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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귀감
선가귀감
  • 최승우
  • 승인 2023.05.23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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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정 지음 | 전갑배 그림 | 정길수 편역 | 돌베개 | 356쪽

 

대장경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부처님의 말씀과 조사의 가르침

수많은 불경의 내용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불교는 종교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넘기 어려운 산이다. 서산대사 휴정은 부처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지만 드넓은 대장경의 세계 앞에서 감히 들어갈 엄두조차 못 내는 이들을 위해 절실한 말을 뽑고 자상한 풀이를 달아 이 책을 완성했다. 중생을 연민한 고승의 마음은 거대한 수미산도 너끈히 겨자씨에 넣어 버렸다.

불자들의 교과서,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 1520~1604)은 임진왜란 때 일본의 침략에 맞섰던 노승장(老僧將)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는 16세기 중반, 숭유억불(崇儒抑佛)의 나라 조선에서 짧았던 조선 불교 중흥기를 이끈 주역이자 조선 시대 내내 위기였던 불교의 명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고려 시대부터 3년마다 한 번씩 시행되던 승과(僧科) 시험이 조선 연산군 때 폐지되고, 뒤이어 중종(中宗)은 승과의 완전한 폐지를 공식화하는 등 극단적인 억불 정책이 펼쳐졌다.

1545년, 명종(明宗)이 열두 살 나이로 즉위해 불심이 깊던 문정왕후(文定王后)가 8년간 수렴청정하면서 불교는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문정왕후가 선종과 교종을 되살린 1550년부터 문정왕후가 별세한 1565년까지의 15년이 조선 불교가 일시적으로 다시 일어난 시기였다.

휴정은 문정왕후에 의해 복원된 승과의 첫 합격자로서 곧이어 선종과 교종을 아울러 관장하는 대표 승려가 되었고, 그 막바지 시기인 1564년 이 책 『선가귀감』을 완성했다. 그러므로, 휴정은 이 시기 조선 불교의 주역이며, 『선가귀감』은 그 시대를 결산하며 선불교 부흥의 염원을 담아 만든 뜻 깊은 책이라 할 것이다.

『선가귀감』은 휴정이 불경(佛經)과 선승의 어록(語錄)에서 선불교의 핵심 어구를 뽑아 만든 책이다. 그저 본문만 제시한 것이 아니라 휴정 자신이 본문 조목마다 때로는 상세한, 때로는 간결한 주해를 달고, 일부 조목에는 게송을 붙였다. 휴정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비록 불초한 사람이지만 옛날의 배움에 뜻을 두어 불경을 보배로 여긴다. 그러나 불경의 문장이 몹시 방대하고 대장경의 세계가 넓디넓어 훗날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좋은 글을 고르는 수고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불경 가운데 중요하고 절실한 것 수백 마디를 뽑아 종이 한 장에 쓰니, 글은 간략하지만 의미는 두루 갖추었다고 할 만하다.

제자 유정이 쓴 발문에 따르면, 이 책은 서산대사 휴정이 묘향산에서 10년 머무는 동안 50여 권의 경론(經論)과 어록에서 공부에 긴요한 말을 뽑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은 불교에 입문하는 불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을 위한 불교 입문서 성격의 선집이다. 이 책은 조선 후기는 물론 오늘날까지 여러 차례 재간행을 거듭했고, 일본에서도 17세기 이래 20세기 초까지 여섯 차례 이상 간행되면서 불자들의 교과서 역할을 했다.

불교 경전은 기원전 1세기경부터 기록되기 시작했고, ‘8만 4천의 가르침’이라고 말할 정도로 방대한 양의 경전과 어록이 존재한다. 그 내용이 매우 철학적이어서, 한 가지 경전을 깨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장(經藏), 계율을 기록한 율장(律藏), 경전 주석서 논장(論藏)을 합한 삼장(三藏)에다 불교 관련 문헌 전체를 집대성한 것을 대장경(大藏經)이라고 한다.

바다처럼 넓은 대장경의 세계에서 중생을 감발할 수 있는 절실한 문장을 뽑는다는 건, 지극히 중생을 사랑한 서산대사 휴정의 마음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휴정에 의하면 부처의 말씀과 조사(祖師)의 말씀은 공부의 끝이 아니며, ‘문자로부터 벗어난 한마디 말’에 이르는 공부의 시작일 뿐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이 책의 152개의 조목을 마음으로 새겨본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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