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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전문가 양성 과정…고등교육 개혁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
무너진 전문가 양성 과정…고등교육 개혁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
  • 박정원
  • 승인 2023.05.3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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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_ 박정원 상지대 명예교수

 

박정원 상지대 명예교수

한국은 부존자원이 별로 없는데도, 교육의 힘으로 성공한 나라라고 평가된다. 한국 국민의 높은 교육열 덕분에 대학 진학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고, ‘양질의 인적자원’이 풍부해서 경제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유럽이나 북중미·호주의 국가들은 대학 진학률이 우리보다 낮고 당연히 대학 졸업자의 비중도 작다. 그래서 한국인은 가장 똑똑하고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이 많다고 스스로 자부하기도 한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경제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체제가 예외 없이 겪고 있는 인구소멸의 위기 앞에서, 이제는 대학이 너무 많다고 주장하며 대학의 위기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많은 대학을 다 허가해 준 관료집단까지도. 그들은 이제 사학재단에 일정부분 재정적 보상을 해 주더라도 빨리 문을 닫게 하자고 주장한다.

폐교 대학이 늘어나면, 교육비 부담이 증가하는 집단이 생길 것이고 그로 인해 대학 진학률은 감소할 것이다. 이것이 목표인가? 그러면 어떻게 될까? OECD 통계를 근거로 이 문제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학사(전문)학사 비율은 OECD 평균 보다 높은 47%

2021년 현재, 한국의 25세부터 64세까지의 인구 중 학사학위자 비율은 33%, 전문학사 소지자 비율은 14%에 달한다. 학사와 전문학사를 합한 비율이 47%로써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군에 속한다. OECD 회원국 평균은 학사 19%에 전문학사 7%이니까 이 비율이 총 26%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인구의 절반가량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이니까 엄청나게 평균 학력이 높은 국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적어도 한창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 중 대학 졸업자의 비중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석·박사 비율은 4%로 OECD 평균 15%보다 낮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등교육의 대중화가 이루어져 국가마다 대학 진학률이 크게 상승하고, 대학교육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관리자를 배출하는 수준으로 하향 조정된 상황에서 관련 분야의 석사 또는 박사학위를 소지한 전문가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한 통계를 보면, 앞의 연령대에서 한국의 석·박사학위 소지자 비율은 4%이다. 즉, 25세부터 64세까지의 인구 100명 중 4명이 석사나 박사라는 의미이다. 이 비율은 높은 것일까, 낮은 것일까?

같은 연령대 OECD 주요 회원국들의 석·박사학위 소지자 비율과 비교해 보자. 1인당 소득이 세계 최고인 룩셈부르크 31%, 벨기에 20%, 스위스 21%, 스웨덴 18%, 네덜란드·스페인·핀란드 17%, 덴마크 16%, 프랑스·이탈리아·영국·아일랜드 15%, 미국·노르웨이 14%, 독일 13%, 호주·캐나다 11%이며, OECD 평균은 15%에 이른다.(자료: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22)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학구열이 높은 나라?

한국은 사무실이나 길에서 만나는 사람(성인 경제활동 인구) 25명 가운데 1명이 석사 또는 박사인데 비해 룩셈부르크는 3명 중 한 명, 스위스와 벨기에는 5명 중 한 명, 스웨덴·네덜란드·스페인·핀란드·덴마크·프랑스·영국·이탈리아·아일랜드·미국 등은 6~7명 가운데 한 명이 석·박사라는 말이 된다. 이 자료까지 함께 고려한다면, 과연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학구열이 높은 나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많은 선진국의 국민은 대학 졸업 후 더 깊이 있게 자신의 전공을 연구하기 위해 석·박사과정에 진학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대학 졸업으로 공부를 마감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굳이 대학원에 진학하여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일까? 대학원을 졸업해봐야 학부 졸업에 비해 크게 유리한 점이 없어서일까? 등록금이 비싸서 비용 대비 수익이 높지 않다고 예상해서일까?

어쩌면 학부 졸업 후 외국의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귀국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도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요하는 일자리가 많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대학원 수료 후 정년계열이나 정규직에 취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도 진학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유야 어쨌든 한국의 대학 졸업자 대부분은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석사와 박사학위를 소지한 사람의 비율도 아주 낮다. 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조차도 대학원 교육을 가로막는 주된 요소라 할 수 없다. 진정한 장애물은 다른 데 있다. 

지방·지방대 소멸, 대학 집단 서열화가 원인

대학 졸업자들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학벌사회의 구조화에 있다. 전형적인 학벌사회인 한국에서 애초 대학에 진학하는 주된 목적이 지식 탐구에 있지 않고 학벌에 편입되기 위한 것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학 졸업장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부를 중심으로 구축된 학벌은 졸업 후 노동시장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정계(관계)와 재계 등 사회지배층의 하부 조직원으로 신속히 편입된다. 졸업장 한 장으로 손쉽게 최고의 일자리를 차지한다.

이과 계열 학생들은 소득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의·약학 계열 입학을 목표로 한다. 거기에다 많은 학생이 전공 합치 여부보다 오로지 수도권의 상위권 대학 입학을 위해 노력한다.

그리하여 의·약학 계열 – 수도권대학 – 지방(국·사립)대학 – 전문대학이라는 집단 서열화 체제가 형성됐다. 따지고 보면, 지방소멸과 지방대학 소멸 문제도 학령인구의 감소가 아니라 대학의 집단 서열화가 본질적 원인이다.

조사에 따르면, 상위서열 대학 입학과 사교육비 지출액의 크기는 관련이 많고,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결국 부모의 직업 및 소득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고소득층 자녀 → 거액의 사교육비 지출 → 상위서열 대학 입학 → 정부 재정지원 집중 → 고소득 전문직 독점’이라는 하나의 경로와, ‘중저소득층 자녀 → 상대적 저액의 사교육비 지출 → 중하위서열 대학 입학 → 정부 재정지원 배제 → 비정규직 시장 편입’의 또 하나의 경로가 뚜렷이 대립하게 된다. 

그리하여 상위서열 대학 입학이 노동시장은 물론 결혼시장의 승패까지도 가름하는 망국적 경로가 형성됐다. 그래서 대학 입학예정자들은 자신의 적성과 미래의 성취 가능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높은 서열의 대학을 목표로 입학 가능한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정말 엉뚱하게도 소위 명문대 입학이 행복의 시작이라고 본다. 

현대 경제가 요구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갖춘 전문가들이다.

대학원 교육체계의 붕괴, 왜곡된 대학서열 체제가 초래

적성과 관련 없이 전공을 선택한 한국 대학생들의 전공 만족도는 언제나 4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하여 연구를 계속할 리 없다. 또한 상위권 서열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학벌사회의 순항코스에 접어든 상황에서, 자신의 취향과 잘 맞지도 않는 전공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할 학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학원 교육체계의 붕괴는 왜곡된 대학 서열 체제가 초래한 적폐의 하나이다.(그래도 직장만큼은 자신의 관심 영역에서 구하다 보니, 절반 이상의 대학 졸업자들이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 취업하고 있다.) 

대학원 교육은 일반관리자를 양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한 분야의 깊이 있는 전문가와 학술연구자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대학원 교육이 파행이면 나라의 학문체계가 붕괴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나라의 인구구성 측면에서 석·박사 수준의 지식인들이 얼마나 필요한지 정확한 비율을 계산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대체로 OECD 회원국 평균 수준 정도는 되어야 국가의 경제와 문화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원 교육은 질적인 탁월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양적으로도 지금보다 3~4배의 확장이 필요하다. 국가는 석·박사학위 소지자 및 과정에 있는 분들 즉, 최고의 지식인들을 소중하게 보호하고 이들이 자기 역량에 따라 연구 및 교육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첨단분야 정원 증원 정책, 수도권대 지원은 더 강화

무엇보다 먼저 대학 서열화 체제를 타파해야 전공 교육체계가 살아날 수 있다. 서열 체제의 형성 원인은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부문 노동시장의 존재와 청년들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문화의 수도권 집중을 주요 원인으로 한다.

여기에다 일부 수도권대학에 대한 정부의 집중적인 재정지원이 더해진 탓도 크다. 지방대학은 국·공·사립 또는 대학의 역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선호도에서 밀려났다. 그 결과 수도권대학 중심의 대학 서열 체제가 완성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첨단분야 입학정원 증원정책을 중심으로 수도권 대학에 대한 지원은 더 강화되고 있고, 지방소재 대학들은 이제 막바지로 몰리고 있다. 대학 통폐합으로 인해 자신의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대학이 사라진 청년들은 얼마나 많은 경제적 부담을 추가해야 수도권 학생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공부하고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학별 특화분야 중심으로 재정 배분을

지방소재 대학의 위기를 초래한 한 당사자인 정부는 사실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해결책도 갖고 있다. ‘대학재정 수도권대학 몰아주기’ 행태를 청산하고, 지방의 대학들이 수도권 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재정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별로 특화된 분야를 교육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개편하는 것이다. 대학은 각자의 조건에 부합하는 학문분야를 중심으로 교육과 연구체제를 개편하여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특혜를 받아 상위권대학이 된 수도권 대학들이 좋은 것을 다 갖도록 하는 것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집단 육성에 대한 특혜도 청산해야 한다.

17년째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동결하여 의사 수의 부족으로 그들의 수입이 기형적으로 높아진 상태에서 의학 분야가 아닌 다른 전공 부문과 대학원 교육의 발전은 꿈도 꾸기 어렵다. 

나라의 미래가 걸려 있는 대학원 교육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 특히 그 정점에 있는 고등교육, 그중에서도 나라의 미래가 걸려 있는 대학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선 서열화된 체계를 해체해야 한다. 본인의 적성과 미래 성취 가능성을 기준으로 전공을 선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아울러 직종 간 임금 격차가 합리적 수준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대량생산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자본주의 시대에는 일반관리자 수준의 노동력을 다수 필요로 했다.

그러나 눈부신 과학 기술혁명과 함께 새로이 등장한 현대 경제가 요구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갖춘 전문가들이다. 이 인재 집단을 육성하지 않고는 경제발전도 기약할 수 없다. 국민 행복과 경제사회의 발전을 위해 대학원 교육의 질을 높이고, 대학원 교육 이수자가 대폭 증가하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대학 서열 체제 해체 추진과 고등교육 재정지원의 대폭 확대이어야 한다.

박정원 상지대 명예교수
전국교수노조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강원도대학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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