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1:20 (금)
‘편리’ 얻고 ‘쾌적’ 잃어버린 비인간적 도시로 변해
‘편리’ 얻고 ‘쾌적’ 잃어버린 비인간적 도시로 변해
  • 김일태 / 서울시립대·도시행정학과
  • 승인 2007.07.02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 _ 도시연구 현황과 쟁점] ③ ‘행정’차원에서 본 도시

행정이란 “정부의 목표 즉 국민(시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인적·물적·제도적 자원을 조직화하고 관리하는 활동”이다. 그리고 도시행정이란 시민들 각자가 행복에 필요한 요소들을 추구하도록 “바람직한 시민의 생활환경을 창출하고 유지·관리하는 활동”이다.
시민들의 생활환경은 위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크게 나누어 인공시설환경(주택, 공장, 상가, 도로 및 공공시설 등), 사회적 환경(제도, 조직), 자연환경(물, 공기, 토양, 녹지 등)의 세 개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도시문제란 이러한 환경에 문제가 발생하여, 시민들의 생활이 불안하고, 건강하지 못하며, 비능률적이고, 불편·불쾌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우선 인공시설환경의 경우 인구증가에 따라 각종 도시시설의 용량이 부족하게 되고, 그로인해 각종 혼잡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주택문제, 토지문제, 교통문제, 공공시설의 부족문제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적 환경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는 실업 및 빈곤과 더불어 빈곤, 범죄, 사기, 마약, 알코올중독, 이혼, 미신 및 슬럼 등의 각종 사회병리현상 그리고 각종 사회적 갈등문제가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자연환경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는 각종 환경오염(대기, 수질, 쓰레기, 소음·진동 등)과 과도한 개발사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녹지부족현상 등이다.
도시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도시계획’을 수립·집행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각종 도시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도시정책’을 전개해 나간다.
그렇다면 20세기 중반 국민국가수립 이후 우리의 국가와 도시정부들은 과연 우리의 도시를 바람직한 시민의 환경으로 조성해 왔는가? 최근에 자주 듣는 ‘살기 좋은 도시’, ‘인간의 도시’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 그러하지 못했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셈이다. 
바람직한 도시란 “그 안에 사는 시민들의 생활이 안전하고, 건강하며, 편리하고 능률적이며 더 나아가서 쾌적하게 이루질 수 있는 도시”를 말한다. 그러나 비교적 도시개발이 잘 이루어 졌다는 서울을 비롯한 일부 대도시에서의 시민생활은 다른 지역보다 편리하고 능률적일지는 모르지만, 전혀 쾌적하지 못하며, 그나마 기본적인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도시란 인간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실체이고 마땅히 그 도시의 주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부터인가 자본과 자동차 등 물질에게 주인의 자리를 내주고 인간은 단지 위의 두 주인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하는 ‘비인간적인 도시’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도시가 이렇게 된 데에는 다름과 같은 세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첫째는 압축적 경제성장을 통해 근대화를 달성하려는 국가발전정책의 이념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국가는 투자의 효율성이 큰 제조업과 도시지역에 집중투자를 하여 국민경제를 성장시키려는 지역 간·산업부문간 ‘불균형성장전략’을 채택하게 되었고, 도시들도 ‘국가도시화정책’에 의해 시민의 생활공간이 아니라 경제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생산의 공간’으로 개발되어 왔기 때문이다. 좁은 수도권과 동남권의 도시지역에 많은 공장과 상가가 덜 집중하게 되고, 그곳에서 일할 많은 노동력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공동주택(아파트) 중심의 고밀도의 도시개발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급속히 증가하는 사회속도를 담아내기 위해 많은 도로를 만들고, 차량의 통행이 신속히 이루어지도록 사람들은 육교나 지하도를 오르내리는 비인간적인 도시에 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지난 반세기에 걸친 능률지상주의 행정에 의해 유도된 도시개발이 오늘날 인간이 중심이 아닌, 자본과 자동차 즉 물질이 중심이 되는 도시로 만들어 온 것이다. 그리고  심각한 환경파괴와 대형재난의 위험을 안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도시들은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말하는 ‘위험사회’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둘째는 지난 세기 지방자치제의 미실시로 도시행정의 영역이 협소하게 규정된데 기인한다. 위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공시설환경의 조성(도시개발) 만이 도시행정이 해야 할 일이고, 나머지 사회적 환경개선과 자연환경의 보전은 국가의 사무라 해서 중앙정부의 책임으로 돌리고 국가가 지시하는 기관위임사무로만 처리할 뿐이었다. 그로인해 자치권이 미약했던 도시행정가들은  좋은 사회를 만들고 좋은 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자신의 책무도 아니고, 또 그럴만한 권한과 재정적 여력도 없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민선자치가 실시된 지금은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시행정은 도시기반시설의 공급을 위한 ‘도시개발’이 전부라는 인식하에, 사회적 환경의 개선이나 자연환경의 보전에 소홀했거나 오히려 그들을 악화시키고 파괴하는 개발에 몰두해온 것이 사실이다. 
셋째는 도시와 도시행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도시를 건설하는 기술(토목과 건축 등)의 개발과 심각한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통과 환경공학 같은 사후대응적이고 처방적인 기술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유기적인 복합체인 도시에서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도시문제를 어느 한 측면에서만 해결하려했기 때문에,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하나의 도시문제를 해결하면 그 것이 또 다른 도시문제로 전가되는 시행착오를 거듭해 온 것이다.
즉  도시와 도시문제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관점에서 연구하여, 도시문제의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면서 이미 발생한 문제들에 종합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지방자치제가 정착된 이 시점에서 시민들의 욕구는 단순히 능률적이고 편리한 도시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도시 그리고  삶의 질을 높여 줄 수 있는 인간중심의 쾌적한 도시를 요구하고 있다. ‘생태도시’, ‘문화도시’라는 용어들이 부상하는 것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한편으로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닌 도시간의 경쟁시대가 되어, ‘혁신도시’, ‘창조도시’ 등의 용어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의 도시행정은 지난 20세기 개발 년대의 행정에서 탈피하여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폭넓은 역할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선 도시행정의 철학이나 추구이념면에서 개발과 능률만을 중시하던 태도에서 탈피하여, 공익의 관점에서 사회적 형평성과 삶의 질까지 확보해야 한다는 자세로 도시를 개발하고 관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도시개발과 재정비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의 철저한 환수를 통해 도시사회의 정의를 확보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도시개발과 환경보전의 조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새로운 행정이념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도시행정의 영역면에서 도시개발과 폐기물처리 등에 한정시켰던 중앙집권시대의 행정책임에서 벗어나, 좋은 인공시설환경의 조성과 관리는 물론 바람직한 도시사회의 환경의 조성과 자연환경보전에도 도시정부의 책무가 있다는 지방분권과 자치시대에 걸맞은 도시행정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자면 사회적 자본의 축적을 위한 공동체의 육성과 환경오염과 파괴의 사전 예방적 통제를 위한 ‘지방협치’의 구축 등도 도시행정의 새로운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들이다. 도시행정은 시장에 빼앗겼던 자신들의 영역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시민참여의 메커니즘을 충분히 활용하여 참된 의미의 거버넌스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시와 도시행정(계획 및 정책)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를 토대로한 보다 과학적인 도시행정이 이루어져 한다. 지금까지 필요에 따라 산발적으로 이루어져 오던 각종 도시연구들을 통합·보강하여, ‘도시과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학문으로 체계화시켜 나가고 그곳에 투자하는 관학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도시마케팅를 강조하면서 ‘창조도시’로 거듭나고자 하는 오늘날의 각 도시정부는 지금까지의 도시공학적 연구개발에서 더 나아가 인문·사회적 분야가 결합되는 도시행정연구에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손쉽게 외국의 사례나 벤치마킹하는 자세로서는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경쟁시대에서 잘해야 2, 3등에 머물고 만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김일태 / 서울시립대·도시행정학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도시정부의 성과측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도시학개론> 등 다수의 공저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