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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괴물’ 아니다…소통하는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이방인·괴물’ 아니다…소통하는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 양준모
  • 승인 2023.06.06 0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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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서평_『톱니바퀴와 괴물』 다이앤 코일 지음 |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356쪽

최근 출간된 『톱니바퀴와 괴물』은 새로운 경제학을 꿈꾼다. 기존의 다양한 비판을 넘어 사회와 소통하고 성공적인 정책을 만들어내는 경제학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저자인 다이앤 코일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정부 기관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 책에 대한 심층 서평을 양준모 <교수신문> 논설위원이자 연세대 교수(경제학과)가 보내왔다. 양 교수는 “코일은 이 책에서 자기 신념에 매몰된 외로운 경제학자에게는 따뜻한 충고를, 그리고 경제학이 쓸모없다고 외치는 사이비 전문가들에게는 논리적 해명을 제시한다”라고 설명했다.

‘톱니바퀴와 괴물’이란 제목은 일반적인 경제학 서적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제목에서 저자의 독창성이 엿보인다. 경제학자가 가정한 합리적 이성을 가진 경제주체는 괴물을 만들어낸 톱니바퀴라는 뜻이다. 

괴물이란 단어로 떠오르는 소설은 ‘프랑켄슈타인’이다. 소설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만들어낸다. 이 괴물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만, 숙명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괴물은 자신이 잔인해진 이유는 진저리 나는 고독한 삶이었다고 항변한다. 괴물은 사라졌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만이 자신을 이해했고, 자신만이 괴물을 이해했다고 독백한다. 다이앤 코일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공정책 베넷 교수는 제목에서 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내 경제학이란 괴물을 표현했을지 모른다.

코일은 영국 옥스퍼드대학 브레이지노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는 영국 재무부, BBC 신탁, 영국 경쟁위원회, 대학 등에서 경제학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톱니바퀴와 괴물』에는 그의 다양하고 오랜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코일은 이 책에서 자기 신념에 매몰된 외로운 경제학자에게는 따뜻한 충고를, 그리고 경제학이 쓸모없다고 외치는 사이비 전문가들에게는 논리적 해명을 제시한다. 

합리적 이성을 가진 경제주체는 톱니바퀴로서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을 탄생시킨 것일까. 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과)는 “독자들은 괴물처럼 변해 버린 경제학이지만, 경제학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이 해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학을 발견한다”라고 강조했다. 사진=픽사베이·위키피디아

 

모두 이해 가능한 문제 해결 비법 발견

독자들은 괴물처럼 변해 버린 경제학이지만, 경제학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학을 발견한다. 경제학에 무관심한 사람이나, 경제학에 적개심을 갖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나면, 경제학의 고민을 이해하면서 경제학을 사랑하게 된다. 경제학 전공자는 경제학이 괴물의 모습에서 벗어나 일반인과 함께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에 비법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을 모든 이에게 권하는 이유다.

경제학에 대한 비판은 다양하다. 경제학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인간형을 대상으로 수학을 사용하여 실제 생활과는 동떨어진 세상을 이야기한다는 비판은 상식으로 변한 지 오래다. 역사를 무시한다는 비판도 있다. 코일은 이러한 비판은 실제 경제학이 아닌 각자가 만들어낸 허수아비에 대한 비판에 불과하다고 항변한다. 

사실 경제학은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계속 발전했다. 경제학은 자료를 사용한 실증분석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적 질문에 답해 왔다. 수학을 과도하게 사용한다는 비판도 있으나, 논리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론적 모형은 필수적이다. 모형을 통해 계산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사람이 달나라에 갈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경제학자인 게리 베커(1930∼2014)가 사용하는 동태적 자원배분 모델만이 모델이 아니라, 정치학자가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몇 가지 주요 요소만을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도 모델이다. 경제학은 합리적 해명을 통해 불합리한 비판을 극복하고, 합리적인 비판은 수용하면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가치의 문제와 비현실적인 교육과정 등 많은 비판이 경제학을 건설적으로 발전시켰다. 경제학자들이 공정한 연구를 하고 있지만 가치와 실증적 연구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어렵다. 모든 것에 가격을 책정하려는 경향의 타당성, 경제적 거래의 도덕성 등 경제학이 과거에 외면해 왔던 문제를 정면으로 토론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게 됐다. ‘톱니바퀴와 괴물’은 경제학을 비판해 왔던 사람이나, 경제학을 신처럼 신봉하는 사람 모두에게 건설적이고 균형 잡힌 사고를 제공한다.

경제학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은 시대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많은 공헌을 해 왔다. 1960년대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연구 결과는 1970년대 인플레이션에 의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올바른 이정표를 제시했다. 경제학자들은 영국 런던의 금융 시장에서 오랫동안 유지됐던 규제를 제거하는 빅뱅을 만들어냈지만, 1986년의 탈규제적 변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잉태했다. 탈규제 정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에 문제를 만든 파생금융상품 시장이 급성장했다. 

물가가 안정된 ‘대안정의 시대(the great moderation)’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을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경제학자는 교육과 지식재산권을 중시하는 내생적 성장 이론에 열광하고 있었고, 역사적 맥락에서 제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재무 경제학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엄청난 위기가 다가오는 과정에서 경제학자의 역할은 없었다. 사람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거시경제학자들의 무능을 질타하고 효율적 시장 가설을 되뇐 재무 경제학자들을 조롱했다. 

다이앤 코일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공정책 베넷 교수이다. 진보와 생 산성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는 케임브리지대 산하 베넷 연구소 공동 책임자이기도 하다. 『시장, 국가, 그리고 국민』, 『GDP: 짧지만 사랑스 러운 역사』, 『충분함의 경제학: 미래가 중요한 것처럼 경제학을 운용 하는 방법』, 『혼을 담은 과학: 경제학자들이 진정으로 하는 일,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까닭』 등을 썼다. 사진=위키피디아

 

성공적 정책 입안의 역할과 삶을 개선하기

정부 정책에서 강력한 힘을 갖는 경제 전문가들의 책임은 무엇인가? 경제학은 해로운 사회적 존재인가? 존 케인스(1883∼1946)와 에스더 듀플로 MIT 교수(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같은 학자들은 경제학자를 실무 전문가로 묘사하며 경제학을 현실에서 유용한 학문으로 평가했다. 경제학은 실패도 있었지만, 성공적인 정책을 입안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코일은 경제학이 우리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책임 있는 경제 전문가가 되는 방법을 제시한다.

경제학이 성공적인 정책을 입안하는 데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 과연 경제 전문가들은 이방인으로서 사회를 조망해야 하는가? 꼬리를 무는 그의 질문은 독자들이 경제학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다.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이방인처럼 경제 전문가도 사회와 유리될 수 없다. 경제학은 인간 행동에 대한 심리학자나 인지과학자의 연구를 수용해왔다. 경제적 동기만이 아니라 이타적이고 사회적 동기가 경제적 선택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코일은 음향기기 기업인 젠하이저 분석, 국가채무에 대한 분석 등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경제 전문가들은 카뮈의 이방인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치 경제학이 다시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경제학은 엄밀함을 강조하고 기술적 분석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수량화할 수 없는 많은 사회문제를 외면했다. 더욱이 사회와 유리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초연한 이방인의 역할을 자처했지만, 사회는 경제학을 외면하고 경제학은 극단화되고 있다. 

코일은 경제학이 물리학과 같이 객관적 과학이라고 하는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을 비판한다. 경제학자들이 불편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경제학은 경제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규범적인 주제를 외면할 수 없다. 경제 전문가도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가진다. 코일은 객관적 분석이라고 하는 분야에서도 연구자의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불평등과 같은 주제는 경제 현상이면서 정치 현상이다. 근로기준법, 노동조합이나 사회적 연대, 조세정책과 각종 제도 등은 역사와 현재의 정치적 산물이다. 이런 분야에서도 경제학의 역할이 기대된다.

다이앤 코일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새로운 경제학 어젠다를 설명하면서 태세 전환을 위한 기준점으로 이 표를 제시했다. 출처=『톱니바퀴와 괴물』 239쪽

 

변화하는 기술에 따른 경제학의 진화

이 책은 경제학의 문제를 분석하고 옹호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경제학은 디지털 시대에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변화하는 기술에 따라 경제학도 변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서 슈퍼스타들은 과거보다 월등히 많은 소득을 번다. 과거와 달리 슈퍼스타가 나오는 영화를 전 세계에 배분하는 데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집중도는 더 커진다. 디지털 시대에서는 생산과 소비가 변화한다. 달라진 환경에 맞춰 경제학도 달라진다. 21세기 경제학은 비선형적이고 동태적일 수밖에 없다. 

외부효과가 지속되고 분배는 차별화한다. 코일은 외부성과 비선형,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자기실현적 동학(self-fulfilling dynamics)이 기반이 된 경제학을 제안한다. 디지털 시대에 정부의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변화한 경제학이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경제학이 연구 결과와 정책을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도 변해야 한다. 다양한 비판이 모두 정당하지는 않았지만, 경제학은 변해야 한다. 

『톱니바퀴와 괴물』은 잔잔한 여운이 있는 책이다. 독자들은 경제학이 필요한 학문이지만, 변화해야 하는 학문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책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자신이 만든 괴물에 의해 자신이 파괴되고 괴물도 사라지는 비극적 결말이 아니라 경제학의 변신을 통해 새로운 경제학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독자들은 새로운 시대에 변화하는 경제학의 비전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양준모
연세대 미래캠퍼스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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