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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기술 굴기’, 자유연합 전선이 대항마일까…한국은?
‘중국의 기술 굴기’, 자유연합 전선이 대항마일까…한국은?
  • 최승우
  • 승인 2023.05.01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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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㊹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국제대학원)

네이버 ‘열린연단’이 시즌9를 맞이해 「자유와 이성」을 주제로 총 45회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를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본성, 재난과 질병에 대한 제약과 해방 등을 역사, 정치, 철학, 과학기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살펴본다. 지난달 25일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국제대학원)가 「미·중 관계와 패권 경쟁의 미래」를 강연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발췌해 소개한다. 제45강은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협동과정)의 「다원주의적 국제 질서의 철학과 비전」이 예정돼 있다.
자료제공=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미국과 중국 간의 본격화되는 패권 경쟁은 ‘체제가 달라도 거래’할 수 있었던 ‘묻지마 세계화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신냉전의 본격화가 시작됐다. 전체주의의 도전에 직면한 자유민주주의, 규범 중심 다자 체제를 근간으로 한 세계화의 퇴조는 대한민국의 위기로 다가온다.

코로나 팬데믹은 자연재해를 인재(人災)로 키운 불행한 대참사이다. 미국·유럽·중국이 모두 정치적 명분에 매몰돼 사태의 심각성을 경시하다가,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팬데믹이 아니라고 버티던 WHO(세계보건기구)는 그 명칭에서 W(World)를 떼버려야 한다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2020년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공포와 침묵의 봄을 마주한 세계인들을 국적 가리지 않고 유린해버린 팬데믹을 방어하기 위한 국가 간의 공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미국이 떠난 세계화 무대에 중국이 새로운 주역임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중국이 신속하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세계의 협력을 구했다면, 세계가 이 괴물 바이러스와 싸우는 시간은 더 앞당겨졌을 것이다.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려는 시간과의 전쟁도 그만큼 더 빨라졌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을 구했을 것이다. 세계 곳곳의 무수한 실업자, 쏟아지는 파산 기업들을 살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은 뒤늦게 지역 봉쇄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들었고, 피크를 지났다고 판단하자 이젠 미국과 코로나 사태 진원지 논쟁을 벌이는 후안무치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언론과 인권 탄압에도 불구하고 기민·유능·효율을 자랑하던 차이나 모델
은 중국인들에게조차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미국이 걷어차 버린 세계화의 운전석을 이끌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는 날아가버렸고, 차이나 모델의 위험성은 더 선명하게 부각되고 말았다. 코로나 사태는 중국판 세계화에 동승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국제대학원)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동을 건 미국의 중국 견제는 현재 진행형이다”라며 “사람들은 미국과 중국 간의 한국의 선택을 질문한다. 독립 주권 국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가리키는 선택은 결코 애매하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네이버문화재단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확진자가 급증했던 이란·이탈리아의 경우를 보라. 서방의 제재를 피하려는 이란은 중국 자본의 영향권에 들어갔고, 이탈리아 북부 고급 디자인브랜드 공장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접수한 지 꽤 됐다. 국민의 생명이 아닌 경제를 선택한 대가는 치명적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폐렴이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등장하기 직전,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휴전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2020년 1월 15일이다. ‘1단계 무역 협정’으로 알려진 휴전 협정의 핵심은 향후 2년간 미국산 2천억 달러 추가 구매(일상적인 무역 거래 이외 구매이기에 ‘추가’라는 단어가 붙었다)를 중국이 약속한 것이다. 그 2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중국은 약속을 지켰을까. 2021년 11월까지의 미국 통계(피터슨 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의 구매 물량은 약속 물량의 60%를 조금 넘는다. 그로부터 12월 말까지 한 달 사이에 중국이 전광석화처럼 수입 물량을 확대했다는 보도는 없다. 결국 중국은 약속이행에 실패했다. 중국의 변명은 코로나19로 인한 천재지변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코로나19의 진원지이면서도 다른 국가에 비해 비교적 단기간에 경제 반등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중국이 아니던가. 게다가, 농산물·에너지·공산품·서비스 등의 분야에 할당된 구매 물량은 애초부터 시장 수요와는 무관한 인위적인 것이었다. 중국 정부의 구매 약속과 무역 전쟁 휴전을 맞바꾼 것이었다. 구매 약속으로 중국이 벌었던 2년간의 휴전은 끝났다. 협정 이행에 실패한 중국을 미국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미국은 협상을 통해 중국과의 무역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기세등등한 트럼프를 향해서도 “숫자는 가능하지만, 시스템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던 중국이다. 1단계 합의라는 표현은 그래서 동상이몽이었다. 

2020년 11월, 코앞에 닥친 선거를 의식해서 자신의 지지 계층에게 “나만이 중국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라고 기염을 토하고 싶었던 트럼프. 미국의 높아지는 고관세 장벽을 피하고 싶은 시진핑. 이 둘 간의 이해타산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
이 바로 1단계 합의였다.

서구 체제와의 격돌을 선언한 시진핑에겐 중국 시스템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2단계 협상은 있을 수 없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에게 1편보다 더 흥미진진한 2편의 개봉박두를 예고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 트럼프가 퇴장했다. 바이든이 중국을 다루는 방식은 다르다. 바이든은 중국과 2단계 협상을 진행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식물화된 WTO(세계무역기구) 다자 체제를 복원해 중국의 구조적·행태적 문제를 다룰 생각은 더더구나 없다. 그러기엔 바이든에게 부여된 시간은 턱없이 짧다.

트럼프가 시종일관 미국의 근육질 힘에 의존하면서 미국 홀로 중국을 몰아세우기에 열중한 반면, 바이든은 가치 동맹 깃발을 내걸고 반중국 연합 전선을 구성하려고 한다. 반중국 연합이 중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일 수 있지만, 중국은 이런 방식의 협상에 나설 명분을 찾지 못할 것이다.

2020년 대선 유세 과정에서 바이든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맹비난했다. 홍콩 민주화 시위 무력 진압과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을 거론하면서 ‘폭력배‘라고 거칠게 몰아세웠다. 바이든은 모든 국제 관계를 돈으로 환산하던 트럼프보다 훨씬 더 원칙적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바이든은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들과 연합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미국에게 무역 수지 적자를 안겨주는 국가들을 싸잡아 맹공하던 트럼프 시절에는 상상조차 생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바이든의 이런 행보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2차 대전 후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가치를 앞세워 동맹을 결속하던 미국 외교의 정공법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게 사이버 공간은 경제와 안보가 맞물린 새로운 대결 공간이다. 미국이 중국 플랫폼을 차단하지 않았던 것은 소비자 편리성의 경제적 효용이 안보 리스크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 효용은 경제성과 안보 리스크의 덧셈 아닌 곱셈에 더 가깝다. 때문에, 아무리 경제성이 뛰어나도 안보 리스크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그 사회 전체가 누리는 효용은 0으로 떨어진다. 사이버 경제의 신데렐라인 플랫폼의 가치를 소비자 측면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중국은 사이버 플랫폼 통제의 범위를 중국 바깥에서 사용되는 중국산 플랫폼에 외국인이 접속하는 곳까지 확장하려고 한다. 통제의 대상이 된 외국인, 그 국가는 강력히 반발한다. 이는 실제 상황이다. 중국은 2020년 6월 4일 천안문 민주화 시위 31주년 기념 행사를 하려던 시도를 줌(ZOOM)을 이용해서 막아버렸다.

중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서, 중국 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줌의 설명은 의혹만 증폭시키고 말았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사이버 공간을 양분화시킬 태세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열린 사회 대 통제 사회의 패권 경쟁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 시합과 같다. 사이버 공간에서 중국 리스크를 방치하면 자유민주 체제의 가치는 훼손되고 제도는 위협 받게 된다.

2022년 가을,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결정했다. 개혁개방을 설계했던 덩샤오핑 이후 3연임은 처음이다. 중국은 시진핑을 정점으로 당에 의한 국가 통제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본격화되는 패권 경쟁은 ‘체제가 달라도 거래’할 수 있었던 ‘묻지마 세계화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신냉전의 본격화는 역사의 귀환, 지정학의 귀환, 동맹으로의 귀환을 재촉한다. 전체주의의 도전에 직면한 자유민주주의, 규범 중심 다자 체제를 근간으로 한 세계화의 퇴조는 대한민국에게 위기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미국과 중국 간의 한국의 선택을 질문한다. 독립 주권 국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가리키는 선택은 결코 애매하지 않다. 그래서 중간의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은 경제 안보를 내세우는 신냉전 시대를 관통하는 전략적인 질문이 될 수 없다. 

가치 공유 동맹을 축으로 공급망이 재구축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인가에 대한 판단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순진한 이념적·희망적 사고가 아닌 냉정한 현실적인 생각이 요구된다. 그다음 질문은 어느 한쪽 무역 상대국과의 교류가 과거와 같은 규모와 속도로 지속할 수 없게 되고, 심지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면 여기에 대한 상쇄 전략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깃발만 보고 따라갈 것이 아니라, 동맹에 속한 다른 국가들과 연계해서 적극적인 상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동을 건 미국의 중국 견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전 세계 미디어·정치인·기업인들의 머릿속에 확연히 부각된 단어는 ‘글로벌 공급망’이다.

전임자인 트럼프가 시작한 미중 무역 전쟁이 미국 혼자 힘으로 중국과 경제 전쟁을 치른 것이었다면, 바이든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인권’ 가치에 동참하는 국가들과 연계해 중국의 기술 굴기를 저지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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