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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의 각축장 한·중·일…지역 협력의 가능성은?
‘인정투쟁’의 각축장 한·중·일…지역 협력의 가능성은?
  • 오승희
  • 승인 2023.06.02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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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동아시아 인정투쟁: 패전국 일본, 분단국 중국, 식민지 한국의 국교정상화』 오승희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312쪽

권력·이익의 물질 중심적 국제관계로부터 전환
한·중·일 우선순위 분석으로 화해의 논의 심화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가? 어떤 부분을 인정받고 있고, 어떤 부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가? 한국은 일본과 중국을 인정하고 있는가? 인정하고 있다면 어떤 부분을 인정하고 있으며, 어떤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가?

『동아시아 인정투쟁』은 국가들의 관계에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또 상대방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관계로 엮인 사회 속에서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무시와 차별에서 벗어나려는 욕구, 동등한 권리를 쟁취하려는 욕구,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욕구 등 다양한 인정욕구는 국제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인정은 자아(self)와 타자(other) 간 상호관계에 기반하고 있다. 자아는 스스로 인정받기 위한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타자에 대해서는 인정을 할 수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떠한 타자를 인정할 것인지의 여부가 국제사회의 주요한 의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한 국가는 다른 국가를 인정하거나 또는 인정하지 않는가? 한 국가의 행동에 대한 인정 여부, 상대 국가에 대한 인정 여부, 역사문제 등에 대한 인정 여부 등 국제관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를 인정의 개념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가능하다. 주로 권력투쟁이나 이익투쟁의 관점에서 설명해왔던 국제관계를 인정투쟁의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물질 중심적 시각에서 간과되거나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국가이익을 구성하며, 더 나아가 국가이익의 최우선 순위로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대외 전략을 살펴보면, 패전 이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선진국으로, 강대국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 중국의 인정투쟁은 무엇보다 ‘하나의 중국’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중요한 목표는 바로 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정통 정부로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인정받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국교를 정상화했으나 2023년 현재까지도 서로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사과를 통해 식민지였던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한다. 패전국 일본, 분단국 중국, 그리고 식민지 한국의 인정 욕구는 국가이익과 불가분이고, 외교 전략의 핵심이기도 하다.

한중일의 관계에서 흥미로운 것은, 전후 냉전기 중국과 한국이 분단되었고, 일본이 중국과 한국의 두 정부 중 어느 정부를 인정할 것인지의 선택에 놓인다는 점이다. 중국과 한국에 대해 인정 부여의 권리를 가진 일본이라는 구조가 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형성해왔으며 오늘날의 한중일이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일본 정부가 중국과 한국에 대한 인정을 부여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은 전후 동아시아 질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19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와 1972년 중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인정보다도 정부 대표성 인정 문제가 우선적으로 다루어지면서 과거사에 대한 인정이 모호하게 처리되었다. 전후처리의 애매모호함과 불완전성은 1945년 이후 지금까지의 한중일 관계에 여전히 제약으로 남아있다. 당시 일본 측에서 한국과 중국의 인정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져 왔으며, 일본 외교정책의 전반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다루어져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후 78년간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살펴본다면, 한중일 간의 인정투쟁은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상호 인정은 제한적 수준에서 나타나고 있다. 오히려 영토갈등이나 역사 인식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서로에 대한 비인정/불인정을 위한 ‘부정투쟁’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동아시아를 둘러싼 갈등 쟁점에도 자신은 인정받으려 하면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자 하는 다양한 외교 전략이 사용되고 있다.

한중일은 여전히 전후 극복을 위해 인정투쟁 중이다. 한중일이 자신의 국가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서로를 인정하고 있는지, 얼마나 인정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중일이 상호 인정을 심화시켜나갈 수 있어야만 동아시아 지역 협력의 가능성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오승희 
서울대 일본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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