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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공간, 역사행위 주체·구조로 바라보기
도시공간, 역사행위 주체·구조로 바라보기
  • 민유기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 승인 2007.06.1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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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_ 도시연구 현황과 쟁점] ① 도시사

교수신문은 ‘도시연구’와 관련한 학술동향 기획을 마련했다. 도시는 현재의 세계를 이해하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으며 구미세계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도시연구’와 관련해 다양한 관점으로
학제간 접근을 통해 종합적인 학계 동향을 소개한다. 한국 도시환경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시해 학술적 토론에 그치지 않고 정책적 방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최근 우리 역사학계에서 도시사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도심 재개발이나 신도시 건설, 주택문제 해결에 대한 각종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가 도시와 인근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문화·관광 자원화하면서 세계화와 지방화 시대에 도시와 지역정체성 구성에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도시에 대한 연구는 주로 지리학, 도시사회학, 도시행정학, 도시계획학 등 사회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이루어졌고 대체로 도시의 현재적인 문제나 도시공간의 미래 기능과 활용 문제에 집중되었다. 이런 연구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도시공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유산과 기능, 행위 주체들 사이의 긴장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편이다. 도시사학자는 현재의 도시에 대한 고찰과 미래의 도시에 대한 전망이 과거의 도시에 대한 이해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19세기부터 도시에 대한 연구 시작
도시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근대적 학문이 형성된 19세기에 시작되었다. 주로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잉태하고 발전시킨 중세도시의 탄생과 성장, 길드와 자치행정 등 ‘봉건사회의 섬들’에서 등장한 새로운 정치·경제 제도가 탐구되었다. 19세기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낳은 사회적 문화적 구조 변동과 이것이 인간 삶에 미친 변화를 설명하는 ‘도시성(urbanity)’이란 개념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20세기 초부터 1950년대까지는 특정 도시의 탄생, 성장, 변화를 다루는 도시의 일대기(City Biography)로서의 ‘도시의 역사(Town’s History)’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후 196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 학계에서 도시사 연구영역, 방법론, 사료 등에 대한 집단적 고민의 결과로 역사학의 하위분과이자 방법론으로 도시사 영역이 구축되었다.
1960년대 이후 일본의 도시사 연구는 유럽과 미국의 흐름과 비슷하게 진행되었고, 중국에서는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받는 연구단을 중심으로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우리 학계에서는 70~80년대 사회경제사 연구 성과기반 위에서 1994년 서울 ‘정도(定都) 600주년’을 기점으로, 또한 90년대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지역문화 활성화 노력에 발맞추어 흥미로운 도시사 연구 성과가 하나둘씩 축적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도시사는 연구, 교육, 사회적 인식의 세 층위에서 생소하고 낯선 분야이다. 아직 소수인 도시사 연구자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도시사 연구의 필요성과 의미를 소개하고 있으며 조만간 한국도시사학회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역사학은 시간과 공간을 유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그간 역사학자들은 시간에 보다 초점을 맞추었고, 공간은 역사의 배경이나 무대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많았다. 도시사 연구는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과되었던 공간의 문제를 강조한다. 도시사는 시간과 공간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면서 역사이해의 범위를 넓히는 데 이바지한다.
도시사 연구에서는 도시를 사회·문화적 변화의 구조이자 주체로 파악한다. 도시민의 투쟁이 공간 구조를 변화시키기도 했고, 공간 구조 자체가 역사적 행위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도시사 연구는 도시라는 분석단위 안에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 여성사 등 역사학의 하부영역이나 방법론이 지닌 다양한 시각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다. 도시 공간에서는 계급계층, 인종, 젠더, 상이한 문화적 가치 등이 경계를 넘나들고 ‘충돌’ 혹은 ‘공존’하면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도시사가들은 도시를 연구하는 다양한 학문분과와 상호소통하면서 사회학, 인류학, 지리학, 도시설계와 계획학, 지방행정학, 지역개발학 분야에 역사적 시각을 제시한다. 도시사 연구에서는 문헌사료뿐 아니라 다양한 시각적 사료분석이 필수적이다. 주요 건축물 및 도시계획 설계도면, 지적도, 사진, 지도, 삽화, 축제나 행사 안내서, 도시문화를 다룬 화가들의 그림, 오늘날의 모습을 담은 현장 사진 등이 주요 사료로 활용된다.

도시사 연구, 도시 인프라 구축 위해 필수
국제적으로 합의된 도시사 연구 테마들은 다음과 같다. 1.도시사 방법론, 사학사, 개별 도시의 성장사를 다룬다. 2.인구문제로 특정 도시 공간에서의  출생, 결혼, 사망, 질병, 이민 등의 문제를 다룬다. 3.도시의 물리적 구조, 건축형태, 주택조건 등을 분석한다. 4.도시사회영역으로 도시 사회집단의 특성과 구조, 계급 계층 구조, 사회조직, 소수자 집단, 가족생활 등을 연구한다. 5.도시의 경제활동으로 도시나 인근 지역에서의 산업과 상업, 소비, 노동조건, 노동운동 문제 등을 고찰한다. 6.교통과 통신의 발달, 이런 발달의 원인과 결과인 도시화과정과 공간 이동성이 낳은 역사적 행위의 유형을 고찰한다. 7.도시정치와 행정으로 자치행정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집단의 조정, 도시 공공정책 등을 다룬다. 8.도시환경, 도시계획, 지역발전, 이상도시론 등을 연구한다. 9.도시문화의 다양한 형태, 여가, 교육, 종교, 정보 교환, 일상생활 등을 분석한다. 10.도시공간에 대한 인식과 태도, 문학, 미술, 영화 등에서 다루어진 도시 이미지 등을 분석한다. 이들 연구 테마들은 기존의 정치사, 사회사, 문화사에서도 연구되던 것들이지만 도시사에서는 공간의 형태와 기능, 도시적 특성에 대한 시각을 결합시킨다. 해외학계에서 가장 최근에 주목받는 연구 테마들은 비교도시사, 도시의 정체성, 도시공간의 표상과 이미지 등이다.  
도시사 연구는 현재와 미래 도시의 기능과 환경을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도시 인프라망을 보다 사회적으로 만들기 위해 필수적이다. 또한 다양하고 풍요로운 도시와 지방/지역문화를 재발견하고 이를 발전시켜 문화국가의 콘텐츠를 증대하는 데 기여한다. 모든 역사가 현재사인 것은 오늘날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과거 인간 삶의 복합적 층위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기 때문이다. 도시화는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며 도시공간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서의 다양한 긴장관계와 갈등도 더욱 첨예화 될 것이다. 체계적인 도시사 연구는 각종 도시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 도시에서의 삶의 질과 문화적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민유기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필자는 파리1대에서 ‘파리 지역의 서민주택 개혁 1870-1914: 사회주택의 역사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도시이론과 프랑스도시사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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