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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뚝심있는 마니아들을 위하여
[나의 연구실]뚝심있는 마니아들을 위하여
  • 류문일/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 승인 2007.06.18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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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이영찬(학부생), 남영우(박사과정), 이차영(학부생), 나자현(박사), 가운데 아래가 필자.

개체군생태학의 궁극적인 과제는 ‘왜, 거기, 그 종이 그만큼의 밀도로 존재하는가? 앞으로 그 밀도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이 점에서 개체군 생태학은 생태학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요한 분야다. 내가 개체군생태학에 본격적으로 몰입되기 시작한 것은 독일 괴팅겐 대학 빌버트 교수 아래서 박사과정을 이수했을 때다. 개체군 생태학에서의 이론을 선도하던 분이라 이 분야를 무척 매력적으로 소개하셨고 열정도 불러주셨다. 피식자와 포식자 간 상호작용의 이론을 확인하고 보정하기 위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 분이 심어준 열정 덕분으로 생각한다.

고려대 농과대학에 자리 잡으면서 개체군생태학 연구실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쌀바구미와 인연을 지속하게 된 첫걸음이 되었다. 본인이 게으른 탓도 있지만 야외나 포장에서 일을 하기에는 도시 한 중간이란
조건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체계적인 자료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험개체군과 수리 모델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 이론에 대한 연구가 더 과실이 크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저장물 해충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던 시절이라 부수적으로 저장물 해충 방제에 기여하겠다는 나름의 목적도 있었다. 
개체군생태학을 하는 사람은 그 실험 과정에서 장기간에 걸쳐 실험조건을 일정하게 유지해야하는 끈질김이 있어야 하고, 그 긴 시간동안 계수(計數)를 주로 하는 재미없는 작업을 지루하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단순한 성격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단순한 결과에서 실마리를 찾아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하여 새로운 이론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창의성과 논리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마니아가 되어야 한다.
개체군 생태학 연구실이 언제나 소수의 마니아들에 의해 이어져 온 이유이다. 
지난 20년 이상 쌀바구미와 화랑곡나방과 더불어 살아오면서, 이런 대학원생들과 많은 일을 같이 했고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4년 이상의 결과물들이 쌓여야 겨우 한, 두 편의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답답함과 어리석음을 용하게 참아주고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감사하고 또 미안한 마음이다.
대학원생들에게 언제나 강조하는 것은 질 지향적인 연구가 바람직하다는 것, 고정관념을 탈피하라는 것, 뒤집어 보는 사고능력을 키우라는 것이다. 적어도 세계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식으로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 결과가 기존의 것들과유사하거나 중복될 수도 있고 그래서 기껏 한 연구가 허사가 되고
폐기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보는 시각을 가늠하는 이점이 이를 덮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양적으로 업적을 평가하는 현 평가시스템에서는 이런 사고가 어리석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연구를 하는 것이 어찌 다른 이의 평가에 목을 매는 것이겠는가? ‘學而時習之 不亦悅乎’라 하지 않았던가. 얼핏 보기엔 제 멋에 겨운 연구실이기도 한데 경향 각지에서 여러 계층의 비전문가와 전문가들에게서 이것, 저것 문의가 심심찮은 것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듯하다. 그래도 소위 첨단 생명공학을 이렇게 열심히 했다면 지금 상당히 영광스런(?) 위치에 있었을 것 같은 제자들에게는 아무래도 미안하다.

류문일/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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