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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폭등·대도시 집중· 양극화 ‘처방’ 안목 제공
집값 폭등·대도시 집중· 양극화 ‘처방’ 안목 제공
  • 조명래 / 단국대·도시지역계획학
  • 승인 2007.06.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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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_ 도시연구 현황과 쟁점 ② 도시공간의 정치경제학

한국의 앞선 도시화률에 견준다면 도시에 대한 연구는 그렇게 다양화도, 선진화도 되어 있지 않다. 도시개발과 같이 정책 관련 연구가 지배적이다 보니, 한국의 도시연구는 현상 추수적이고 도구적이어서 이론적·담론적인 깊이를 결여하고 있다. 주류 도시담론은 대개 제도권 연구기관이나 학계가 주도하고, 또한 대학 강단을 통해 유포되면서, 후코가 말하는 ‘권력으로서 지식’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지배적인 도시담론의 대척점에서 ‘도시의 존재론적 깊이를 들추어내면서’, 그 내재적인 얼개와 모순을 주목하고자 하는, 그래서 도시에 대한 우리의 인식지평을 넓혀주고자 하는 대안적 도시지식이 곧 ‘도시(공간의) 정치경제학’이다. 도시정치경제학이 제기하는 도시에 관한 물음은 가령 이러한 것들이다.

도시공간, 구조적 얼개·모순에 주목
도시로 인구가 계속 집중한다면, 지구화되는 한국자본주의와는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집중된 도시인구는 내부적으로 어떠한 계급 내지 역할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도시 토지이용이 돈이 되는 주거지와 상업지로 집중된다면, 이는 한국의 자본축적체제 변화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도시개발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된다면, 도시공간 속에 설정되는 국가와 시민사회 간 권력분립과는 어떻게 연관되는가? 도시경관이 기호적이고 이미지적인 것으로 변모한다면 신자유주의 지구화 속에서 도시공간이 상품화되는 경향과는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선, 도시공간의 문제를 단순히 집값·땅값 문제, 도시계획의 문제, 도시환경오염의 문제,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 이러한 문제를 만들어내는 뿌리, 즉 구조의 세계로 돌아가서 그 답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마르크스적 방법론(예, 실재론, 총체론, 유물론, 구조주의 등)이 동원된다면, 도시공간을 하나의 구성체로 간주하고, 그 물적 토대인 ‘경제의 차원’으로부터 상부구조인 ‘정치의 차원’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분석·설명하는 ‘정치경제적 접근(political economy)’이 가능하게 된다. 이를테면,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와 도시문제를 결부시켜 도시공간의 구조적 얼개와 모순을 읽으려고 하고, 이를 위해 마르크스적 방법론을 활용한다면, 이는 곧 도시정치경제학적 접근이 되는 것이다.
도시정치경제학은 유럽의 1970년대 ‘자본주의적 도시공간’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등장했다. 후기자본주의의 모순이 도시공간을 통해 드러나는 점을 주목한 일단의 비판사회과학자들이, 한편에서 도시에 대한 기존의 경험주의적 공간지리적 접근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 도시공간의 본질을 파헤쳐보려는 시도를 하는 가운데 도시정치경제학이란 새로운 학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도시정치경제학파가 형성되기까지는 여러 이론가들의 선도적이면서 창발적인 이론적·경험적 연구들이 있었다. 자본주의에 의해 도시공간이 만들어 진다고 주장하는 ‘르페브르(Lefevre)의 공간생산론’, 도시를 노동자 계급이 재생산되는 장이라고 주장하는 ‘카스텔(Castells)의 집합적 소비론’, 자본순환 과정에서 발생한 잉여자본이 흘러들면서 도시란 인조환경이 생겨난다는 ‘하비(Harvey)의 건조환경론’ 등이 대표적인 이론들이다.

‘자본주의적 도시공간’ 배경으로 등장
이들 도시정치경제학 이론들은 1970년대 유럽도시를 배경을 하여 형성된 것들로서, 마르크스 방법론을 공간에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이들을 포괄적으로 ‘공간정치경제학’으로 부르기도 한다. 말하자면, 공간정치경제학은 ‘자본과 공간’의 관계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입장 전반을 지칭하는 것으로 도시정치경제학은 이의 한 유파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도시정치경제학은 1980년대 후반 고도화되는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이 도시공간을 통해 집중적으로 발현하자(예, 집값앙등, 산업구조의 첨단화, 권력의 집중 등), 이를 공간정치경제학으로 설명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지면서 등장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과 대학원 지리학과의 소장 연구자들이 모여, 1988년에 창립한 한국공간환경연구회(현, 한국공간환경학회)가 유럽의 공간정치경제학을 한국의 도시문제를 분석·설명하는 대안이론으로 소개하고 연구하면서 도시정치경제학이 학계의 ‘진보적 아방가르드’로 대두했다. 도시공간만 아니라 국토공간, 나아가 생태공간 전반에 대해 다양한 정치경제학적 연구를 시도하면서 한국공간환경연구회는 용역형 학술연구에 빠져 있는 보수적인 기성학계가 다루지 못한 연구를 수행했고, 또한 그 결과를 다양한 학술총서로 생산해 왔다.
1994년 출간된 <서울연구>(한울)는 한국공간환경학회가 도시정치경제학적 연구와 관련하여 생산한 연구결과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도시정치경제학의 여러 이론들을 서울연구를 위한 방법론으로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30여명의 소장학자들이 서울대도시를 생산구조와 노동시장, 토지주택 등의 하부구조, 소비유통, 일상소비문화, 도시운동과 정치 등의 영역으로 나누어 연구했던 것이 곧 <서울연구>란 연구서다. 도시정치경제학적 분석을 위해 이 책은 1990년대 한국자본주의의 상황을 조절이론에서 말하는 주변부포드주의(perppheral Fordism)로 설정하고, 이의 공간적 특성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현장으로서 서울 대도시공간을 해부하고자 했다.
한국에서 도시정치경제학 연구는 결국, 한국공간환경학회의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져 왔다 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대구대 최병두 교수, 단국대 조명래 교수, 경상대 김덕현 교수, 연세대 김왕배 교수 등을 필두로 하여, 지난 수년전부터 학계로 진입한 부경대 권오혁 교수, 중부대 강현수 교수, 서울대 김용창 교수, 세종대 변창흠 교수, 서울대 박배균 교수 등을 꼽을 수 있다. 전통학문분류로 볼 때, 이들은 지리학, 사회학, 도시계획학, 행정학 등에 걸쳐 있지만, 도시공간을 연구함에 있어서는 전통학제의 연구시각보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관점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도시정치경제학파로 함께 묶어진다.
개별연구자에 따라 연구의 영역과 관점, 그리고 강조점의 정도가 다르다. 가령, 대구대 최병두교수는 ‘하비’의 연구성과를 충실하게 한국의 학계에 소개하면서, 하비의 최근 연구경향에 따라 ‘정치생태학’의 영역으로까지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단국대 조명래 교수는 프랑스의 조절이론을 받아들여 포스트포드주의 도시론(post-Fordist city)으로 발전시키다가 최근에는 축적체제의 공간적 확장으로 나타나는 사회생태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연세대 김왕배 교수는 카스텔의 집합적 소비론을 일찍이 소개하면서 도시일상주체들의 삶의 세계가 가지는 정치경제적 모순을 탐구하고자 했으며 근자에는 이를 노동계급이나 사회적 연줄 등의 문제와 결부시키고 있다. 그 밖의 소장학자들은 엄밀한 이론적 주제 보다, 토지주택문제, 신도시문제, 수도권과밀문제, 지역혁신문제, 거버넌스의 문제 등과 같이 정책적으로 논란이 되는 주제들을 공간정치경제학적으로 다루는 데 더 역점을 두는 연구들을 수행하고 있다.

제도권 도시정책에 비판적 태도
도시정치경제학은 마르크스주의 전망을 도시읽기의 관점으로 끌어 들어오기 때문에, 기존 도시담론에 비해 이론적 추상성이 높고 또한 이념적으로 급진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이는 곧 주류 도시론에 익숙한 입장에서 이해하기엔 너무 ‘난해’하면서 ‘이론 지상적’인 것으로 비추어지는 까닭이 되고, 또한 보수적인 주류 도시연구나 제도권의 도시정책에 대해 비판적이다 보니 현실로부터 ‘배제’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의 탈이념적인 현실추세와 맞물리면서 도시정치경제학은 설 자리가 갈수록 더 협소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자본주의가 건재하고, 그 모순이 공간적으로 계속 표출되는 한, 이를 독해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도시정치경제학적 사고와 접근은 앞으로도 계속 유의하고 유효하다. 도시정치경제학은 도시현상을 넘어 공간의 본질을 보고자하기 때문에 도시에 관한 계몽주의적 사유, 나아가 진보적 변혁을 꿈꾸고자 한다. 이 자체만으로도, 도시정치경제학은, 대도시집중, 집값·땅값 폭등, 강남북 불균형, 양극화, 갈등 등의 문제에 대해, 도시에 관한 어느 학파보다 올곧게 진단하고 처방하는 안목을 제공해준다. 제도권의 보수적인 도시담론에 의해 배제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도시정치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오적 믿음, 즉 ‘도시의 진실에 관한 믿음’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으리라 본다.

조명래 / 단국대·도시지역계획학


필자는 서섹스대에서 ‘국가 주도 자본축적과정의 지역간 격차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도시 서울, 어떻게 만들것인가> <현대사회의 도시론>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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