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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에 대한 正名이 우선이다
‘기초’에 대한 正名이 우선이다
  • 이강재
  • 승인 2023.05.22 07:54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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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강재 논설위원 /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이강재 논설위원

제자 자로가 정치에서 무엇을 먼저 할지 묻자, 공자가 이름을 바로 잡겠다고 답한다. 자로는 공자의 현실 감각을 불평하지만, 공자는 그런 자로를 질책한 후 이름을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정명(正名)’의 출처이다. 명칭의 중요성은 명칭이 정확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를 만나면 절실해진다.

문재인 정부는 기초연구비를 2배로 늘린다고 공약했다. 5년 동안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의 예산은 1.26조 원에서 2.5조 원으로 늘었다. 처음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연구비의 증액이 실현된다고 환호했다. 곧 기초연구에 인문사회가 포함되지 않음을 알고 실망한다. 기초과학자 역시 그들이 원했던 방식이 아님을 알았다.

더구나 현 정부는 앞선 정부에서 이미 예산을 두 배나 올려주었으니 더 늘려줄 수 없다고 한다. 연구비의 증액으로 학문후속세대를 살리겠다던 인문사회나, 실험 장비 개선과 연구 성과의 획기적 발전을 기대한 기초과학 모두 실망이 컸다.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본부에는 자연과학단이나 생명과학단 외에 공학단, ICT융합연구단 등이 속해 있다. 기초연구가 기초과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문사회는 스스로 기초학문이고 기초연구라고 생각하는데, 이미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를 수 없는 홍길동과 같은 처지이다.

기실 기초연구란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국책 사업을 제외한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지원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과학재단과 학술진흥재단이 통합하여 출범한 한국연구재단의 태생적 한계와도 관련이 있다. 과학재단에서 지원해온 기초연구라는 명칭을 그대로 쓰면서 통합 전 학술진흥재단에서 해온 인문사회의 기초연구는 배제되었다.

기초연구진흥법은 기초과학진흥법에 근원을 두고 있지만, 기초과학 대신에 기초연구라는 말을 쓰면서 원래의 법률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화물생지’(化物生地)의 기초과학은 여전히 홀대받고, 거점국립대학조차 자연대학이 없어지고 있다.

기초과학자들은 과학기술 정책연구 조직인 STEPI나 KISTEP 등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불신은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인문사회에서 요구하는 학술기본법과 정책연구기관 설립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도 여기에서 나온다.

선도국가를 지향한다면 추격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대부분 동의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의견이 다양하다. 서울대 이정동 교수는 ‘최초의 질문’을 강조한다. 중요한 지적이다. 챗GPT 등장으로 질문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최초의 질문은 원래의 것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다. 기초과학, 기초학술에 대한 중시를 말한다.

자연대학이 문을 닫고 있는데, 반도체 학과를 증설한다고 반도체 분야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정치, 경제를 연구하는 학문은 차치하고라도 물리학을 비롯한 관련 기초과학이 무너진다면, 이는 근시안적 시각일 뿐이다.

이름을 바로 잡아야 한다. ‘기초’, ‘응용’, ‘개발’이 고정된 순서는 아니어도, 기초가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야 한다. 기초연구가 제대로 정의되지 않으면, 기초학술의 두 축인 기초과학과 인문사회의 어려움은 물론 기술개발도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 과학기술계에서 그간 논의가 있었겠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인문사회계가 포함된 논의를 통해 이름을 바로 잡자.

이강재 논설위원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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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3-05-23 10:42:31
잡겠다(必也正名乎).” 자로가 말했다. “이러시다니까요, 선생님께서는 세상의 실정을 너무 모르십니다. 어떻게 바로잡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촌스럽구나, 너는! 군자(君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제쳐놓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명칭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알맞지 못하고, 형벌이 알맞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가 명칭을 붙이면 반드시 말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있으면 반드시 행할 수 있으니, 군자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구차히 함이 없을 뿐이다.”

이처럼 공자는 임금

윤진한 2023-05-23 10:47:55
아직 명칭이 없는 용어인경우, 그에 적절한 이름을 붙여나가는 순서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올바른 사색의 과정이 있어야, 이름.용어가 만들어진다는 유교철학적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다. 正名은 한한중(漢韓中)사전에서는 명분에 상응하여 실질을 바르게 함. 이를테면 군신, 부자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윤리와 질서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원래 공자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하면서, 철학적 용어로, 명칭에 상응하는 실질의 존재로 이해하시는 개념도 가지시면 적당합니다.@유교적 명분이란 각각의 이름이나 신분에 따라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군신, 부자, 부부 등 구별된 사이에 서로가 지켜야 할 도덕상의 일로 유교적측면으로 이해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윤진한 2023-05-23 10:47:13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는 정명(正名)사상, 즉 모든 사람은 자기의 명분에 해당하는 덕을 실현하여야 하고 모든 사물 또한 그 실상에 대응하는 실제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전하여 명정언순은 어떤 행위가 명분에도 맞고 도리 상으로도 어긋나지 않을 때를 가리킨다.
.출처:명정언순 [名正言順]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正名은 공자님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어,전통적인 儒者들과, 현대의 철학도들이 배우는 용어입니다. 철학적으로 이름부터 바로잡겠다고 이해할수도 있지만,공자님의 원래 가르침은, 명분이 바로서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게 전달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랜 번민과 사색속에 정당한 사상이 싹트고 난후에, 아

윤진한 2023-05-23 10:40:07
@논어 자로(子路)편 3에 나오는 가르침입니다.
子路曰: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子曰: "野哉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已矣."
기원전 501년 노(魯)나라에서 벼슬을하던 공자(孔子)는 정공(定公)이 향락에 빠져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않고 예법을 지킬 줄 모르자 노나라를 떠나 위(魏)나라로 갔다. 어느 날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의지하여 정치를 한다면 선생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반드시 명칭명분을 바로잡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