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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가정 청소년의 ‘가출팸’, 새로운 가족의 미래일까
탈가정 청소년의 ‘가출팸’, 새로운 가족의 미래일까
  • 추주희
  • 승인 2023.05.1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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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37 탈가정 청소년과 가족공동체의 미래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탈가정 청소년의 ‘팸’ 생활은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사회적 배치를 만들어내는 징후이자 
가족과 친밀공동체의 재편을 위한 전망을 제시한다.

현재 전남대 HK+가족커뮤니티사업단 소속이어서 가족사회학 연구자로 인식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진짜 관심사는 가족에 대한 주류 사회학적 관점에 대한 도전과 문제 제기에서 출발한다. 가족을 탈출한 청소년들의 자생적 커뮤니티를 소수자적 관점에서 연구한다.

사업단에 들어온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지도교수는 “소수자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도에 포섭된 채 가족 연구만 하는 것 아니냐며 농담처럼 변절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탈가정 청소년의 삶과 커뮤니티에 관한 연구가 단순히 일탈적 하위문화 연구, 혹은 게토화된 취약 집단에 관한 사례연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탈가정 청소년과 가출팸

사회에는 ‘가족’이라 규정되지는 않으나 그 나름의 공통성을 지닌 소수자 집단과 관계가 존재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지역의 ‘탈가정 청소년들’과 그들이 이룬 ‘가출팸’의 생활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탈가정 청소년’이란 급격한 사회변동에 의해 초래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원가족(혈연가족)을 벗어나 주거생활을 하는 청소년을 가리킨다. 이들은 원가족 내 보호자의 동의나 묵인 아래 장기간 일정한 주거가 없이 시설을 전전하거나 주거로서 부적절한 곳에서 ‘가출팸’을 이루어 생활한다.

기존의 ‘가출 청소년’이나 ‘위기 청소년’ 개념은 탈가정 현상을 사춘기 청소년의 일시적인 일탈이나 비행으로 간주하고, 원가족으로 복귀하는 것을 해법으로 내놓는다. 이에 반해, ‘탈가정 청소년’ 개념은 청소년들이 집을 나오는 행위를 중산층 핵가족 모델의 해체와 사회안전망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현대사회의 불안정한 구조의 결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제도 비판적이다. 

사소한 연구라는 비판과 냉소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기존 주류 사회학의 관점에서는 주변화되고 가장자리에 놓인 존재들, 즉 소수자들에 관한 경험 연구는 굉장히 사소하고 대표성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렇게 나는 학계에서 무척 “사소한” 연구 혹은 편향된 연구를 하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혹자는 나의 연구가 소수자의 자율적 주체성에 기울어져 이들을 사회에 균열을 내는 행위자로 이상화한다고 말한다. 정책적 활용이나 제도적 반영이 불가능한, 실증적이지도 일반적이지도 않은 예외적 사례를 연구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내 연구는 가출 청소녀와 원조교제 십대 여성을 주목한 일부 여성학 연구와도 맞닿아 있었지만, 보호를 명목으로 한 십대 남성의 폭력성과 작은 포주로서의 역할 등 팸의 가부장성을 왜곡 또는 은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듣기도 했다. 

나는 “네 연구 주제는 사소해”라는 은근하고 오랜 가스라이팅 끝에, 사소한 연구를 하는 소소한 사람이라는 자기 의심에 늘 짓눌려왔다. 솔직히 말하면, 무려 “천하제일연구자대회”라는 지면에 나를 소개하고 내 연구의 중요성을 어필해야 하는 이 상황도 꽤 불편하다.

남성 중심적인 학계의 주류적 언어로 내 연구의 중요성이 평가절하 당하던 순간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유사한 맥락에서, 다수자를 대상으로 다수자의 언어로 소수자 연구의 가치를 설득하는 일은 시도조차 하기 전에 피로감을 주었다.  

그러나 나의 또 다른 자아는 ‘탈가정 청소년’ 연구가 거시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탈가정 청소년의 ‘팸’ 생활은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사회적 배치를 만들어내는 징후이자 가족과 친밀공동체의 재편을 위한 전망을 제시한다. 여기서는 세 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친밀공동체 전반과 관련하여 이 연구의 의의를 말하고 싶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는 탈가정 청소년의 생활은 영화 「박화영」에서 드러나듯 착취와 피해의 구도로 읽히기도 한다. 10대 생존기를 다룬 영화 「박화영」의 한 장면이다. 박화영의 집에 모인 청소년들은 매일 라면을 먹고, 매번 담배를 피우고 동갑인 화영을 ‘엄마’라고 부른다.

‘팸’ 생활, 또 다른 삶의 공간의 가능성

첫째, 탈가정 청소년들의 ‘팸’ 생활은 사회가 정한 법과 제도의 외부로 불법화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사회 안의 또 다른 삶의 공간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탈가정’ 행위는 일탈이나 비행처럼 사회적 규범의 위반 또는 원가족의 빈곤으로 인해 발생하는 예외사례로 간주되었다. 물론 탈가정의 맥락에는 빈곤, 물질적 결핍감, 가정폭력 등의 문제가 주요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탈가정 청소년들이 원가족과 집을 떠나 독립생활을 모색하는 과정에 대한 구조적 차원의 분석은 부족했고, 이들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 또한 미비했다. 청소년은 원가족 내에서 성인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대전제가 유지되는 한, 자기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집’을 나온 이들조차도 여전히 ‘가출’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탈가정 청소년을 포함하여 대개 소수자들은 ‘잠재적 사회위험 요소’로 인식되거나, 이들이 생존을 위해 강구하는 다양한 역량은 범법적이거나 비합법적인 것으로 평가절하된다. 따라서 이들의 삶의 역량은 ‘정상화’ 또는 ‘안전’을 이유로 낙인찍힌 채 관리되거나 제약되었다.

하지만 팸 안에서 일상적 상호작용과 생활규칙의 자율적인 마련과 준수가 이뤄진다면, 탈가정 청소년의 공간은 불법적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공간이 된다. 그렇다면 팸에서 살아가는 탈가정 청소년도 시민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고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 탈가정 청소년 연구는 시민으로서 동등하게 누려야 할 소수자의 권리를 제한해온 역사와 제도 및 규범들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돌봄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청하다

둘째, 기존 사회복지체계에서의 시설화나 원가족 복귀라는 양자택일적 해법을 비판하고 돌봄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청한다. 

탈가정에서 ‘탈’(脫)은 단순히 가족에게서 벗어났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령상 이들은 여전히 ‘미성년’이기 때문에, 쉼터에서 거주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성인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탈’가정은 혈연가족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혈연가족은 이들의 삶 전반을 지원하거나 안정적 돌봄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관계는 매우 느슨해지고 약화된다. 오히려 이들에게 ‘집’은 사랑과 돌봄의 결핍, 경제적 지원의 부족, 인격적 차별과 폭력의 공간이며, 안전과 돌봄을 제공하기보다 불안과 상처를 주는 역기능의 공간이었다.

이들이 당면한 문제들은 원가족 내에서 해소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집’이 될 수 없는 공간을 떠나 다른 살만한 집을 찾아 떠돌고, 자기 삶의 구조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또래들과 새로운 커뮤니티(가출팸)를 계속해서 만들어 낸다.

따라서 탈가정 청소년이 처한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해서는 원가족 복귀를 강제하거나 청소년 보호시설로 수렴하는 방침은 적절한 대안일 수 없다. ‘탈가정’에 대한 정책적 고려는 ‘탈’(脫)의 행위성에 더욱 주목해야 하고, 청소년들의 탈가정 행위에서 이들이 새롭게 만들어 내거나 재구성하는 사회적·공간적 관계의 맥락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아무도 모를 때』(2020, 소년의서)는 광주 도시형 대안학교 ‘늘품’에서 함께 한 탈가정 청소년들의 말과 글을 엮은 책이다. 가출, 가족, 자취, 영화 「박화영」, 알바, 팸, 담배, 신용불량, 임신과 출산 등에 관한 경험담과 생각이 담겨 있다.

공존을 위해 ‘새로운 가족실천’을 수행하다 

셋째, 새로운 가족실천과 가족구성권의 정치학을 제안한다.

탈가정 청소년은 필수적인 돌봄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게토화된 커뮤니티를 ‘팸’(fam)이라고 부르며 함께 살아가기를 시도한다. 이들은 정상가족의 틀과 규범으로 포착할 수 있는 삶의 실천, 즉 ‘가족실천’(family practices)을 수행한다.

탈가정 청소년의 주거 독립생활은 여전히 임시적이고 시행착오를 거듭할 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불완전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가족실천을 통해 자신이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를 무엇보다 스스로 고민하는 삶을 일구어 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십대 남성의 보호 속에서 성매매나 조건만남을 통해 유지되는 팸 형태들이 주로 가시화되었기에, 팸은 유사 범죄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팸의 형태는 다양하다. 오히려 공동주거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분담하는 소규모 형태의 팸이 더 많기도 하다. 이들은 주로 지역 내의 또래 네트워크와 연결되며, 물질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교류를 통해서도 개인의 취약성을 상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의 삶은 분명 새로운 가족실천을 보여준다. 팸은 원가족의 지원이 없는 탈가정 청소년이 생계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출발한다. 이 과정에서 팸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미성년-미숙련-저학력으로 인한 취약한 노동 지위와 맞물려 정주하며 살 수 없는 또 다른 역설을 낳는다. 

팸을 가족으로 인정할 것인가…가족의 미래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있는 탈가정 청소년의 생활은 영화 「박화영」에서 드러나듯 착취와 피해의 구도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맥락과 행위는 매우 복합적 요인을 수반한다. 나는 이러한 팸을 가족으로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규정하는 양자택일 구도를 넘어서서 이들 청소년의 팸 생활에서 드러나는 가족실천과 돌봄 관계의 현상 자체에 주목하고자 했다.

다양한 팸에서 가족과 사회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해지고, 때로는 혼합되면서, 개인은 새로운 관계맺기를 통해 가족과 친밀공동체를 재구성한다. 의존과 돌봄에 대한 전형적인 모델은 성인-이성애-핵가족 질서를 기준으로 돌봄과 보호의 책임을 분배한다.

그러나 탈가정 청소년의 팸에서 드러나는 돌봄의 비대칭성은 이들의 공동생활이 한편으로 폭력과 위압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돌봄 제공자와 돌봄 수혜자라는 이분화된 역할이 불가능한 관계에서, 상호의무와 책임에 대한 합의를 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돌봄이 가능할 수 있으며, 그 가운데 교차적이고 우연적인 유대관계가 형성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도무지 가족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가족구성권조차 상상할 수 없는 소수자들의 다르게 사는 삶에 비추어 나는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 질문하고, 그 권리 요청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싶다. 무엇보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가족구성권에 대한 실질적 접근은 규범을 벗어나서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사람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런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는 쉽게 가시화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순히 권리 차원의 운동이나 담론을 넘어서서 이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 즉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추주희 전남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전남대 사회학과에서 「탈가정 십대의 주거와 이동성에 관한 연구」(2015)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남대 인문학연구원 HK+가족커뮤니티사업단에서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소년 혐오인가 사회위기인가?: 위기청소년 담론에 대한 비판적 시론」(2019), 「거리에서 개입하기: 광주지역 성매매 청소녀 지원활동을 중심으로」(2022), 「가족의 경계와 질서의 재구성: 탈가정 청소년의 ‘팸’ 생활에서 나타나는 돌봄과 친밀성을 중심으로」(2021), 「청소년 한부모의 가족구성권에 대한 비판적 탐구」(2022), 「지방대 학문후속세대의 여성학하기: 전남대 여성연구소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2022) 등이 있다. 소수자와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지역의 청년여성, 여성노인, 장애여성, 성소수자, 성매매여성 등의 다양한 계층들을 연구하고 있다. jh.chana3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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