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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中國 散策 ]중국인 발길 잦아지는 ‘장백산’
[이중의 中國 散策 ]중국인 발길 잦아지는 ‘장백산’
  • 교수신문
  • 승인 2007.09.1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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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백두산에서 중국인이 자랑하는 ‘장백산’으로 변신

얼마 전 한국의 한 공중파 방송이 한국의 대학생들이 연변의 조선족 대학생들과 함께 백두산에 올라 플랜카드를 흔드는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보는 순간 조금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중수교 직후인 15년 전 쯤의 일이었다면 몰라도 지금이 어느 때인가. 요즘은 여름 방학이면 초등학교 학생도 가는 곳이 백두산이다. 여름 한 철, 중국 연변자치주 수도인 연길에는 백두산 관광객으로 호텔, 여관이 초만원을 이룬다. 대학생들의 역사 탐방이라고 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겠지만, 그렇더라도 북한 쪽 루트를 따라간 ‘백두산’ 등정이라면 또 모를까 싶었다.
나는 백두산 천지에 네 번 올라가 보았다. 복스럽게도 날씨가 화창하여 매번 천지를 볼 수 있었지만 한번은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잠시 서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거의 엎드려서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천지까지 올라가지 않고 그 밑의 장백폭포까지는 4~5회 더 가본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 정월 초하루의 이른 아침을 백두산에서 맞기도 했다.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장백폭포가 훤히 올려다 보이는 천상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거세게 날리는 눈보라 속에서 지나가는 해의 마지막 그믐날과 새로 시작되는 한 해의 첫날을 보냈다.
비록 중국 땅을 거쳐서 가보는 백두산이지만 갈 때마다 가슴이 이상하게 설레고 찡한 것이 사실이다. 천지의 파란 물을 보고 있으면 형용할 수 없는 격동 같은 것이 솟구친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백두산엔, 우리 민족만이 느끼는 원형질적인 영감 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혼자 생각해 볼 따름이다. 나는 친구나 후배들에게 가능하면 한 번 백두산과 천지를 다녀오라고 권하고 있다. 백두산 산행을 이야기하다가 천지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무는 분들이 있다. 빠듯한 여행 일정 때문에 일기불순으로 천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천지는 사람의 힘으로 오를 수는 있어도 하늘이 보여주지 않으면 내내 헛고생이라는 농담조차 있는 것이다. 
대체로 한국 관광객들은 연길을 통해서 백두산을 찾는다. 연길에 가려면 항공편이 편리하다. 직항도 있고, 북경, 대련, 심양, 장춘을 거쳐서 다시 비행기 편이나 육로로 연길로 가기도 한다. 배편도 있다. 강원도 속초항에서 출발, 러시아의 자르비노 항구와 중국의 琿春을 거쳐서 연길로 가는 코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코스들도 조금씩 변화가 예상된다. 백두산 관할이 길림성으로 넘어가고, 연길이 아닌 연길보다 가까운 백산이라는 도시에다가 새로이 비행장을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길시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도인데 장차 이곳을 거치지 않고 중국 나라 안팎의 손님들이 중국 장백산을 찾게 되는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근래에 와서 장백산이 중국 명산의 하나로, 특별한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중국 장백산은 한국인의 ‘민족 감정’을 정화시키는 한국인의 ‘백두산’에서 중국인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의 하나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길림성 산하의 장백산 보호개발구 관리위원회는 유네스코에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신청했으나 기각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유네스코 신청을 빌미로 백두산 출입구역에 세워진 한국인 소유의 호텔 등의 철거를 명령했고, 일부는 강제로 철거하기까지 했다. 한편으로 중국인 소유의 식당은 더 크게 키워서 성업 중이다.
어떤 통계를 보니 최근 장백산을 찾는 관광객의 70%는 중국인이고 한국인은 30%라고 한다. 그러면 한국인 관광객이 갑자기 줄어든 것일까. 한국 인구는 4천500만이지만 중국 인구는 13억이다. 인구 비례로 따진다면 역시 한국인이 더 많이 백두산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현재의 연길공항은 국제공항이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대부분이 연길 공항을 이용해 장백산을 찾는다. 그런데 왜 새로 백산시에 공항을 짓는 것일까. 여러 말들이 있지만, 아마도 더 많은 중국인에게 손쉽게 장백산 구경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북한 당국과 중국은 이미 오래 전에 백두산을 반씩 나눠 가지는 것으로 협정을 맺었다. 엄격하게 말하면 반은 중국 ‘장백산’이고 반은 한국 ‘백두산’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에겐 북한이 관할하는 백두산 등정 길이 막혀 있다. 극히 제한된, 특정한 손님에게만 북한 당국은 백두산 산행을 허가하고 있다. 이런 각박한 현실에서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중국 땅의 ‘장백산’ 정상에서 ‘백두산’ 천지를 보는 감격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중국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장백산을 다녀갔다. 한때 중국의 최고위 지도자였던 등소평, 강택민도 장백산을 다녀갔다고 한다. 그들은 내친 김에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인 防川도 순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훈춘에서 두만강 물줄기를 따라 하류를 향해 가다보면, 요즘은 잘 보이지 않은데, 한 때 재미있는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커다란 아치형의 현수막엔 ‘一眼望三國’이란 글자가 선명했다. 한 눈에 세 나라를 본다는 뜻이다. 두만강 하류를 향해서 길을 달리면 왼쪽에 길게 철조망이 보인다. 철조망 넘어가 러시아 땅이다. 오른쪽으론, 두만강이 유유히 흐른다. 강줄기의 한 가운데가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이다. 중국 땅 안에서 러시아와 북한 등 세 나라를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만큼 예민한 지역이다.
지난 8월 29일, 등소평의 막내 딸 등남이 연길을 찾았다. 중국과학기술협회 상무부주석이 그의 현직이다. 사진에서 보는 그는 작은 키에 둥글둥글하고, 웃고 있는 모습이 귀여운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도 50을 넘었다. 그의 언니 등용이 쓴 『나의 아버지 등소평』이란 책엔 그들 자매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와 동생은 중경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우리 둘은 진짜 사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나의 동생은 주은 아이다. 그때 우리 집엔 이미 1남 3녀였는데 중국의 인민소학교 교장으로 계시던 어머니가 다섯째 아이를 임신했다. 어머니는 그 당시 아주 바빴기 때문에 어린애를 또 하나 낳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제2야전군의 위생부장이 ‘애가 사내애겠는데요’라고 말하자 그 바람에 등용이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되었다.”
신문만 보아서는 그의 여행 목적이나 일정이 뚜렷하지 않았지만, 장백산도 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루가 다르게 장백산은 중국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산이 되어가고 있다.

□ 중국은 백두산 관광 루트를 개발, 더 많은 중국인이 ‘장백산’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진은 중국쪽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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