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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어떻게 주고 어디에 쓰게 할까?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어떻게 주고 어디에 쓰게 할까?
  • 유원준
  • 승인 2023.05.16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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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대학지원체계 현주소:무엇이 문제인가?

대학지원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대학개혁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대화는 부족하다.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와 전면 폐기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넓은 시각에서 대학의 체제를 진단하고, 현실에 기반한 문제 제기와 현실적·구체적인 대안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고자 한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대학정책 TF가 정부 정책의 난맥상을 짚고, 자성이 필요한 대학 내부와 교수사회의 문제까지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

① 대학지원체계 현주소:무엇이 문제인가?
② 국립대학지원체계 원칙:국립대 정체성에 합당한 지원 방안
③ 사립대학지원체계 원칙:학교법인 평가 연계 지원 방안
④ 대학지원체계 3원칙과 집행 방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정부의 자의적 장악과 책임 회피이다. 
우리나라 대학이 직면한 문제점은 해방 이후 누적된 역사의 결과물이며, 
지금도 관성을 가지고 진행 중인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지나친 ‘관주도 대학체제’라는 점에 천착해야 
비로소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

안개가 자욱하다. ‘무진기행’(霧津紀行) 속의 묘사를 절로 생각나게 하는 짙은 안개다. 마음은 급하지만 그렇다고 서두를 수는 없다. 그저 해가 뜰 때까지 인내하며 조심스레 운전하는 수밖에 없다. 대학을 둘러싼 짙은 안개가 30년이 넘도록 걷히지 않고 있다. 대학가를 둘러싼 거대한 호수를 옮기기 전에는 짙은 안개가 걷힐 가능성이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성급한 탈출을 꿈꾸는 성급한 대안이 난무하고 있다. 댐을 쌓아 호수를 만드는 것만이 지역 개발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던 이가 교육부 장관이 되자 이제는 댐을 빨리 허무는 것만이 대학이 살길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라이즈·글로컬’ 신약처럼 광고하지만

사실 대학을 채근하는 교육부는 대학의 병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성급한 약물 오남용으로 오히려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내세우며 설립기준을 낮춰주고 대폭적인 증원을 허용하며 대학의 질적 저하를 초래해놓고, 다시 질적 향상을 꾀한다며 이런저런 신약으로 임상 실험을 한 것이 교육부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용한 ‘NURI·CORE·PRIME’ 등 신약의 약효는커녕 오히려 부작용이 심각했다는 점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약간의 약효를 인정받은 ‘ACE’, 유일하게 20년째 장기 복용 중인 ‘BK21’을 제외하면 임상 실험조차 아까운 부실한 정책이었다.

이번에 떠들썩하게 들고 나온 ‘RISE·GLOCAL’이란 약도 사실 ‘RIS·WCU’의 포장만 그럴 듯 하게 바꾼 것이다. 백년대계의 대학 정책에 3년이나 5년짜리 단기 사업을 남발하는 것은 실패를 예상한 교육부가 성과 검증을 가로막기 위해 채택한 영악한 노림수였다.

민주화와 효율성이라는 두 갈래의 처방

이제 교육부가 대학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특효약’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교수들도 절로 조급해지는 마음을 진정하고, 병의 원인을 차분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동안 교수들이 내린 결론을 살펴보면 ‘민주화’와 ‘효율성’이라는 두 갈래의 처방이 있었다.

민주화를 강조하는 측은 대학 자치의 결핍이 만병의 근원이었고, 신자유주의의 오남용이 병을 키웠다고 믿는다. 법인에 대한 제도적 견제, 총장 직선제를 비롯한 대학 자치의 강화, 나아가 대학지배체제 자체를 손대야 한다며 공영형사립대와 연합대학체제 등을 그 처방으로 제시하였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측은 법인의 자율성 확대, 안정적 재정 확보, 무한경쟁을 강조하며 학부제, 국제화, 연구실적, 연구비, 신입생 충원율, 취업률 등 양적 지표 개선을 그 처방으로 제시하였다. 특히 악성 종양으로 커져버린 이른바 ‘한계대학’에 대한 외과적 수술의 필요성도 강조하였다.

전자는 다수 교수와 교수단체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민주화만 되면 대학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막연한 추론만 제시할 뿐 법인 기득권의 조정과 법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 방안 대신 구호만 앞세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년 넘게 논의만 될 뿐 실행하지 못한 진부함과 함께 대학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요청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그 한계로 지적된다.

후자는 경쟁을 통한 양적 지표 개선이라는 외형적 성과는 거두었지만, 오히려 대학 교육에 대한 학생의 만족도와 사회의 기대가 떨어지고, 전반적인 국가의 발전 속도에서 대학이 뒤쳐지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학의 무기력증이 만성적 질환으로 심화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속 시원한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밖에도 ‘서울대 10개 만들기’처럼 재정만 투입하면 대학이 좋아진다는 순진한 주장도 있다.

문제는 정부의 자의적 장악과 책임 회피

하지만 민주화의 지체, 효율성의 저하, 재정의 부족은 ‘대학병’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결과에 더 가까운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의 근원은 정부의 자의적인 정책 남용과 책임 회피이다. 정작 장악해야 할 것은 놔주고, 풀어줘야 할 것은 움켜쥐는 오랜 잘못된 관행이 지금도 여전하다.

따라서 우리 대학이 직면한 문제점은 본질적으로 해방 이후 누적된 역사적 결과물이며, 지금도 관성을 가지고 진행 중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관주도 대학체제’의 부작용에 천착해야 비로소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

일부 진보 성향 학자들은 신자유주의·시장주의가 우리 대학 생태계를 망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대학 생태계에 적용된 적이 있었던가? 지난 20년간 19개 대학이 폐교되었지만, 법인 청산이 완료된 곳이 1개에 불과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교육부를 먹여 살리는 떡은 주로 허약한 대학, 부실한 비리 대학이 제공하는데 이런 대학의 정리가 ‘관주도 대학체제’에서 가능할까?

‘관주도 사립대’라는 역사적 특성… 
대학생태계 현실 인정하고 해법 찾자

또 우리나라 대학의 80%가 넘는 사립대학이 과연 진정한 사립대학일까? 사립대학의 자율성이 과연 관철된 적이 있었는가? 학과 설치와 입학정원에 교육부가 개입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가? 정권 교체 주기에 맞춰 사업 기간을 겹치게 설정하여 목적사업마다 중고품으로 만든 교육부 때문에 우리는 새 정부의 새 정책을 제대로 경험한 일이 없다.

따라서 ‘관주도 사립대학’이라는 기형적 대학 생태계가 우리나라의 역사적·구조적 특성임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비로소 올바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우선 부모도, 출생신고 용지도 다른 국립대와 사립대에 동일한 처방전을 남발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살림살이가 옹색하지만, 국립대만은 양육비를 책임지겠다고 약속했고, 사립대는 알아서 살라며 애써 외면해 왔다.

문제는 열 명의 자식 가운데 양육을 포기한 자식의 수가 8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윳값 한 번 대준 일이 없는 정부가 알아서 커버린 자식 앞에 나타나 온갖 간섭을 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빵 하나 훔쳤다며 사학법인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착취하는 형국이다. 유사한 성장 과정을 거친 일본의 대학사와 비교해 보면 양국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구조조정 확고한 의지? 남은 체력까지 소진할까 두렵다

그러자 정부는 국립대와 사립대를 공평하게 대한다며 한가지 평가지표를 들이대고 ‘국립대의 사립화’와 ‘사립대의 국립화’라는 말도 안 되는 성과를 강요하였다. 정부 책임의 국립대 재정지표를 사립대와 평면 비교하였고, 교육부가 책임져야 할 교수 확보율의 책임을 해당 국립대에 물었다.

일률적인 통폐합을 강요당한 대형국립대의 지표는 갑자기 낮아졌고, 특성도 약해지자 ‘국립대’에서 ‘지방대’로 그 성격이 바뀌면서 사립대와 마찬가지로 생존의 위기에 고심하게 되었다. 단일 지표 강요의 결과는 항상 서열화의 강화와 특성화의 실종이었다.

최근 교육부는 ‘글로컬 대학’이란 ‘오래된 신약’을 5년 동안 처방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약값은 한 학교당 1천억 원이라고 한다. 14년에 걸친 등록금 동결에 시달려온 대학으로서는 반갑기 그지없어야 하나, 정작 ‘마루타’가 된 대학은 ‘오래된 신약’의 등장에 겁을 먹고 있다.

이번에도 국·사립의 구분이 없고, 대학 체형에 대한 고려가 없으며, 체질에 대한 배려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구조조정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평가의 관건이라니 지표 달성을 위한 과도한 에너지 낭비와 내부 갈등의 확산으로 대학의 본질적 기능이 더 저하되면 그나마 남은 마지막 체력까지 소진할까 두려운 것이다.

대학의 존립 기반인 대학법도 없이 70년간 대증요법으로 일관해 온 오랜 잘못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급변하는 사회에 능동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를 통한 대학 만들기를 목표로 하되 일단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는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애시당초 아무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어설픈 신약을 환자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영양가 있는 음식을 넉넉하게 주고 알아서 먹게 해주는 편이 낫다.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라는 안내판을 보게 될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라며, 무진을 떠날 그 구체적인 대안을 후속 호에 넘긴다.

유원준 경희대 사학과 교수
대만 중국문화대학에서 송대사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대외협력처장과 문과대학장, 서울캠퍼스 교수의회 의장을 지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정책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대학교수노동조합연맹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대학자치의 역사와 지향 Ⅰ,Ⅱ』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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