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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혼을 불어 넣는 공간
[나의 강의시간]혼을 불어 넣는 공간
  • 김종화/덕성여대·국제통상학
  • 승인 2007.07.09 10: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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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다니던 1960년대에는 이 나라의 경제적 후진성 탈피가 지상명제로 여겨졌고, 이러한 사명감에 사로잡혀 나는 경제 관료가 되었다. 그러나 경제기획원에 근무하면서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학문적 기반이 너무나 취약하다는 한계성을 절감하고 이를 보완·극복해 보고자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지 어언 4반세기를 넘겨 평생직장이 되어 버렸다.
돌이켜 보니 나의 강의시간은 그래도 내 인생의 좌우명인 성실한 삶을 실현하는 공간이었고 강의하는 매 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보람의 장이었다고 기억된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60년대 대학사회의 강의문화는 황폐하기 그지없었다. 그 당시 정치·사회적 분위기에 편승되어 학생들은 학문에 정진하기보다는 군사독재 정치체제에 대항하여 민주화 운동에 몰두하였고, 교수들에게서도 강의에 대한 진지한 사명감을 찾기 힘들었다고 기억한다. 이러한 여건에서 학문적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졸업한 우리 세대는 뒤늦게 학문에 대한 아쉬움이 팽배하였고, 더구나 학계로 발을 디딘 나는 한풀이식으로 수업에 열정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다.
강의시간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갔고 엄청난 집중력으로 기(氣)를 쏟아 부으며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나름대로 열정적인 강의를 펼쳐 나갔다. 주어진 수업시간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하기 위하여 나의 뉴잉글랜드대 유학시절 교수였던 피콕(Peacock)교수의 예를 소개해 가면서 준엄한 수업태도를 주문하고는 했다. 수업시간을 1분의 오차도 없이 혹독하게 채우는 바람에 어느덧 나에게는 콕(Cock) 찔러도 피(Pea)도 안 나온다고 해서 ‘Peacock’라는 별명이 붙어 버렸다.
한 치의 유연성도 없는 강의에 때로는 학생들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였지만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제자들이 가끔 보내오는 엽서 한 장에 적힌 “직장생활이 고달프고 견디기 힘들 때가 많지만 선생님의 강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면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는 한다” 는 글귀에서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기도 했다.
한편 강의 방식에 있어서 나는 지금까지 강의노트나 교과서에 의존하는 수업을 하지 않았고, 정보화시대의 교수법으로 등장한 영상매체와 같은 학습도구들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수업시간에 강의노트에서 벗어나야만 노트나 교과서에 끌려 다니지 않고 내가 머릿속에 그리는 그림대로 강의를 독자적으로 전개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교수법이 개발되고 교육매체를 활용한 학습법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관에서 영화 한편 보듯이 불을 끄고 학생들을 자막에 집중시키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나의 교육철학에 도저히 맞지 않는다.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가슴과 가슴이 대화하는 살아있는 수업이 진정 교수가 가진 혼을 전달하는 수업이지 학습도구에 의존하는 수업은 조금의 효율성은 있을지언정 생명력을 가진 수업이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교수학습법의 권위자인 이성호 교수가 “교수는 학생들에게 심어줄 혼이 존재하느냐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며 전달방식은 교수 각자의 개성에 맞는 독자적 방식에 맡기면 된다”고 강조하던 기억이 난다.
끝으로 나의 소박한 소망이 있다면, 나의 강의를 듣고 졸업한 학생들이 내가 수업시간에 강조해온 소중한 가치, 즉 성실성과 정의로움을 삶의 지표로 삼아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떳떳한 삶을 살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변혁기마다 눈앞의 이익을 좇아 기회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지식인들을 허다하게 보아 왔다. 강의실에서 펼쳐 온 나의 작은 외침이 앞으로 이 사회를 짊어지고 나아갈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적 정도와 정의를 일깨워 주고 바로 잡아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해 준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김종화/덕성여대·국제통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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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타 2007-07-09 14:05:40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오세정 교수 사진을 올려 놓고 김종화 교수 글을 실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