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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만 키운 ‘1도 1국립대’…지역 소멸 앞당기는 ‘지방대 시대’
덩치만 키운 ‘1도 1국립대’…지역 소멸 앞당기는 ‘지방대 시대’
  • 김유경
  • 승인 2023.05.2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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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② 국립대학지원체계 원칙:국립대 정체성에 합당한 지원 방안

대학지원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대학개혁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대화는 부족하다.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와 전면 폐기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넓은 시각에서 대학의 체제를 진단하고, 현실에 기반한 문제 제기와 현실적·구체적인 대안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고자 한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대학정책 TF가 정부 정책의 난맥상을 짚고, 자성이 필요한 대학 내부와 교수사회의 문제까지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
① 대학지원체계 현주소:무엇이 문제인가?
② 국립대학지원체계 원칙:국립대 정체성에 합당한 지원 방안
③ 사립대학지원체계 원칙:학교법인 평가 연계 지원 방안
④ 대학지원체계 3원칙과 집행 방안

 

2000년대 들어 강행한 국립대의 무분별한 통폐합은 
양적 축소와 질적 약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소규모 국립대가 사라진 도시에서는 지역에 밀착된 
고등교육 서비스와 평생교육 기능이 사라지면서 
지역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 

86%, 85%, 73%. 2021학년도 일부 국립대의 신입생 충원율이다. ‘국립대도 미달 속출!’ 심지어 ‘부산대나 경북대 등 거점 국립대조차 추가모집!’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헤드라인이었다. 오래전부터 회자되던 벚꽃 엔딩의 속설이 입증이라도 된 듯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언론보도의 이면에는 은연중에 국립대학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담겨 있다.

초창기부터 우리나라 대학은 설립 주체에 따라 국립대와 사립대로 구분되었고, 이 구분은 각기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준이었다. 1도 1국립대의 원칙에 따라 국가는 대개 도청소재지에 국립대(경북대·전남대 등)를 설치하였다.

특히 1970년대에는 경북대의 전자·전기공학, 부산대의 기계공학, 전남대의 화학공학, 충북대의 건축·토목공학 등 국가가 지역의 산업구조와 결부하여 캠퍼스별 특성화를 추진하였다. 이 정책은 급속한 경제발전과 맞물려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고, 그 결과 국립대는 대한민국의 대표 대학으로서의 번듯한 위상을 획득했다.

1970년대 말 이후 중위권 국가로 도약하는 단계에서 국가는 고등교육 인력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중소규모의 핵심 도시에 국립대(창원대·목포대·안동대 등)를 확대 설치하였다. 이렇게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보장하는 국민적 자산으로서 국립대는 지역과 규모의 특성에 맞추어 적절한 역할 분담 속에서 국가균형발전의 토대이자 급속한 산업화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는 요람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국립대는 군부 독재 시절의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는 지성의 전당으로서 역할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성 무시한 획일화, 국립대 위상 저하

오늘날 국립대의 위상 저하는 인적·물적 자원의 과도한 수도권 집중이라는 우리 사회의 기형적인 발전 탓이다. 그러나 급속한 사회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국가정책의 반복적인 오류의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지역불균형이 파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학령인구 감소가 시급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역대 정부는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대학의 특성화와 다양화, 재정지원과 연계한 대학 평가를 통한 부실대학의 퇴출 유도, 지방대 육성법에 근거한 지방대학 특성화와 정원 감축 등이 바로 그런 대책이었다.

1994년도에 최초로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한 평가작업이 시행되었다(대학종합평가인정제). 이때부터 국가는 국립대와 사립대의 특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지표에 따라 대학을 평가하고 지원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대학의 설립목표, 개별적 입지여건, 규모, 기능과 특성을 무시한 평가가 국립대의 학문적 특성과 경쟁력을 무너뜨렸다. 정부가 표방했던 정책 목표와 정반대의 획일화 정책이 국립대의 위상 저하를 초래했음에도 정부는 그런 시책을 고집스럽게 무한 반복해왔다.

국립대의 무원칙 통폐합, 여전한 갈등

2000년대에 들어 노무현·이명박 정부 시절에 강행한 대학 구조조정은 부실 경영이나 비리를 저지른 일부 사립대를 정리하는 방안을 택하는 대신, 나름대로 역량과 기능을 고려했지만 국립대를 무분별하게 통폐합해 국립대의 양적 축소와 질적 약화를 초래하고 말았다. 

설립 취지도 다르고 지역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던 국립대의 무원칙한 통폐합으로 인하여 대개의 국립대마다 내부 구조조정의 숙제, 구성원들의 갈등, 다수 캠퍼스의 운영에 따른 비용부담 등의 어려움에 시달리게 되었다.

불합리한 통합은 거점 국립대학의 ‘순수기초학문+특성화 첨단분야’의 특성을 희석시켜버렸고, 거점대학에 흡수된 과거 소규모 대학의 실용적 전공 역시 효과적인 운영이 어려워졌다. 비대해진 외형에 낮아진 지표의 부조화가 거점 국립대를 덩치만 큰 지방대학으로 전락시켜버렸다.

그런 사실은 입시 결과에서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한편 통합으로 소규모 국립대가 사라진 도시에서는 지역에 밀착된 고등교육 서비스와 평생교육의 기능이 사라지면서 지역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

1950년대 ‘1도 1국립대’, 21세기 비전인가

현 정부는 ‘지방대 시대’를 표방하며 국립대 육성지원을 약속하면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의 구축과 글로컬대학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일견 수긍이 되는 정책 목표이며 방향 설정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점도 눈에 띈다. 우선 라이즈 체계와 글로컬대학 사업에는 충분한 재정 증가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기존 정책과 마찬가지로 경쟁을 통한 혁신을 표방했지만, 국·사립대의 구별이 없고, 사실상 정원 감축과 대규모 구조조정을 노골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혁신과는 거리가 먼 정책이다.

국립대 체제를 약화시켰던 거점 국립대+중소규모 국립대의 통합도 다시 거론되고 있고, 심지어 중소 국립대의 통폐합과 시·도립화 소문도 무성하다. 많은 언론도 이에 부화뇌동하여 1950년대의 정책 목표였던 ‘1도 1국립대’를 21세기의 비전인 양 합창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립대 체제를 70년 전으로 되돌리자는 무책임한 언론 보도는 결국 ‘국립대의 자살을 교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립대는 국가의 학문적 표준이며 얼굴이다. 또 고등교육의 비전과 실천을 담보하는 공적 그릇이다. 정부는 국립대가 21세기의 선진국 대한민국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하도록 그에 합당한 지원체제를 조속히 구축하여야 한다.

국립대와 사립대, 지원체계 분리해야

먼저 국가는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기존의 획일적인 대학정책을 과감하게 개편하여 기본원칙으로 설립 목표와 기능이 다른 국립대와 사립대에 대한 관리 및 행·재정지원체계를 확실하게 분리해야 한다. 국립대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합리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사립대에 대해서는 라이즈 체제를 수정하여 합리적인 규모로 지역단위를 편성하고, 책임과 권한이 있는 고등교육지원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이로써 대학이 지역정치 구도에 휩쓸리지 않고 실효적인 맞춤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 사립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첨단학문 분야와 기초학문의 보호·육성을 거점 국립대가 담당하도록 하고 이를 집중 지원해야 한다. 특히 첨단산업 분야의 인재들이 국립대의 교수직을 자랑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조속히 강구해야만 한다.

세 번째, 중소규모의 국립대는 고등교육 공공성과 대학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장치로서 지금과 같은 경쟁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대학과 협의하여 지역사회의 산업적·문화적 요구에 부응하는 합리적이고 과감한 재구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정부가 30년 전부터 부르짖던 대학의 다양성과 특성화를 실천할 수 있는 주체가 바로 이들 국립대임을 재인식하여야 한다. 이미 목포대와 순천대 등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를 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서 국가가 이들 대학의 노력을 최대한 지원해야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국립대가 정책 난맥상에 따른 부작용에 시달리지 않고 정상적인 발전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국립대학법’의 제정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불필요한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급변하는 시대적·산업적 환경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지속적인 혁신과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초를 마련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김유경 전 경북대 사학과 교수
독일 괴팅엔대에서 유럽 중세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북대 교수회 부의장,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교수노동조합연맹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최근에 『유럽 대학의 역사』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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