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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에서 혁신과 창의가 자란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에서 혁신과 창의가 자란다 
  • 문애리
  • 승인 2023.05.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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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문애리 논설위원 /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덕성여대 약대 교수

 

문애리 논설위원

영국의 애플이라 불리는 혁신 기업 ‘다이슨’의 제품들은 기발하기로 유명하다. 선풍기에 날개가 없고, 청소기에 먼지봉투가 없다. 기존 틀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이 감탄스럽다.

창업주 제임스 다이슨은 무수한 실패를 거듭했다고 고백했다. 일례로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는 시제품 5,127개를 만든 끝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렇듯 세상을 놀라게 한 제품은 수많은 실패 속에 탄생한다. 제너럴 일렉트릭(GE)사의 회장이었던 잭 웰치는 ‘실패에서 배우지 않는다면 성공은 불가능하다’고 설파했다.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에 적극 투자하는 나라이다. 올해 총 연구개발비가 31조 원으로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R&D 과제 성공률도 100%에 육박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과학 분야 노벨상이 안 나왔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 탓이 크다고 본다. 연구과제 계획서에 ‘목표의 성공 가능성’ 항목이 있고, 보고서에는 ‘목표 대비 달성 실적’을 적어낸다. 연구자들은 실패 걱정 없는 안전하고 보장된 연구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달성 가능한’ 연구만을 지속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혁신은 실패로 다져진 토양 위에 싹을 틔운다. 특히 연구와 창업 분야에서 실패는 성장의 기회이다.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이를 테스트하는 반복작업이 필수적인 과학에 있어서 실패는 종종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근법의 탄생을 이끌어낸다. 성공만을 추구하는 것보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에서 혁신과 창의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실패한 경험에서 얻은 지식과 교훈을 토대로 더 나은 결과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실패를 보상해야 한다. 미국의 국방고등연구기획원(DARPA)은 사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도전적인 R&D를 지원하며, 실패한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실패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면 연구자들은 안전하고 검증된 연구 방법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방식과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시도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한계도전 R&D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실패 가능성이 큰 한계형 도전 연구를 지원하는 것으로 올해 시범과제를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실패 경험을 집단 지식으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국에는 다른 연구자들이 비슷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실패한 연구를 공유하는 플랫폼(FAIL, failforward.org)이 있고, 유럽 과학기술 연구협력 기구인 ‘COST’에서도 실패한 연구 내용을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실패에 대한 열린 대화로 실패를 통해 배우는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인 스탠퍼드대학에서는 다양한 ‘실패경험 프로젝트’를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마인드와 문제 해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길러주고 있다. 실패는 과학의 성장과 혁신을 이끄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핵심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최대한 더 많이, 더 일찍 실패를 경험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이 ‘도전적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 속에서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인재 양성의 산실이 되길 바란다.

문애리 논설위원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덕성여대 약대 교수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 / 덕성여대 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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