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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개 국립대 ‘자율성’ 확대 … 총장 권한 늘려
85개 국립대 ‘자율성’ 확대 … 총장 권한 늘려
  • 이기라/프랑스통신원 소르본대 정치학 박사과정
  • 승인 2007.07.2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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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_사르코지 대통령 당선 이후 프랑스 대학개혁

지난 4월 프랑스 대선에서 니콜라 사르코지의 대통령 당선과 6월 총선에서 대중운동연합(UMP)의 재집권 직후, 세제개편과 함께 가장 먼저 내세우고 있는 개혁분야가 바로 국립대학(universit? 개혁이다. 프랑수아 피용(Fran뛬is Fillon) 총리는 이것을 “입법부 임기 중 가장 중요한 개혁”이며, 이번에 제출한 개혁안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선언했다. 그만큼 프랑스에서 대학개혁은 긴급하게 요청되는 사안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재집권한 우파정부의 개혁의지 또한 여느 정부보다 강하다.
6월 19일 고등교육 및 연구처 장관 발레리 페크레스(Val럕ie P럄resse)에 의해 마련된 “새로운 대학 구성”에 대한 법률초안이 교수노조들과 학생조직들에게 제출된 이래, 6월 27일부터 8일간 국무회의 검토를 거쳐 결국 7월 13일 새벽(현지 시각)에 상원을 통과했다. 급박한 일정으로 진행된 이 과정에서 “대학들의 자유와 관련된 법안(projet de loi relatif aux libert럖 des universit럖)”으로 재명명된 이 법안은 현재 7월 24일부터 시작되는 하원에서의 심의, 의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1986년과 2003년 이미 두 차례나 교수, 학생들의 강한 반발로 좌절된 대학의 자율성 확대가 이제 8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현재의 85개 국립대 체제를 기초한 1968년 6월의 에드가 포르(Edgar Faure)법만큼이나 근본적인 개혁을 함축하는 것으로 평가 받는 이 법안의 골자는 40년 가까이 뜨거운 감자였던 국립대학들의 자율성 확대이다. 사실 1968년 에드가 포르법이나 1984년 사바리(Savary)법 모두 대학의 자율성 원칙을 내세웠다. 유럽대학의 역사에서 대학의 자율성이란 전통적으로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종교와 권력으로 부터의 자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프랑스에서 기회의 평등과 교육의 공공성 확보차원에서 대학운영상의 자율성은 상당히 제한되어 왔다. 따라서 80% 가까이 재정지원을 받는 국립대에 국한되는 프랑스의 대학 자율성 논의는, 사립대가 다수이며 이미 그 자율성이 극대화되어 있는 미국이나 그에 버금가는 한국의 대학시스템 상에서 거론되는 자율성과는 의미가 같을 수 없다.

1984년 이후 대학정책 변화 없어 ‘개혁’ 절실
프랑스의 대학개혁 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랑스만의 독특한 고등교육 및 연구 시스템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프랑스에서 국립대학은 초·중·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일반 공교육의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의 위상을 가진다. 따라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중학교를 가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고등학교를 가듯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 학문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실용적이고 특수한 분야의 전문 인력을 키워내기 위해 따로 만들어진 것이 에꼴이다. 그중에서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우수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훌륭한 국립 에꼴들을 그랑제꼴(grandes 럄oles)이라 부른다.
이러한 환경에서 대학들은 학생선발권이 부여된 그랑제꼴 때문에 자신들이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아 왔다. 또한 대학들이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국립농학연구소(INRA),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 등 대규모 국립연구기관들과 연구영역의 주도권을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대학들처럼 연구영역 전체를 주도하고 싶어 한다. 많은 우파 정치인들과 대학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프랑스의 독특한 고등교육 및 연구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경쟁 속에서 개별 국가들의 고유한 시스템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매겨지는 세계대학순위에서 경쟁력을 높여야 하며,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이 그 대안이라고 주장해왔다.

총장 임기, 5년 단임제서 4년 중임제로 늘려
이번 페크레스의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면, 5년 단임제에서 4년 중임제로 대학 총장들의 임기가 늘어나고, 현재 최대 60명이던 행정위원회를 20명까지 축소시켜 실질적인 대학운영의 ‘수장’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국립대학들은 그들의 예산과 국가 재산인 인적자원과 부동산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지금까지 대학은 국가재산으로서 예산을 마음대로 편성할 수 없었고, 새로운 직위나 부서를 만들거나 없앨 수 없었으며, 캠퍼스 건물을 사고 팔 수 없었다). 이제 국가는 각 대학들과 체결하는 다년계약을 통해 지출의 가이드라인만을 정하게 된다.
5년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모든 국립대학들은 이 새로운 개혁안을 적용받게 된다. 대학관계자들은 대체로 만족해하고 있으며, 다만 사르코지 대통령이 대선기간 동안 약속한 재정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피용 총리는 2012년까지 국립대학들에게 5백만 유로를 추가로 지원할 것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이것은 5년 동안 50%의 예산증액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개혁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급변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프랑스는 1984년 사바리 법 이후 20여 년간 대학정책에 거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확대를 위한 재원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문제는 개혁의 방향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6월 20일 TF1 뉴스와의 대담에서 개혁이 각 대학들의 자발성에 기초함을 강조했다. 즉, 대학에 따라 개혁안을 따를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개혁안을 따르지 않을 경우 새로 지원하기로 한 추가예산을 받지 못하게 된다. 결국 대학들의 자발성에 기반을 둔 자율성 확대가 아니라, 모든 대학이 새로운 정부정책에 따라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학생들의 경우, 기존에 bac+5(고등학교 졸업인증시험인 바칼로레아 획득 이후 5년째)과정부터 적용되던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석사과정(bac+4)부터 적용하도록 한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행정위원회의 구성이 축소되면서 학생대표자의 참여가 25%에서 15%로 줄어들고, 7명의 외부 인사를 포함시키고 이중 두 명은 재계인사로 구성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서 학생들과 교수들 모두 불만을 표하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총장의 권한이 늘어나고 대학이 ‘기업화’되는 현 개혁안의 방향성에서 우려되는 등록금인상 금지조항을 삽입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학간 불균등·서열화 심화될 것”
하지만 이번 개혁안의 문제는 좀 더 근본적으로 현재 프랑스 고등교육의 위기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로부터 출발한다. 항상 전국 85개 국립대학들이 모두 평준화되어 있다고 말해지지만, 실제로는 이미 심한 불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조스팽정부시절 교육부장관을 지낸 클로드 알레그르(Claude All럊re)는 이를 “85개 매장에서 똑같은 서비스를 받는 맥도날드 대학의 신화”라고 불렀다. 한 예로 자연과학으로 특화된 파리 6대학(마리 퀴리)의 연구자들은 25만 편의 논문에 인용된데 반해 디종대학은 단지 2만 5천 편에 불과하다. 더구나 국립대학과 그랑제꼴이라는 프랑스의 독특한 이원시스템은 이러한 불균형을 가증시킨다. 결국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학개혁 방향은 경쟁력 향상이라는 미명아래 대학들 간의 불균등과 서열화를 급격히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이것은 대학들이 경쟁과 개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흡수되는 것이며 프랑스 대학시스템이 강하게 지켜온 공공성의 전통을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프랑스든 한국이든 대학개혁을 고민할 때 우리는 여전히 한 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 이미 진부한 물음이 되어 버렸지만 - 근본적인 물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학이 사회를 반영할 것인가, 아니면 대안적인 사회를 준비하고 선도할 것인가?

이기라/프랑스통신원 소르본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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