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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유산 등재 경험기…사회에 기여하는 한국사 연구
나의 세계유산 등재 경험기…사회에 기여하는 한국사 연구
  • 이경동
  • 승인 2023.05.24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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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연구자대회 38 역사학, 세계유산과 소통하기

특별기획 ‘천하제일연구자대회’는 30~40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구 관심,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사회와 학계의 모습에 대해 듣는 자리다. 새로운 시야와 도전적인 문제의식으로 기성의 인문·사회과학 장을 바꾸고 있는 연구자들과 이전에 없던 문제와 소재로써 아예 새 분야를 개척하는 이들을 만난다. 어려운 상황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고 진실한 연구자들을 ‘천하제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연구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민교협 2.0’과 함께한다.(‘천하제일연구자대회’ 시즌2를 시작하며_우리 학술장의 ‘소통 공간’ 함께 키워 갑시다)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심사 과정에서 평가자들의 가장 중요한 요구는 
동아시아에서 ‘한국 성리학’이 무엇인지 설명해달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전개된 성리학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성리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존재한 유학들과 비교하여 
어떠한 특징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가가 평가자들의 관심사였다.

세계유산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발굴·보호·보존하기 위해서 유네스코가 운영하고 있는 제도다. 2023년 현재 1,157건의 세계유산이 등재되어 있다. 세계유산 등재의 전체적인 과정은 세계유산협약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서 규정한 절차에 근거하여 진행된다. 이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등재신청서다. 목차별로 서술해야 하는 내용이 규정되어 있고, 지도의 축척까지 포함해서 각 장별로 글자 수까지 제한한다.  

대한민국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유산은 총 13건이며, 북한과 중국에도 한국 고·중세사와 관련된 세계유산이 있다. 이외에도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중에서 군함도에 강제 징용 사항을 기술하느냐의 문제도 한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점에서 세계유산은 역사학, 그중에서도 한국사와 무관한 영역일 수 없다. 

필자가 세계유산을 접한 것은 2012년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실무자로 참여하면서였다. 시작은 조선시대사 연구자로서 대표적 주제의 하나였던 서원과 관련한 경험을 쌓아보겠다는 단순한 관심에서 출발했지만, 실무자로서 세계유산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연구 주제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은 지금도 역사학 연구자의 시선에서 연구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동아시아사를 이해하는 키워드, 유학과 학교

동아시아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이해할 때, 이를 대표하는 주제 중 하나가 유학(儒學)이다. 유학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일본·베트남 등에 전파된 이후 20세기 초까지 동아시아의 주요한 사상의 하나로 기능했다. 유학의 발전에 기여한 제도로 과거(科擧)를 들 수 있다. 관료를 시험으로 뽑는 제도인 과거는 유학 경전을 시험과목으로 채택하였기 때문에 유학의 사회적 확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국가나 지역, 시기별로 유학 연구가 심화됨에 따라 독자적인 이론과 학풍이 발전하게 되었다.

동아시아 어느 나라를 가도 유학과 관련된 학교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수도에 위치한 곳에 국학(國學)에 해당되는 학교들이 있다. 한국의 개성과 서울, 중국의 베이징과 난징, 일본의 도쿄, 베트남의 하노이와 후에 등에는 유학을 가르쳤던 학교들이 현존한다.

지방에도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있었다. 향교(鄕校), 부학(府學), 번교(藩校)와 같이 국가나 권력자들이 설립한 경우도 있지만, 서원(書院), 정사(精舍), 사숙(私塾) 등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설립된 학교도 존재한다. 이러한 학교는 각 국가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해왔으며, 이에 따른 다양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유산과 관련한 규정과 보고서. 운영지침을 포함한 세계유산 관련 자료는 문화재청에서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홈페이지

한국사에서 출발해 동아시아사로 확장

필자는 현재 두 가지 관점에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하나는 서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와 동아시아사를 결합한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구조와 특징에 대한 연구이다. 해당 연구는 석·박사 과정에서 다루었던 주제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 참여하면서 그 고민의 폭이 넓어지기도 했다. 

우선 박사학위를 마치고 서원을 주제로 한국연구재단 학술연구교수로 선정된 덕분에 이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도 중점적 연구 주제로 다룬 대상은 세계유산에 등재되지 않은 서원들이었다.

‘한국의 서원’에는 총 9개의 서원만 포함되었다. 실무자로서 한국 서원 전체를 조망하는데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실제로 연구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등재신청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 심심치 않게 확인되기도 한다. 

서원이 향촌사회에 존재했던 교육기관이란 측면에서 연구의 시작은 지역사로 출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지역사라는 단계에서만 바라보면 서원의 진정한 역사적 가치를 도출할 수가 없다. 특정 학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서원의 역할이나 정치적 사안에서 서원의 건립과 사액, 혹은 훼철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사상사·정치사의 영역에 해당된다.

서원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문서를 분석하는 작업에서 당대의 사회·경제운영과 관련된 편린을 바라볼 수도 있다. 또한 근대 이후 서원들의 변화양상은 유림(儒林)으로 범주화한 근대 유학의 추이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심사 과정에서 평가자들의 가장 중요한 요구는 동아시아에서 ‘한국 성리학’이 무엇인지 설명해달라는 것이었다. 흔히 ‘한국 성리학’을 이야기하면, 고려말 성리학이 도입되어 20세기초까지 전개된 성리학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는 ‘한국 성리학’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평가자들이 궁금했던 점은 한국에서 전개된 성리학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성리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존재한 유학들과 비교하여 어떠한 특징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였다. 

이러한 요구가 필자의 연구에서 중요한 문제의식으로 자리잡았다. 그 덕분에 박사과정부터 현재까지 율곡 이이와 이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형태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는 학맥(學脈), 정파(政派), 경세론(經世論), 문집(文集), 인물, 개념 등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성리학의 특질을 어떻게 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민의 여지가 많다. 언제 그것을 해명할 수 있을지는 확언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이 조선시대사가 가진 사상적 특질을 도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 연구의 최종적인 목적은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사라는 거시적 틀에서 조선이라는 국가가 가진 시대적 특징을 도출하는 것이다. 서원뿐만 아니라 세계유산을 등재하는 다양한 사례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의외로 동아시아에 대한 비교연구가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이 지리적으로는 가까울 수는 있어도 그것이 한국과의 비교 연구로까지 확장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유학이라는 주제는 이러한 비교 연구의 시작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조선사회에서 500여년간 주요한 사상으로 기능했던 성리학은 동아시아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는 세계유산과 관련된 규정과 함께 이미 등재된 유산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사진=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

세계유산 등재, 한국사 연구의 시사점

세계유산 등재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사실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요구되는 사항들이 현재 한국사 연구자로서 고민하고 있는 대부분의 내용을 유사하게 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중 몇 가지를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등재기준, 속성, 서술 사이의 일관성과 가독성이다. 세계유산은 유네스코에서 규정하는 6가지 등재기준 중 1가지 이상을 충족하여야 한다. 등재기준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속성(attributes)을 도출해 내야 한다. 해당 등재기술문의 서술을 충족하기 위해서 이 유산은 어떠한 속성을 몇 가지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등재신청서 상의 일관적이고 논리적인 서술을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신청유산의 훌륭함을 일방적으로 과시하는 대신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유산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한 가독성 있는 어휘 선택이 필요하다. 

국·내외 비교연구이다. 등재신청서의 작성에는 의무적으로 신청유산과 관련된 유사한 유산과의 구체적인 비교가 요구된다. 그것은 국내 유산과의 비교도 필요하지만, 최소한 동일문화권 내에서의 위상도 고려해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는 전 세계의 세계유산과 관련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데, 특히 동아시아 유산별 등재신청서에 수록된 비교연구는 연구의 다양한 상상력을 더해주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비교연구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한국사 연구의 현재와 세계유산의 비교연구는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이다.

문화콘텐츠·디지털과 결합된 역사학의 역할

유산의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연구와 활용 계획을 제시하여야 한다. 세계유산 등재는 이후에도 유산이 해당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시민사회 및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등재 이후에도 해당 가치를 증진시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하며, 그런 노력은 그 가치와 연계되는 연구와 활용을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

또한 유산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의견을 청취하고 조율하는 역할도 수행하여야 한다. 이는 문화콘텐츠, 디지털과 결합된 역사학의 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등재신청서는 영어 혹은 불어로 작성하여야 한다. 번역은 전문 번역가에게 맡기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신청서를 쓴 연구자와 번역가 사이에는 전문 용어나 표현에 대한 끊임없는 검수와 교정이 필요하다. 등재가 결정되면, 당사국에서 제출한 등재신청서는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 게재된다. 전 세계 누구나 어떠한 제한 없이 열람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해당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국제학술지에 연구논문을 제출하거나 K-History 사업을 통해 해외에 한국사를 알리는 것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끝으로 세계유산은 역사학 연구의 현재적 고민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인문학, 그리고 역사학에 대한 인식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연구논문 생산과 학부 및 대학원 강의, 그리고 역사의 대중화 등 전통적인 역사학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 역사학의 사회적 기여에 대해서는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의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이것은 연구자로서 논문을 통해 학계에 기여하는 것과 함께 학문적 전문성을 기반으로 교육과 시민사회로까지 지식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경동 공주대 백제문화연구소 연구교수
고려대에서 「조선후기 정치·사상계의 栗谷 李珥 인식 변화 연구」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율곡 이이를 비롯한 조선후기 정치·사상계의 주요 인물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서원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의 가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조선후기 역사적으로 다루어지는 인물의 해석과 평가, 그리고 경세론을 중심으로 당대인들이 고민했던 문제의식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전문위원 등 국내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조선후기 율곡 이이 문집 편찬의 추이와 의의」, 「17세기 사상계의 율곡 경세론 수용과 전개」, 「조선시대 ‘경장(更張)’의 의미와 변천」, 「16세기~17세기 초 영남지역 서원 원규의 구조와 변화」, 「목재 홍여하의 현실인식과 경세론」이 있다. 저서로는 『(校勘本)栗谷全書』(공저), 『동아시아 서원 아카이브와 지식 네트워크』(공저), 『서울길에서 만나는 인물史』(공저)가 있다. geistl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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