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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없는 세상
대학이 없는 세상
  • 김예나
  • 승인 2023.05.22 0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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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김예나 한양대 대중문화 시나리오학과 박사수료
김예나 한양대 대중문화 시나리오학과 박사수료

물론이다. 대학만 없는 세계는 아닐 것이다. 지금의 세계 자체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학생을 유치하지 못하는 대학들이 존폐 위기이거나 폐교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갈 수 있는 직장이 정말 말 그대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또, 대학과 대학생, 교직원들과 함께 생계를 이어나가던 분들의 세계도 파괴된다. 어떤 지역은 지역 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사라짐을 가속화하는 일들만 계속해서 일어난다. 극단으로 치닫는 자본주의로 인한 세계의 황폐화와 전쟁, 기후위기 등등은 세계의 멸망까지 남은 숫자를 점치는 것이 화제의 중심을 차지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세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언제나 이야깃거리가 되지만, 그 폭주하는 열차에서 아무도 뛰어 내리지도 열차를 멈추지도 못하고 있다. 

물론 공부를 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원래부터 불안한 고용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것은 맞다. 뛰어날 것도 별로 없는 인문학 전공자는 시간 강사를 꿈꾸기에도 언제나 벅찼다. 문제는 공부한다고 나이도 많이 먹어서 더 이상 취업 시장에서 상품성은 거의 없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에 불평불만만을 할 수는 없지만 불안과 쓸모없음, 그야말로 ‘쓰레기’가 된 것 같은 삶을 견뎌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게다가 여러 가지 IT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인간 강사는 거의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속출한다. 교육 콘텐츠를 메타버스 공간에서 공유하는 세계는 멀지 않았고, 실제 인간 강사는 지금처럼 학교마다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기존 논문을 정리하는 것도 AI의 속도나 정확성을 따라잡을 수도 없다. 현재 교수는 역할도 수도 분명히 축소되는 쪽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고, 학력을 인증해주는 기관의 코디네이터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을 들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2020)은 세상을 먼저 등지려고 한 주인공에게 세상이 먼저 망해버린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다. 이것이 지금 여기를 감각하는 징후적 텍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서 은둔하며 살 수 있을 때까지만 살다가 가려고 했는데, 바깥세상 또한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파괴되어 조용히 죽지도 못하게 만든다.

대학원생을 포함한 이 시대 노동자와 노동자가 될 사람들이 겪어내고 있는 공통감각으로 읽힌다. 어쨌거나 공부하는 사람으로 나를 정체화한 이상 체득한 것을 적용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 문득 올라왔다. 대중문화 전공자인 나는 문화콘텐츠를 보고, 그 작품 안의 하나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을 경유하여 현실을 성찰하고 비판한다.

성찰은 지금 여기 자연화되어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구조에 작은 구멍을 내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지금의 세계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도저히 타파할 수 없을 것 같은 골리앗같은 제도를 즉, 대학이라는 공룡을 한 번 해체 구축해 볼 수 있는 기회로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를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이 단체는 2011년 대학거부선언, 대학입시거부선언을 계기로 설립되었으며, 경쟁과 차별 중심의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학이라는 학교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심하게 하는 ‘몇 학번이세요?’라는 폭력적인 질문에 경종을 울린다.

그들이 소개해준 비(非)진학(進學)이라는 모토는 고민도 없이 정해진 길로 무조건 나아가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 같다. 또한 비진학(非進學)이라는 하나의 분과 학문을 세울 수 있을 만큼 현재의 제도가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현재 대학 안에 여러 가지 불합리함을 느끼는 사람들과 소위 능력주의라는 탈을 쓰고 있는 사회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지점이 대학이라는 거대한 구조를, 그리고 미래의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포기하지 말고 같이 바꾸어나갈 사람들에게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콧 핏츠제럴드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예컨대 우린 상황이 희망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상황을 바꾸려는 단호한 결심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김예나 한양대 대중문화 시나리오학과 박사수료
영국 리즈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한양대 대중문화 시나리오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드라마에서 한국현대사 성찰과 재현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최근 실비아 페데리치의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를 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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