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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혁신으로 환경과 경제성장,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젠더혁신으로 환경과 경제성장, 두 마리 토끼 잡는다
  • 최은미
  • 승인 2023.04.26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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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교수신문 공동기획_ 젠더혁신, 연구와 삶을 바꾸다⑤ 

최근 과학기술 연구에서 성별 편향을 줄이는 젠더혁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문화적인 젠더(gender)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생명 분야는 물론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를 활용하는 과학기술·산업현장·생태계 등에서도 젠더혁신이 주목받고 있다. 교수신문은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GISTeR, 소장 이혜숙)와 공동으로 총 5회에 걸쳐 과학기술과 산업현장 등에서 젠더혁신의 중요성과 동향, 앞으로의 과제를 조명해보는 연재를 마련했다. 이번 호가 마지막이다.

① 기초 뇌과학과 젠더혁신
② 임상의학과 젠더혁신
③ 인공지능(AI)와 젠더혁신
④ 산업현장과 젠더혁신
⑤ 지속가능발전과 젠더혁신

과학기술연구에서 성별 등 편향을 줄이자는 젠더혁신이 지구촌 공동의 약속인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이행을 위한 추진동력으로 부상했다. SDG는 국제사회가 제70차 UN총회에서 2030년까지 이행하기로 결의한 17가지 공동 목표이다. SDG의 핵심가치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세상’이다.

따라서 빈곤과 기아, 건강과 복지, 기후변화와 에너지 등 17가지 목표가 균형있게  달성되려면 SDG의 5번째 목표인 ‘성평등’이 각 목표 안에서 시너지를 이끌어야 한다. 

지속가능발전, 과학기술 젠더 이슈가 주목받는 이유

국내에서 SDG와 젠더혁신 담론을 이끈 성창모 고려대 에너지환경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지구촌의 빈곤과 배고픔을 극복하고 환경보존과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하려면 세계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제사회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SDG의 젠더 평등과 역량은 국가와 부문에 따라 여전히 고르지 않은 만큼 과학기술 개발연구에서의 젠더 편견, 데이터 격차, 제한된 자원, 젠더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뿌리 깊은 사회문화적 장벽을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SDG 5(성평등)의 목표 달성만으로 젠더 평등이 해소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전체 SDG에 젠더렌즈 적용이 필요한 이유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보건·환경·노동·산업·과학 등의 분야에 과학기술 젠더 이슈가 크로스 커팅 이슈(범분야 이슈)이기 때문이다.

실제 환경 변화에 대응한 효과적인 생태계 관리체계 확립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성별이 생물다양성과 생물의 회복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도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있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아프리카에서 농업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평가한 후에 ‘젠더별 차이나 전문가가 제안하는 농업 개발 이니셔티브로 인해 남녀에게 어떤 이득이나 해가 돌아가는지를 고려하지 않은 농업 개발 연구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표명하고, 물과 농업 관련 지원사업 제안서에 젠더 분석을 요구한 사례는 고무적이다. 

공적개발원조, 젠더 이슈 고려한 맞춤지원 필요

기후위기와 식량안보 같은 글로벌 현안은 여성을 포함한 취약계층에게 더 큰 위협 요인으로 작동한다. 무엇보다 지난 3년간 지속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여성·빈곤·난민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소득이 낮은 국가일수록 젠더 이슈가 더 심각하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에서는 많은 여성이 소규모 농사와 수공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자녀의 주 양육자로 기여한다. 가정 내 식수와 에너지 확보와 관련된 역할도 여성의 몫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선진국이 추진하는 다양한 공적개발원조(ODA)도 각 지역별 젠더 역할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경우 성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인도 농촌을 대상으로 진행된 스마트 스토브 지원사업은 젠더 역할과 전통의 가치를 과소평가한 대표적인 실패 사례이다. 동물 배설물 등을 연료로 사용한 전통 스토브를 ‘스마트 스토브’로 대체하여, 여성과 아동의 삶의 질 개선과 지구 온난화 극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인도 여성은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는 스마트 스토브를 외면해버렸다. 그 이유는 고장이 난 새로운 스토브를 여성들이 스스로 고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농촌 빈곤을 연결하는 거시적 수준의 목표를 탈피하고 수혜 지역의 젠더 역할에 대한 특성을 반영해야만 했다. 

ODA의 양적 확대뿐만 아니라 사업기획단계부터 개발협력 전반에 걸친 젠더혁신에 대한 고려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출할 상대국의 문화와 경제상황을 같이 고려해야 해외 진출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지난해 12월 UN 여성기구 서울글로벌센터 발족은 지속가능발전 목표를 이행함에 있어 성인지적 접근을 고민하는 구심점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에 대해 이정심 UN 여성기구 서울글로벌센터장은 “센터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위하여 우수한 정책 사례를 전파하고, 유해한 사회적 규범을 바꾸며, 여러 부문 간의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고 앞으로의 주요 임무를 밝혔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성평등 실현과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에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개발도상국 여성은 새로운 솔루션 개발의 주체

동남아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된 초기 ODA 프로그램은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해 남성들을 대상으로 기술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탄소중립 이행과 여성 일자리 창출은 가사와 지역경제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전문성을 가진 여성을 중심으로 기술을 가르친 후에야 실현될 수 있었다. 

성창모 교수는 “개발도상국에서 여성은 물·식량·에너지 제공자로서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와 기회를 인식하여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하는 역량을 갖춘 핵심 인력이다”라며 SDG와 젠더혁신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했다.

국제단체 맨발대학(Barefoot College)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7개 지역의 농촌 여성 31명을 대상으로 ‘태양 할머니(Solar Grandmothers) 엔지니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가정용 태양광 키트의 조립과 설치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지역 사회에 키트를 보급하고 유지관리하는 주체가 됐다. 이들은 재생 에너지에 대한 지역 사회의 인식 개선을 이끌어냈고, 궁극적으로 불평등 구조와 생활 조건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제단체 ‘맨발 대학’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7개 지역의 농촌 여성 31명을 대상으로 ‘Solar Grandmothers 엔지니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속가능발전목표와 젠더혁신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진=barefootcollege.org 홈페이지

성 교수에 따르면, 5년 전만해도 세네갈,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개발도상국가 정부 관료 교육생 대부분이 남성이었지만, 갈수록 여성 공무원의 참여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는 “성별 특성이 반영된 연구와 ODA는 소외된 집단, 특히 여성을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고, 그들의 지식과 전문성을 강화함으로써 관점의 다양성을 촉진하고, 환경 및 에너지 부문에서 보다 혁신적이고 효과적인 솔루션을 제시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말했다.

성별 특성을 반영한 ODA가 지역의 젠더 격차를 해소하고 환경 및 에너지 부문의 자원과 기회에 대한 공평한 접근을 촉진시켰다. 궁극적으로 경제 발전과 사회적 형평성 달성에 기여한 결과이다. 

탄소중립과 젠더혁신, 새로운 일자리 창출 기회

우리는 6·25 전쟁 직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았던 최빈국에서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하며 공여국으로 신분이 바뀐 세계 유일의 국가이다. 그런 우리가 지난 10여년간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을 추진했지만, 선진 공여국이 되려면 콘텐츠의 다양성과 포용성 측면에서 개선해야 할 것이 많다.

OECD는 젠더 평등을 위한 ODA 사업의 규모를 추산하기 위해 회원국이 ODA 통계 보고 시 사업마다 성평등 관련 요인이 있는지 ‘젠더 마커(Gender marker)’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기입하도록 한다. 지난 1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성평등을 위한 ODA 사업의 규모와 비중이 꾸준히 증가했지만, 그중 성평등을 핵심 목표로 삼은 사업의 비중은 약 5%에 그쳤다. 

이정심 센터장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UN이 추구하는 SDG는 영원히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라며 “센터는 과학기술의 선두주자인 한국의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식허브 역할을 수행하겠다”며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사회적, 제도적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더불어 성 교수도 SDG와 젠더혁신이 핵심의제로 부상한 시대에 한국이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하려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일부 글로벌 대학들이 5년 전부터 SDG 5(성평등)를 대학 자체 평가에 도입하여 수행하듯이, 우리나라 대학들이 젠더혁신을 어떻게 계획하고, 교육과 연구개발에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하나의 평가항목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20~30대 청년들은 2050탄소중립 1세대가 된다. 이들이 이끌 2050년대에 탄생할 새로운 직업과 사회 환경은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을 것이다. 대학이 젠더혁신으로 교육혁신을 이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은미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선임연구원·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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