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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강의실은 꿈과 기억의 요람
[나의 강의시간]강의실은 꿈과 기억의 요람
  • 함인희/이화여대·사회학
  • 승인 2007.05.21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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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강의실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주는 공간을 넘어, 40대 후반을 지나가는 나의 인생과 20대 초반에 들어선 학생들의 삶이 부딪치는 장의 의미로 다가올 때가 많다. 덕분에 난 아날로그 세대의 미덕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요즘 학생들의 디지털 감각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교수님 장황한 설명 대신 요약 좀 해 주십시오.” “지난 수업시간에 결석했는데 교수님 강의 노트 빌려 주실 수 있나요?” 당당히 요구하는 학생들을 대할 때면 솔직히 당황스럽고, 과제를 내주면 모두들 동일한 포털 사이트의 “검색” 창을 두드린 덕분에 모르는 건 모두 함께 모르고 틀리는 건 전부 함께 틀리는 학생들을 대하노라면 실망스럽기만 하다.
특히나 사교육 열풍에 대학입시 전쟁의 열기가 해를 더해가는 동안,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우리 학생들의 활력과 패기가 점차 꼬리를 감추고 있음은 어인 일인지. 마치 컨베이어 벨트를 거쳐 생산되는 제품마냥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우리 학생들 모습을 대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
고등교육 전문가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생의 밑그림은 대학 입학 후 약 8주 동안의 경험에 의해 그려진다고 한다. 곧 20대로 진입하면서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해보는 동안 “될성부른 나무”는 뿌리를 내려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헌데 바로 이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 학생들은 그동안 자신의 길이라 믿어왔던 “꿈”을 서서히 포기해가기 시작함은 슬픈 역설 아니겠는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강의실에서의 경험담 하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깨가 축 늘어지며 자신감을 잃어가는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꿈이란 이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희망이지 포기하기 위해 존재하는 악몽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미 꿈을 포기했다면 그건 아마도 ‘개꿈’이었을 겁니다. 남들에게 보기 좋은 것, 내세우기 좋은 것, 거창하기만 한 것, 그런 걸 꿈이라 하지 않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내가 진정 원하는 진짜 꿈을 꾸어 보십시오.” 순간 강의실엔 형언하기 어려운 긴장감과 적막감이 흘렀고, 한 두 녀석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후 나의 강의실은 대학에 덧씌워진 환상을 거두어 내고 부모님의 비현실적 기대 또한 훌훌 떨쳐버린 후, 자신의 솔직한 모습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주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 학생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 실패를 거듭해도 절대로 좌절하지 않을 배짱, 넘어져도 넘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이리란 생각이다.
더불어 기억에 남아 있는 두 번째 경험담. 디지털 세대에게 휴먼 터치의 기쁨을 알려줄 요량으로 당시 ‘가족 사회학’ 강의를 수강하던 학생들의 “엄마”를 토요일 오후 학교 교정에  초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50명 수강생 가운데 10명의 엄마가 초대에 응해 주셨으니 참석률은 20%로 기대이하(?)였으나, 10쌍의 엄마와 딸은 그럴 수 없이 소중한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선 엄마들이 딸들을 향해 품었던바 높기만 했던 기대와 끊임없이 이어지던 실망이 진솔하게 오갔고, 어느 날 갑자기 애인과 함께 나타난 딸을 향한 배신감(?)과 대견함 또한 가감 없이 표현되었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딸의 다짐을 들을 때면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온다는 한 엄마의 고백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고, “난 엄마처럼 내 딸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자신이 없다”는 딸을 향해 “엄마가 해준 것 하나도 없는데 잘 커주어 고맙다”는 엄마의 덕담이 돌아오기도 했다. 결국 엄마와 딸은 나이 들어가며 곰삭은 정을 나누면서 가까운 친구가 되어가는 것 아니겠느냐며 헤어졌는데, 못내 아쉬웠는지 10쌍의 엄마와 딸은 지금도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회가 허락한다면 다음엔 “아빠와 딸”들을 한 자리에 모아볼까 생각 중이다.

학생시절의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해낼 수 있는 곳, 얼굴을 맞대고 몸을 부딪치면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어가는 곳, 바로 그 곳이 강의실 아닐까?

함인희/이화여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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