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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흥망성쇠, 기후가 이끈다
인류의 흥망성쇠, 기후가 이끈다
  • 이동민
  • 승인 2023.05.12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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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 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88쪽

고대 미노스 문명은 엘니뇨 남방진동으로 쇠락
21세기 말, 지구 평균기온 최소 1.5~2도 상승 예측

올봄 날씨는 유별나다. 4월이 지나서야 만개할 벚꽃이 3월 하순에 모두 피었다가 평년보다 훨씬 일찍 져버렸다. 결국 전국의 벚꽃축제와 꽃놀이 축제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이어진 4월에는 기온이 널뛰듯해서 초여름 날씨와 늦겨울 같은 날씨가 며칠 간격으로 오고 갔다. 

세계 곳곳에서 봄꽃이 너무 빨리 피고 빨리 지거나, 과도한 일교차와 같은 이상기후 현상이 이어졌다. 아프리카에서는 매년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를 합한 정도에 맞먹는 면적이 사막이나 사헬 등의 건조지대로 변하고 있다. 몽골 역시 사막화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유목 생활의 터전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ISIL, 탈레반, 보코하람 같은 극단주의 테러단체는 사막화로 인해 빚어진 기근과 빈곤, 치안의 부재를 자양분 삼아 세력을 키우며,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머지않은 미래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질 섬나라 이야기도 심상치 않다. 

 

사실 인류는 선사시대의 기후변화, 정확히는 빙하기와 간빙기의 주기적인 교대가 때맞춰 일어난 덕분에 아프리카 남부를 벗어나 전 세계로 퍼져갈 수 있었다. 그리고 1만여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농경에 적합한 기후가 조성되고, 덧붙여 그러한 기후변화로 인해 경작할 수 있는 식물과 사육할 수 있는 동물이 대거 등장한 덕분에 인류는 지구상에 등장한 지 무려 19만 년이나 지난 시점에서야 비로소 문명의 싹을 틔울 수 있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20만 년이 넘도록 이어진 기후변화, 그리고 마지막 빙하기의 종식이 가져온 지구 환경의 변화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도 아프리카 남부에나 서식하는 머리 좋고 도구를 쓸 줄 아는 야생동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명이 태동한 뒤의 역사 역시 기후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고대 미노스 문명은 지중해 동부를 잇는 교통의 요지 크레타섬에 입지한 덕분에 천 년이 넘도록 번성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 입지 조건이 엘니뇨 남방진동이 초래하는 기근에 유달리 취약한 덕분에 결국 몰락한 뒤 문명의 중심지를 그리스 본토로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로마, 한(漢), 몽골 제국, 명(明) 등과 같은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대제국의 흥망성쇠, 그리고 신대륙으로의 이주나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인류사의 방향을 크게 바꿔놓은 대사건 역시 기후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요컨대 기후는 인류 문명을 태동케 하고 역사와 사회를 이끌어 온 상수였던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기후라는 시각에서 역사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후변화는 근대 이전의 기후변화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인간이 배출한 각종 온실가스로 인해, 기후변화의 속도와 폭이 전근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커졌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는 문명을 이룩한 이래 산업혁명 직전이었던 18세기 말까지 불을 사용하고 논밭을 일구면서 지구 평균기온을 0.8도 정도 올려 왔다. 하지만 이렇게 지구 평균기온이 0.8도 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 잡아도 수천 년에서 길게 잡으면 1만 년이 넘었다. 그동안 지구는 기온이 계속해서 변해 왔는데, 평균기온이 불과 1도만 오르거나 내려도 위대한 문명과 대제국의 운명이 달라질 정도였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올라가면서 인류 문명을 위협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산업혁명 이후 20세기 후반까지 인류는 지구 평균기온을 0.6도나 올렸다. 산업화 이전이라면 수천 년에 걸쳐 일어날 변화가 고작 2백 년 만에 일어난 셈이다. 더욱 암울한 사실은, 오늘날 세계 각국이 파리 기후협약에서 결정한 온실가스 감축 기준을 충실히 따른다 할지라도 21세기 말이 되면 지구 평균기온이 최소 1.5~2도는 상승하리라고 예측된다는 점이다. 전근대 같으면 있을 수도 없었고 감당하기도 극히 어려웠을 기후변화가 이미 현실화된 것이다. 

우리는 기후가 인류 문명과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기후로 세계사를 다시 읽기는 기후변화 시대의 우리가 꼭 수행해야 할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이동민
가톨릭관동대 지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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