과 국가에 대한 개입도 더욱 확대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중동 지역에 영향력을 더욱 확대했다.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기획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결정적인 파국을 맞이했다.

30년간 단극적 패권을 유지해오며 국력이 약화된 미국은 패권 유지의 외교 정책에 대해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기에 이른다. 여전히 세계의 리더십을 행사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하며,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민주당과는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 그간 미국이 추진해왔던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기획을 약화, 또는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봤다.

2020년 선거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부활을 내걸며 당선한 조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시기의 미국 외교 정책을 역전시키는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다자주의 제도로부터 일방적으로 탈피했던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뒤집어 파리 기후협약을 비롯한 세계보건기구 등 다양한 제도에 재가입했다. 

민주주의 국가 간 연대를 중시해 전통적인 동맹국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양자 자 안보 동맹을 보다 다층화하는 기존의 미국 외교 대전략으로 회귀했다. 이러한 노력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기반을 이루는 다자주의와 민주주의 연대라는 두 축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분석해보면 다음의 요인들을 지적해볼 수 있다.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됐다는 것이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이를 지탱하는 자유민주주의 패권 국가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국제법, 국제 경제, 안보, 그리고 가치와 문화 등 정체성의 차원에서 다양한 국제 공공재를 제공하는 패권이 존재할 경우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정착된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중국은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강하게 비판하고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안적 국제 질서가 어느 정도 비자유주의적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쟁이 존재한다. 

중국은 다자주의적인 규칙 기반 질서를 매우 강조하고 그 핵심 규범으로서 국가 주권의 존중, 내정 간섭 반대, 주권 평등, UN과 같은 국제 기구 활성화 등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중심의 패권 체제에 대한 반대,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 서구식 혹은 미국식 인권 개념의 무분별한 적용 등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취해왔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향후 새로운 형태로 생존하고 확립될 것인가. 우선, 자유주의 이념은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하는 정치 이념이지만 역사적으로 다른 많은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며 진화해왔다. 20세기 자유주의는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들, 즉, 공산주의, 사회주의, 군국주의, 나치즘, 파시즘과 경쟁해 승리했고, 21세기에 이르기까지 가장 보편적인 정치 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개인의 권리와 가치보다 공동체의 이익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공동체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냉전의 종식 이후 자유주의가 확산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도 자유주의 정치 이념이 국제 정치 차원에서 다양한 이념들과 결합해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국가들만의 합의와 교섭으로는 불가능하고 다양한 기구가 행위자들의 이익과 주장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국제 기구, 사회 집단, 기업, 언론, 개인, 전문가 집단 등 주요 사안들에서 이익이 걸려 있고 목소리를 내는 이해 상관자들이 더욱 증가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국제 정치 이론에서도 모랍칙(Andrew Moravcsik)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정치·국제문제)의 경우처럼, 자유주의 질서란 국가 간의 자유가 아니라, 사회적 행위자들의 자유와 선호를 반영하는 것이 자유주의 국제 정치 이경의 가장 근본적인 명제라고 논의하기도 한다. 

국가는 단지 사회 행위자들이 선호를 채널링하고 조정하는 계기의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초국가 위협의 심화로 국가의 권능이 악화하고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는 상황 속에서 다층적인 거버넌스의 중요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국가들이 주된 행위자였던 과거 자유주의 질서를 넘어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익이 반영되는 질서를 만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상과 같이 미래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국제 정치 장의 변화와 더불어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이념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가치로 확립됐고 앞으로도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자유라는 개념 인권의 가치 또한 재정의되고 과거와 같이 서구 중심적이 아니라 다문화적인 과정 속에서 재확립돼야 할 것이다. 한국 역시 신흥 선진국으로서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고 이러한 가치에 기반한 외교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비서구 국가로서 자유민주주의의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한국이 한국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진화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보다 적극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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