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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건실한 사학’…‘사학법인 평가’ 도입해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건실한 사학’…‘사학법인 평가’ 도입해야 
  • 박순준
  • 승인 2023.05.2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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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③ 사립대학지원체계 원칙:학교법인 평가 연계 지원 방안

대학지원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대학개혁 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정작 대화는 부족하다.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와 전면 폐기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넓은 시각에서 대학의 체제를 진단하고, 현실에 기반한 문제 제기와 현실적·구체적인 대안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고자 한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대학정책 TF가 정부 정책의 난맥상을 짚고, 자성이 필요한 대학 내부와 교수사회의 문제까지 솔직하게 드러내 놓고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

대학지원체계 원칙을 제안한다
① 대학지원체계 현주소:무엇이 문제인가?
② 국립대학지원체계 원칙:국립대 정체성에 합당한 지원 방안
③ 사립대학지원체계 원칙:학교법인 평가 연계 지원 방안
④ 대학지원체계 3원칙과 집행 방안

 

한계대학 처리에 매몰…사립대 재정여건 개선책은 없어
부정·비리 낙인찍힌 일부 사립대, 사립대 재정위기 근원
부실 사학 이익 보다 건실한 사학법인 평가해 지원 필요 
대학 본질과 기능 되살리는 지원체제로 정책 전환해야

대학의 틀이 무너지고 정체성이 훼손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원칙이나 기준도 없이 대학·학과 간 통폐합이 진행 중이다. 5쪽짜리 계획서로 판가름 나는 ‘글로컬대학 30사업’ 선정 결과에 따라 전국 대학의 지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가 내건 명분은 ‘세계적인 대학 육성’이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희망 고문일 뿐이다. 이번에는 교육부가 군사작전처럼 신속하고 폭력적으로 대학 허물기를 진행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부의 ‘규제개혁’이 줄을 이으며 대학의 근본을 떠받치는 최소한의 장치마저 제거되고 있다. 반도체산업 관련 학과 설치를 빌미로 수도권 대학의 정원 제한을 해제하고, 학부모의 부담을 가중하는 대학 등록금 인상도 사실상 묵인한다. ‘사립대학 법인의 재산 관리 지침’도 대폭 완화하여 학교법인에게 부과된 최소한의 재정 부담마저 덜어주었다.

‘대학설립‧운영의 핵심 4대 요건’(교사, 교지, 전임교원, 수익용 기본재산)의 기준을 대폭 낮춘 「대학설립‧운영 규정」 개정안이 국무회의 통과 직전이다. 퇴출 위기에 몰린 한계대학 법인에게 해산 장려금 명목으로 잔여재산까지 챙겨주는 「사립대학 구조개선법」(이른바 ‘퇴출 특례법’) 역시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대학 자율권 확대를 내세운 「고등교육법」 전면 개정과, 교비회계를 법인회계에 통합하는 「사립학교법」 원포인트 개정도 서두르고 있다.

건실한 사학법인 육성이 절실

교육부의 명분이 그럴듯해 보이고 규제 완화가 필요한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조치 덕분에 대학을 사유재산으로 여기고 시대착오적인 일인 지배 가족회사처럼 운영하는 부실 사학법인의 ‘먹튀’의 꿈이 실현될 모양이다. 대폭적인 규제 완화와 관련 규정 및 법률의 제·개정 어디에도 건실한 사학법인의 육성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퇴출 위기에 놓인 한계대학의 처리에 매몰되어 있을 뿐, 사립대학 전반의 재정 여건 개선을 위한 제도적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사립대학 전체의 이미지를 매도하는 이런 부정적인 정책으로 다수의 건실한 사학법인 육성을 통한 대학교육과 연구의 질적 향상을 실현할 수는 없다. 

교육부는 오랫동안 역사와 편제, 크기와 여건이 서로 다른 전국의 대학을 한 장짜리 평가표에 맞춰 줄을 세우고,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지정한 뒤 컨설팅을 제공하면서 자신들의 권한을 만끽해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 도입된 ‘대학설립준칙주의’는 경쟁체제를 조성하여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책 목표와는 달리, 부실한 사립대학의 증가를 조장했을 뿐이다. 학생 수를 조절하며 대학의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했던 시점에 역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교육부는 지금까지 줄곧 대학과 갈등을 빚으며 입학정원 감축에 정책역량을 허비하였다.

또한 부정·비리의 온실로 낙인찍힌 일부 사립대학의 이미지 탓에 사립대학 발전을 위한 공적 재정의 투여가 사실상 어려워지게 되었다. 현재 사립대학 전체가 재정 위기에 처한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라이즈, 광역고등교육청 설치해 관리를 

이제는 교육부가 ‘지침’을 대폭 완화하고 ‘규정’을 개정하고 법률을 제‧개정하여 부실 사학법인에게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려 애쓰고 있다. 이런 조치로 사립대학 전반의 위기가 해소되고 건실한 사학법인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부실 사학법인의 이익을 지켜줄 뿐, 건실한 사학법인의 발전과는 무관해 보인다. 정권 교체기마다 교육부의 보호 아래 암약하는 ‘단골 하청업자 교수들’의 그럴듯한 대안은 사실상 부실 사학법인 지키기에 불과할 뿐이다. 

교육부는 이제라도 건실한 학교법인이 사립대학을 발전적으로 경영하고 대학의 본질과 기능을 되살리는 지원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사립대학 지원체계의 원칙을 수립해야 한다. 그 첫 출발점은 부산시장이 “교육부가 제일 잘한 일”이라고 호평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제’(RISE 체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하지만 현 지방대의 위기 상황, 그로 인한 지역 소멸의 가속화, 고등교육에서 차지하는 사립대학의 비중 및 사학법인의 폐쇄적 운영 등을 고려하면, RISE 체계의 안착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고등교육 행정과 운영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이 전혀 없는 지자체에  지방대 관리 권한을 무작정 넘긴다면, 사립대의 운명은 정치판 노리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를 타개하는 방안으로 ‘광역고등교육청’ 설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국의 사립대와 사립전문대 분포를 면밀하게 파악하여 초광역권 단위의 ‘광역고등교육구’로 묶고 관할권에 있는 대학과 학교법인에 대한 관리와 통제의 권한을 ‘광역고등교육청’이 행사하는 방식이다. 그래야만 대학은 지자체장의 정치적 입김에서 벗어나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대학들이 지자체와 담합하여 국비를 나눠 먹는 행태도 저지할 수 있다.

다만, 이 체계에서 국립대는 국가의 별도 관리와 통제 아래 두어야만 한다. 동일한 지표로 국‧사립대를 획일적으로 평가하여 각각의 설립목적과 기능을 동시에 훼손한 전례를 교훈 삼아 국립대에게는 국가적 차원의 확실한 소임과 역할을 부과해야 한다. 

사립대 경영 주체는 ‘사학법인’이다

나아가 사립대학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사학법인 평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까지 교육부는 정작 대학을 운영하는 주체인 사학법인 대신 운영의 객체인 ‘대학’을 평가하는 데만 주력해 왔다. 물론 ‘법인의 책무성’ 항목이 없지 않았지만, 평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한 장식품에 불과했다.

이제야말로 사립대학의 경영 주체가 학교법인임을 명백히 인식하고 법인 평가를 통해 사립대학이 거듭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근거로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면 교육부의 규제 완화와 재정지원 강화 정책이 건실한 학교법인을 위해서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하는 길을 열어주고, 반면에 비리와 부실 경영으로 낙인찍힌 학교법인에게는 징벌과 퇴출이라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재정 여건·대학 규모·운영 체제 면밀한 평가를

‘사학법인 평가’는 두 영역으로 나눠야 한다. 하나는 학교법인의 재정 여건과 지원 규모 평가이다. 사립대학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따라서 제대로 평가하려면 학생 규모의 격차, 부속병원의 보유 여부, 일반대학과 종교·예술대학의 구분, 복수의 대학(또는 부속학교)을 거느린 법인과 그렇지 않은 법인의 차이, 지역의 여건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세밀한 평가지표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대학 규모에 맞는 학교법인의 재정 투입, 투자 역량과 의지를 선명하게 가려낼 수 있다. 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 종류 및 규모, 운영수익 규모, 대학 운영 경비지원 규모, 법정부담금의 부담 규모, 법인적립금 규모, 부채 규모와 현황 등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지표를 마련하여 ‘출연 없는 지배’를 방지해야 한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학교법인 정보를 재구성하고 현장 검증하면 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법인 운영체제의 평가다. 이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가족회사 형식으로 운영되는 사립대학의 부끄러운 관행을 타파하는 데 목적이 있다. 무엇보다도 법인의 구성과 운영, 총장 임면을 포함한 교원 인사권 등 법인과 대학 운영의 합리성과 공공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사의 자격과 책무에 부합하는 인사로 법인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는지를 평가하고, 법인 거수기로 전락한 개방이사의 자격과 임명 절차도 평가해야 한다. 총장의 자격과 임명 절차, 임기 등도 평가에 포함되어야 한다. 특별히 비전임교원 확대는 교원의 질적 후퇴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평가지표에 포함되어야 한다.  

‘광역고등교육청 설치’와 ‘사학법인 평가’를 통해 교육부의 정책 오류와 폐단을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사립대학의 재도약을 도모하는 과업은 법률과 제도로 정착되어야 한다. 낡은 「고등교육법」과 지나치게 포괄적인 「사립학교법」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

급변하는 사회적·산업적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자율적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도록 사립대학에 길을 터주어야 한다. 수년 전부터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가 주창한 「사립대학법」 제정에 드디어 주목할 때가 왔다.

박순준 한국교수노동조합연맹 고등교육연구원장
현재 동의대 역사인문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서울대에서 서양근세사로 박사를 했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과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을 지냈다. 편서로 『유럽바로알기』가 있으며, 역서로 『절대주의 국가의 계보』 『서양근세사: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 『옥스퍼드 영국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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