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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글쓰기, AI와 심리의 분업 시대
AI시대 글쓰기, AI와 심리의 분업 시대
  • 정혜선
  • 승인 2023.05.24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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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_ AI시대의 심리학② 챗GPT와 글쓰기

‘내 삶의 심리학 마인드’와 <교수신문>이 함께 ‘세상의 중심에서 심리학을 외치다’ 공동 기획을 마련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주제탐구 방식의 새로운 기획이다. 한 주제를 놓고, 심리학 전공 분야의 마음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통해 독자의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마음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몸과 MBTI, 학교 정글,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에 이어 다섯 번째 주제로 ‘AI시대의 심리학’을 다룬다. 정혜선 한림대 교수(심리학과)의 두 번째 글이다. 

인간 사고의 많은 부분은 아직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의 사고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인간이 과연 사고하는 존재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물음과 도전을 제공한다. 
이제는 인간 사고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탐색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요즘 챗GPT와 같은 생성형 언어모델이 화제다. 아직 정확도에서 문제가 있지만, 글을 요약하거나 전문적인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일을 놀라울만큼 잘 한다. 이러한 능력 앞에서 사람들은 “놀랍다”, “두렵다”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인간의 도구 사용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증기기관이나 인쇄기 등의 발명처럼 큰 영향을 끼친 기계부터 클립이나 포스트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구들이 인간이 하는 일을 대신 수행하여 인간의 수고로움을 덜어주었다. 

글을 작성하는 것은 오랫동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기계가 인간보다도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적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계가 육체적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주었듯이 인간을 지적인 노동에서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자신의 작품에서 노동자를 기계적으로 묘사했던 프랑스의 화가 레제는 기계가 인류를 육체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행복한 삶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었는지 모른다. 생성형 언어모델이 우리를 지적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을까. 페르낭 레제, 기계공, 캔버스에 유채, 1920.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글쓰기

글쓰기와 관련해서 인공지능이 자유롭게 해 줄 인간의 정신적인 노동은 무엇일까? 인간이 글을 이해하거나 작성할 때 어떤 정보처리가 일어나는 것일까? 글을 작성할 때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선정하고 이를 문장과 글의 형태로 표현해야 하는데, 이 과정은 어휘, 문장, 그리고 글이라고 하는 다차원의 처리를 요구한다.

이 과정에는 활자의 형태에 대한 지식, 단어 의미, 통사적 규칙에 대한 이해, 그리고 문장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텍스트의 구조와 장르 등에 대한 지식, 그리고 글이 다루는 영역에 대한 지식, 독자에 대한 지식 등 수많은 지식이 관여한다. 

글쓰기는 크게 계획하기(planning), 아이디어를 글로 옮기기(translating), 그리고 작성한 글을 검토(reviewing)하는 단계로 구분된다. 글쓰기 전문가와 초보자 간에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초보자들은 글을 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글을 작성하는 데 사용하고 계획과 수정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할애한다. 작성한 초고를 수정할 때도 글의 표면에 주목하는데, 오탈자가 있는지,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었는지를 수정하는 데 집중한다.

반면 글쓰기 전문가들의 경우 계획과 수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수정을 하는 경우 오탈자 뿐만 아니라 글의 메시지, 의미 수준의 수정에 더 집중한다. 글쓰기의 핵심 활동은 글이 전달하는 의미를 명료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쓰기에서 인간과 AI의 분업

챗GPT 같은 언어 생성 모델은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지만 내용에 있어서 아직은 검증이 필요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생성 능력만으로도 인간에게 유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아이디어를 말로 구현하는 작업을 인공지능이 담당해주면 인간은 인공지능이 쓴 작업을 검증하고 검토하는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이를 인간과 인공지능의 분업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이 주제를 주고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면(계획하기) 인공지능이 초고를 작성하고(글로 옮기기) 이를 인간이 검토하고 수정하여(검토하기) 최종적인 글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초고를 작성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단축하는 효과를 가져오겠지만, 인간이 글 쓰기를 계획하고 검토한다고 할 때 이 작업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글을 검토하고 평가한다고 할 때 이는 단순히 글이 생성한 지식의 진위를 따지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글의 전체 메지시가 일관되는지, 글 전체에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며 해당 메시지가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글이 가진 메시지의 가치에 대한 판단은 글 자체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글 밖에 존재하는 지식을 함께 고려할 때 가능하다. 글을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작성된 글이 과연 가치있는 메시지인지에 대한 판단과 그러한 아이디어를 만드는 작업은 인간의 작업이 된다. 

이젠 글쓰기에서 AI와의 분업이 필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한. 사진=펙셀

글쓰기와 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정보를 정리하고 전달하는 것(knowledge-telling)뿐만 아니라 정보를 변형하고 새로 창조하는 것(knowledge transforming)을 의미한다. 정보 전달을 주 목적으로 하는 글이라면 정보를 양식에 따라 기계적인 방식으로 결합하여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조금이라도 만들어지는 글쓰기는 사고와 분리할 수 없다. 

글을 쓰는 과정은 ‘생각’을 언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의미나 생각은 글을 쓰기 이전에 온전한 상태로 존재하다가 한 번에 글로 표현되지 않는다. 주제와 메시지가 정해져 있어도 세부적인 메시지와 논리의 전개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말로는 그럴듯한 내용도 글을 작성하다 보면 논리의 허점이 발견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글의 흐름과 논리는 물론 메시지가 바뀌기도 한다(이 글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의미를 만들어 내는 글쓰기는 가장 난이도 높은 사고 활동 중의 하나이다.

생각이 멈추지 않는 한, 글쓰기는 계속된다

글이 중시되고 사회의 대중적인 소통 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무의미한, 경우에 따라서는 해로운 글이 양산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기계적인 글쓰기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지만 동시에 의미 없는 글쓰기가 더 많이 양산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계적인 글쓰기가 아닌 의미를 창조하는 글쓰기이다. 인공지능과의 경쟁이 쉽지 않겠지만, 인간이 사고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글쓰기 또한 포기할 수 없는 활동이다.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 내고 창조하는지, 인간과 기계가 만들어 내는 수많은 글이 인간의 삶과 지식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안타깝게도 인간 사고의 많은 부분은 아직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의 사고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인간이 과연 사고하는 존재로 남을 것인지에 대한 물음과 도전을 제공한다.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서 인간의 인지를 연구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인간 사고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고 탐색하기 위해서 인공지능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정혜선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림대에서 인지심리와 학습심리를 강의 중이다. 공유인지, 학습 문제, 테크놀로지의 활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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