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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쏠림 해결해도, 이공계 부족 못 메워”
“의대 쏠림 해결해도, 이공계 부족 못 메워”
  • 강일구
  • 승인 2023.06.05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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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공계 대학원 역할 과제’ 포럼
홍성민 센터장 “단기적 인력양성 정책, 이공계 대우 떨어트려”
홍성민 STEPI 과학기술인재정책연구센터장은 이날 포럼에서 과학기술을 이끌 인재가 수능점수가 높아야 하는지도 앞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사진=키스텝 유튜브 캡처

“도대체 우수핵심인력 몇 명을 양성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무조건 양성만 해놓고 알아서 직장을 찾도록 해서는 경쟁력이 안 생긴다.”

과학기술정책에 양성하려는 인재의 선호를 반영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전 세대와는 다른 특징을 지닌 MZ 이공계 인재가 노동시장에 진입해도 과학기술분야의 생산성이 유지되려면 단순한 양적 인재양성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제안이다. 제2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서 발표된 ‘이공분야 인재지원방안’의 주요 내용이 이공계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의 연구 환경 개선이었다는 점에서 그 배경이 닿아 있어 보인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하 STEPI)은 지난달 24일 제158회 수요포럼을 열고 ‘핵심 연구인력 고갈 위기, 이공계 대학원의 역할과 과제’를 논의했다.

홍성민 STEPI 과학기술인재정책연구센터장은 현재 이공계의 공급 충격을 주는 주요 요인으로 인구감소와 MZ세대의 노동시장 유입을 꼽았다. 그는 “인구감소로 인해 학사 입학자원은 감소하기 시작했으나 이공계 대졸 이상의 인력은 아직은 증가 추세에 있다”라고 했다. 인구감소 영향으로 이f공계 석사는 2025년부터 감소해 2048년이면 4만 명 이하로 감소하고 이공계 박사도 2025년부터 감소하는 것은 맞지만 2025년까지 증가 추세는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이공계 박사는 2013년(3.8%) 대비 2021년(4.8%)에 1%p 증가했다고 밝혔다. 

의대 열풍에 따른 이공계 기피 현상이 이공계로 유입되는 인재를 감소시킬 것이란 주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의대 열풍은 실제 현상이나, 이공계로 유입되는 인재의 절대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의대로 가는 인재를 이공계로 유도한다고 해서 부족한 인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공계로 올) 사람은 있는데 안 오는 게 아니라, 앞으로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며 “대졸자 중 60%가 이공계인 나라여도 인구는 가파르게 감소하기에 대학원 입학자 수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과학기술을 이끌 인재가 수능점수가 높아야 하는지도 앞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공계 인력을 단기적으로 생산하는 정책은 취업률 하락과 좋은 일자리 부족 현상을 낳는다고도 경고했다. 홍 센터장은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 데이터(2013~2021)’를 인용하며 “2013년부터 2021년까지 공학 계열 취업률은 76.7%에서 69.2%로 1.29%p 떨어졌다. 노동시장이 포화상태에 놓여있는 것일 수도 있다”라며 “현재 상황에서 이공계 공급량을 더 늘리면 대우는 더 나빠지고 취업률은 더 낮아져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질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독특한 특성을 지닌 MZ세대의 노동시장 유입도 이공계 인력 공급에 영향을 미칠 요소라고 강조했다. 홍 센터장은 “디지털 네이티브와 더불어 고용 불안정, 임금을 통해 집 한 채 구하기도 어려운 현실을 경험하고 있는 세대에게 이전 세대의 조직문화나 업무강도를 똑같이 요구해선 안 된다”라며 “이들을 잘 키우고 끌고 나가는 게 인력정책에서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인구의 절대 수 감소와 MZ세대의 노동시장 유입으로 인한 충격은 어떤 분야에서든 나타날 것이라며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으면 인력정책은 소용없는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홍 센터장은 성적이 좋은 인재가 과학기술계로 유입되는 것보다는 탁월한 연구 환경을 만들어 유입되는 인재의 성장을 보장해 주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 이공계 대학원도 학비, 연구비, 장학금을 더 지급하는 것으로는 대학원생 모집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이슈브리프도 비슷한 사실을 지적한다. 이슈브리프는 과학기술 분야 4년제 대학에 진입한 학생 중 38.8%를 ‘부적응’ 유형으로 분류된다고 했다. 전공 성취 수준이 높고 진로 탐색도 활발하지만, 전공-적성 일치 여부나 대학·전공 적응과 만족도와 관련해 비교적 낮은 집단도 38%인 것으로 드러났다.

홍 센터장은 과학기술 활동 자체를 과제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며 주요 정책을 제시했다. 홍 센터장이 제안한 주요 정책은 △도제 교육시스템을 연구자 훈련 시스템으로 개편 △연구개발 지원 시스템 내 진로 지도와 연계한 경력개발 시스템 명시화 △연구개발 활동에 대한 참여자 정보 체계 확립 등이다. 

이공계 대학원의 역할과 정책과제
이공계 대학원의 역할과 정책과제  ※홍성민 센터장 발표자료

“대학원 졸업했다고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시대 아냐”

고혁진 한국공대 교수(경영학부)는 “고급두뇌유출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2012년 49위였으나 2017년에는 54위였다. 해외고급숙련인력 유인지수는 2012년 29위에서 2017년에는 48위였다. 이는 (내국인) 고급인력들은 해외로 나가고 싶어하고 국내 좋은 외국 인재들은 우리나라에 정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이공계 인재 유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3년 전 청년과학자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박사과정생 대부분이 교수를 희망했으나 뽑는 곳이 적어 힘들어했다”라고 말했다.

앞으로 벌어질 이공계 부족 현상에 대한 대안으로 고 교수는 정부 차원의 외국인 유학생 지원과, 이공계 석·박사 졸업자의 출구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했다.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온 유학생을 지도해본 경험을 공유하며 교수 개인이나 랩 단위에서는 돌봄이 힘들고 대학도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또한, 석·박사생들이 교수의 길 이외에도 다양한 출구로 창업을 선택할 수 있게 창업 성공 사례를 알려주는 것도 제안했다. 아울러, 석·박사생이 주도적으로 자기 책임을 갖고 연구를 할 수 있게, 우수 석사과정생에게는 1~3천만 원, 박사과정에게는 3~5천만 원 규모의 연구를 맡기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혁신 한국공대 교수(경영학부)
고혁신 한국공대 교수(경영학부)는 이날 우수한 대학원생들도 책임감을 갖고 연구를 할 수 있게 연구의 일정 부분은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키스텝 유튜브 캡처 

이원홍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인재정책센터장도 이공계 대학원의 연구환경과 생산성 문제를 들었다. 그는 “미래 세대에게 대학원은 힘든 곳이 아니라 꿈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여겨져야 한다”라며 “그러나 현재 이공계 대학원 연구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아직도 수많은 연구원이 행정을 맡고 연구 장비를 관리하며 반복적인 일을 한다. 이 부분에 대한 개선 없이는 학생들이 대학원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원생에게 바라는 인재상도 재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는 대학원에서 특정 분야의 연구자를 전문인력으로 키워 장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은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라고 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학생들에게 전환 가능한 기술을 가르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원홍 키스텝 인재정책센터장은 20년 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대학 연구실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사진=키스텝 유튜브 캡처

아울러, 우리 산업에 맞는 유학생 유치도 제안했다. 이 센터장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유학생들은 우리나라에서 석·박사를 한 뒤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선진국으로 간다. 이들의 전공도 본국에서 취직을 선호하는 분야이기에 반도체나 이차전지가 아니라 농업이나 섬유, 플랜트를 전공한다”라며 “전략적으로 우리 산업에 맞는 방향으로 유학생을 유치하고 정착시킬 수 있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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