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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학살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우리 곁의 학살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 곽송연
  • 승인 2023.06.02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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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 『오월의 정치사회학: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 곽송연 지음 | 오월의봄 | 216쪽

5·18은 과거에 대한 논의 아닌 문제적 현실
제노사이드·정치심리학 이론적 논의로 분석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등의 잔학행위를 제노사이드(genocide)로 규정했다. 바이든의 언급은 까다로운 법적 요건을 요구하는 제노사이드 개념의 한계로 국제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20세기 이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학살에서는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나 르완다의 사례처럼 명백한 인종적·종족적·민족적 집단의 말살 의도가 밝혀지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 까닭이다. 

사실 지금 이 시각에도 시리아,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등 도처에서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잔학행위는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광범위하고 잔혹한 집단살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분명한 문서 증거의 확보를 포함한 국제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니, ‘아직은’ 그저 제노사이드가 아닐 수 있다는 신중한 관전의 자세를 견지해야 할까? 무엇보다 학살의 대상이 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불행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특정 사례가 제노사이드건 잠정적으로 그렇지 않더라도 학살을 비롯한 반인권 범죄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관심을 두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성원이 반드시 갖춰야 하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즉 인권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월의 정치사회학: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은 학살의 실행 요건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학살의 가해자는 어떤 동기와 행동양식으로 비무장 민간인을 살해하는가?”, “대중은 왜 반인륜 범죄에 침묵하는가?”와 같은 학살의 실행 요건에 관한 근본적인 해명을 추구한다. 바꿔 말해서 이 책의 문제의식은 학살이 대니얼 골드하겐의 주장대로 “특정 시대 특정 사회에 누적된 역사적 편견이 특수한 형태로 분출된 고도의 잔학 행위” (Daniel Jonah Goldhagen, Hitler’s Willing Executioners: Ordinary Germans and the Holocaust, Knopf, 1996)가 아니라 어떤 구조적‧역사적 조건이 결합된 곳에서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근대의 삶 속에 잠재적으로 내장된 위험”이라면, 이에 대한 학문적 천착은 학살 그 자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악의 평범성’에서 ‘악의 합리성’으로: 홀로코스트의 신성화를 경계하며」,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임지현 옮김, 당대비평, 2003, 12~32쪽) 

한편으로 이 책은 수십 년 전 한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그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미 5·18은 과거에 대한 논의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이행과 공고화 기간을 거치며 끊임없이 정치적 현안이 되어온 가장 논쟁적인 사안이자 정치적 갈등의 뿌리로 불거진 문제적 현실에 대한 직면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크게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학살의 가해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왜 시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가? 둘째, 대중들이 잔학행위를 방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학살의 과정과 그 직후 가해자와 국가는 어떻게 사실을 부인하는가? 넷째, 도대체 학살은 왜 일어나는가?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등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제노사이드 이론, 정치심리학, 기억의 정치의 이론적 논의를 도입했으며, 특히 각각의 주제에 대한 현재 논의를 담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예를 들어 이 책 4장의 결론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학살과 제노사이드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에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반인권 범죄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 개입의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관련 학자들과 국제 인권운동가들이 모색해온 보다 현실적인 외부 개입 수단을 제안한다. 바로 ‘naming and shaming’이다(Matthew Krain, “J’accuse! Does Naming and Shaming Perpetrators Reduce the Severity of Genocides or Politicides?”, International Studies Quarterly, 56(3), 2012, p.574~589.). 학살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가해자를 학살자, 반인륜 범죄자로 부르고, 수치심을 주는 효과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를 비롯한 각 장의 새로운 논의에 대한 독자들의 ‘두텁게 읽기’가 새로운 학문적 논쟁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곽송연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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