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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 재단 너머로 들여다본 ‘사립 공화국’
사립대학 재단 너머로 들여다본 ‘사립 공화국’
  • 김일환
  • 승인 2023.05.10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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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36 한국 사립대학체제 형성과 재단법인의 정치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시시각각 변화했던 사립대학 재단의 모습을 염두에 둔다면, 
단순히 이들의 ‘공공성 결여’를 규범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만족스러울 수 없다. 
오히려 재단법인을 매개로 구축되는 한국 사회 특유의 ‘사적인 것’에 대한 
관념·실천·구조가 무엇인지를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사립 공화국’의 견고한 틀을 넘어설 가능성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복지국가가 내건 구호다. 출생부터 교육을 받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가 나이가 들거나 병에 걸려 누군가의 돌봄에 다시 의존하게 되는 전 과정을 ‘사회’가 함께 책임진다는 원칙이 압축되어 있다. 이 모든 삶의 과업을 개인이 악전고투하며 오롯이 떠안기에는 우리 모두 너무나 취약한 존재이며, 언제나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가 타인의 노동과 서비스에 의존해야 하는 많은 순간에 ‘사립’ 기관의 문턱을 드나들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사회’ 혹은 ‘공공’의 존재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산후조리원, 대학교와 전문학교, 동네 의원과 종합병원, 각종 사회복지 및 요양시설…. 초중등교육 정도를 제외하면, 사회 구성원을 돌보고, 가르치고, 치료하는 이 모든 공적인 사안이 대부분 ‘사립’ 기관에 맡겨져 있다. ‘사립 공화국’이라는 어색한 단어 조합이 너무나 적절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다.(천정환, ‘사립’공화국에서의 교육, 경향신문 2018.10.24)

역설로 가득 찬 재단법인의 기본 구조

나는 최근 ‘사립 공화국’ 한국의 모습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종 ‘재단법인(財團法人)’ 조직의 구조를 면밀하게 뜯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해왔다. 잘 알려져 있듯 한국의 사립학교와 중대형 병원, 다수의 사회복지시설은 대부분 ‘학교법인’, ‘의료법인’, ‘사회복지법인’ 등 특수법인 형태로 개편된 재단 형태의 조직에 의해 설립·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조직을 누가 통제하는지, 재정 자원은 어디서 충당되는지, 민주적 감시와 참여의 통로는 어떻게 마련되는지 등의 사안은 그 자체로 대단히 첨예한 정치적 문제다. 이것이 때때로 종교적·이념적 갈등과 정국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는 광경 역시 그리 낯설지 않다. 한국 ‘복지정치’의 간과할 수 없는 핵심 장소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물론 이에 관한 앞선 연구들이 적지 않다. 다만 보다 근본적인 지점으로 돌아가 재단법인 조직 자체의 성격과 그 변화상을 역사적·사회학적 관점에서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연구는 의외로 드물다. 많은 경우에 ‘재단’은 각기 다른 입장에서 사립기관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주범으로, 혹은 ‘자율성’ 수호를 위한 최후 보루 정도로 상정되어왔을 뿐이다.

하지만 “일정한 목적에 바쳐진 재산에 의해 구성된 법인”으로 밋밋하게 정의되는 재단법인은 사실 재미있는 역설들로 가득한, 그 자체로 흥미로운 탐구대상이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 우선 민간 행위자에 의해 설립된 재단법인에는 출연된 자산의 ‘사적’ 성격과 그것이 전제하는 ‘공익적’ 목적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이렇게 설립된 재단법인은 자산을 투자하거나 시설을 운영하며 이윤을 벌어들이지만, 이러한 경제행위는 비영리성이라는 구속복으로 묶여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역설은 재단법인이 근본적으로 ‘설립자 의지’에 종속된 조직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공적 목적을 띤 재산” 그 자체인 재단법인에는 애초에 인적 구성원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소유주’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립자 의지’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특정 집단에 의한 영속적 지배가 나타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요컨대 설립자의 인격에 단단하게 묶인 재단법인은 시민사회 내의 다른 어떤 조직보다 외부 이해관계로부터 차단된 조직이기도 하다.

앤드류 카네기와 존 록펠러의 자선재단 설립을 풍자한 그림이다. 닐센은 미국 자선재단이 지닌 ‘평등주의 사회 내의 귀족주의적 조직’으로서의 면모를 지적한 바 있다. 
사진=americanaffairsjournal.org

이러한 이유로 근대 이후 재단의 역사에는 고귀한 헌신과 강렬한 소유의식, 찬양과 의혹, 미담과 추문의 양면이 공존해왔다. 임마누엘 칸트부터 소스타인 베블런에 이르는 일부 지식인들은 재단이 사심 없는 증여를 내세워 설립자의 영향력을 영속화하는 ‘봉건적’ 장치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도 재단 조직에 굴레를 씌우려는 시도와 이를 피하려는 움직임 사이의 충돌은 곳곳에서 이어졌다.

따라서 재단은 그 존재 방식 자체가 중대한 정치적 사안이 되는 몇 안 되는 조직이라 할 만하다. 도금시대와 세계대전, 냉전과 전후 복지국가, 신자유주의와 사유화의 물결로 이어진 ‘장기 20세기’의 격랑을 통과하며 재단 역시 변신을 거듭해왔다. 재단이야말로 그 시대의 경제적·정치적 구조와 역사적 변화를 감지하게 해주는 지진계(地震計)라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다.

재단법인과 함께 한 20세기 한국 사립대학

박사학위논문인 「한국 사립대학체제의 형성과 재단법인의 정치」에서 내가 시도한 것은 재단법인을 둘러싼 복합적 정치의 맥락에서 191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의 한국 사립대학의 역사를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었다. 앞서 언급한 내용을 고려한다면, 논쟁과 갈등으로 점철된 사립대학 재단의 역사도 단지 파행의 증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 한국의 압축적 사회변동을 읽어내는 중요한 준거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물론 최근 시도되고 있는 한국 대학사 서술에서 재단 문제는 사립대학 난맥상의 원인으로 자주 언급되어 왔다. 뉘앙스는 다르지만, 각 대학이 펴낸 자기 역사도 연구와 교육 못지않게 재단과 설립자의 행보를 공들여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고려되지 못한 근본적인 질문은 여럿 남아있었다. 두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한국에서 사립대학은 왜 하필 ‘재단법인’의 형태로 제도화되었을까? 이는 기존 논의에서 하나의 대전제에 가까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문적 자치’를 표방하는 대학과 ‘설립자 의지’의 존중이 핵심인 재단법인 사이의 결합은 생각보다 낯선 것일 수도 있다.

사립대학이 재단법인 형태로 설립·관리되는 ‘재단법인형 사립대학’의 역사적 기원은 식민지 시기에서 찾을 수 있다. 1915년 개정된 「사립학교규칙」 이후 사립전문학교에는 예외 없이 재단법인 설립이 요구되었던 것이 계기였다. 해방 이후까지 이어지는 사립대학 재단 역사의 출발점이었다.

여기에는 물론 사립전문학교를 면밀하게 감독하고자 했던 식민권력의 의도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원형인 일본 내지(일본 제국시대의 일본 본토)의 제도다. 소수의 관립 제국대학에 재정을 집중하는 대신, 급증하는 고등교육 진학 수요는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충족시킨다는 것, 그리고 이를 재단법인 형태로 관리하는 것이 1911년 개정된 「사립학교령」 이후 일본 교육정책의 일관된 방침이었다. 다분히 민간 자원의 동원과 관리를 위한 개발주의적 성격의 제도가 식민지 조선에도 거의 그대로 이식되었던 것이다.

일본적 제도의 영향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미군정기 교육관료들은 사립대학은 재단법인만이 설립·운영하도록 한다는 전전(戰前) 일본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재단법인을 규율했던 구 식민지 법령의 효력도 그대로 지속시켰다.

대학 특유의 자치적 요소보다는 재원 확보·관리에 초점을 두었던 일본적 제도는 1950년대의 사립대학 팽창에는 물론 개발독재기의 대학정책과도 잘 부합했다. 대학의 ‘설립주체’인 재단만을 법인으로 하고, 대학은 재단 산하의 ‘시설’이 되는 현재 사립대학의 모습은 이렇게 탄생했다.

2011년 6월 ‘비리재단 반대·재단정상화를 위한 전국대학생 공동대책위원회’ 학생들의 시위 모습이다. 신화화된 ‘설립자’의 지위야말로 ‘비리재단 복귀’의 논거였다. 사진=한겨레

‘출연 없는 지배’의 탄생

둘째, 그렇다면 한국 특유의 사사화(私事化)된 사립대학 지배구조는 언제, 어떻게 출현했을까? 이는 사립대학 운영에 재단법인을 활용하면서 나타난 필연적 결과였을까? 사립대학 재단의 역사에서는 오히려 재단의 소유와 통제, 정당성을 둘러싼 치열한 사회적 경합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재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면에서 농지개혁 이후의 여파는 특히 흥미롭다. 흔히 지주들의 농지 기부를 통해 사립대학 재단 설립을 촉진했던 요인으로 꼽히는 농지개혁은 소작료 수입에 의존했던 재단 경제를 붕괴시키는 요인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대다수 재단이 대학재정 운영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는 상태로 빠져들었다. 심지어 1950년대 중반부터 사립대학 재단은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기능을 상실하고 등록금 수취에만 열을 올리는 ‘기생적’ 존재로 표상되기까지 했다.

자연스레 설립자 권위에 의존한 사립대학 재단 운영의 정당성 역시 근본적으로 의문시되기 시작했다. 학부형과 교수가 재단 이사회에 참석하는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논의, 심지어 재단 폐지론까지 등장하는 상황이었다. 경제적 출연 기능은 마비되었음에도 독점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는 이사회에 대한 불만은 4·19 이후의 ‘학원 분규’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분출됐다. 다른 형태의 제도화 가능성이 열려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대안적 가능성은 5·16 이후 일련의 법제 개혁, 그리고 1963년 「사립학교법」 제정을 통해 봉쇄되고 말았다. 기존 사립대학 재단은 공공성 강화를 명분으로 모두 ‘학교법인’으로 재편되었다. 일부 국가 규제가 강화되었으나, 위협받았던 이사회의 권한도 확고하게 보장되었다. 경제적 출연 기능을 상실했음에도 이사회가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는 ‘출연 없는 지배’ 현상 역시 이후 한층 강화되었다.

1970년대 이후 여러 대학에서는 사후적인 ‘설립자 신화’ 구축을 통해, 혹은 가족 경영을 통해 사적 지배가 공고화되었다. 1980년대 이후 대학 대중화, 보편화가 사립대학 팽창에 의존하는 형태로 진행된 것도 이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커먼즈’로서의 재단법인은 가능한가

연구와 교육기관인 ‘대학’보다는 그 설립·운영 주체인 ‘재단’에 초점을 맞추었던 학위논문의 연장선에서, 나는 이러한 결과가 한국의 사사성(私事性)을 이해하는데 그 함의가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화했던 사립대학 재단의 모습을 염두에 둔다면, 단순히 이들의 ‘공공성 결여’를 규범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오히려 나는 재단법인을 매개로 구축되는 한국 사회 특유의 ‘사적인 것’에 대한 관념·실천·구조가 무엇인지를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사립 공화국’의 견고한 틀을 넘어설 가능성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삐걱거리는 마찰음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의 각종 재정지원이 크게 늘어났고, 공익법인의 책임성에 대한 요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지속적 경제성장과 인구증가라는 개발연대의 조건은 이미 송두리째 붕괴되고 있다.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탄생했던 재단법인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애초에 ‘소유주 없는 공적 자산’의 성격을 내포하는 재단법인은 과연 커먼즈(commons)로 기능할 수 있을까? 어떤 정치사회적 과정이 이를 가능하게 할까? 이런 쉽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도 찬찬히 찾아보고 싶다.

김일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2022년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한국 사립대학체제의 형성과 재단법인의 정치」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논문에서는 식민지기부터 1970년대 후반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 한국 특유의 사립대학 재단 지배구조가 출현하는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고자 시도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교육·복지·의료 등 여러 영역에 뿌리내린 민간 재단의 독특한 구조와 성격을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져왔다.지은 책으로는 『절멸과 갱생 사이: 형제복지원의 사회학』(공저), 논문으로는 「‘부재지주’, ‘영리기업’에서 ‘기생적 존재’로: 1950년대 문교재단의 경제적 실천과 한국 사립대학」, 「지역에서의 ‘부랑인’ 수용과 민간 사회복지: 1960-70년대 부산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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