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4:40 (수)
[교수생활백서] ③학장이나 학과장이 잡무를 시킬 때
[교수생활백서] ③학장이나 학과장이 잡무를 시킬 때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7.09.10 1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순발력 발휘해 피하거나 정공법으로

새학기가 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강의준비 시간이 부족해 발을 구르는가 하면 지갑 여는 모습 한 번 본적 없는 동료교수에 짜증이 난다. (교수생활백서 1~2 참조)
이번엔 학과장(혹은 학장)이다. 여러모로 강적이다. 지난학기만 해도 동료교수였던 이가 학과장을 맡게 됐을 때, 약간은 껄끄러운 사이인 학장을 새학기에도 봐야할 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피하고 싶다.
그런데 자꾸 나에게 잡무를 시킨다. 강의도 바쁜데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도 될 일이 자꾸 나에게 떨어진다. 무엇보다 학과장이 해도 될 일을 ‘굳이’ 나에게 맡길 때, “피하고 싶다.”
그러나 많은 교수들이 그냥 시키는 대로 한다. 신임교수 특히 ‘젊은’ 신임교수는 어쩔 수 없다. “대학에 행정업무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는 푸념이 들린다.
신참 시절이 까마득하건만 여전히 부탁에 순순히 따르는 이도 있다. “우리 학과 교수들은 천사에요. 젊다고 잡무를 뒤집어씌우는 일이 거의 없어요.” 한 교수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학과장이 카리스마를 발휘하고 있다고도 해석된다.
요령이 생기다보면 피하는 법을 자연히 익힌다. 업무지시를 내리려는 학과장 앞에서 빠른 시간 안에 그럴듯한 계획을 만드는 순발력을 발휘한다.
출장, 세미나 등 학과 내 다른 교수도 다 알 법한 일정을 꾸미는 일은 금물. 학생 면담, 보충수업 등 개인적인 사유를 내세운다. 집안에 급한 일이 있다는 ‘더 개인적인’ 사유도 설명만 잘 한다면 무난하다.
다른 교수는 “억지로 하는 인상을 풍기며 ‘시키는 일은 잘 못 해낸다’는 인상을 줬더니 그 다음부터 나에게는 잘 안 시키더라”고 말한다. 미운털이 조금 박히더라도 몸과 마음이 편하려면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라는 조언이다.
“나는 이 일을 맡기 어렵다. 왜냐하면”으로 시작해 학과장을 설득하는 정공법을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하다 보면 오히려 일이 쉽게 풀린다고. 
사실 시키는 사람도 내심 미안해한다. 학과장을 맡았던 한 교수는 “학과장으로서 시킬 때는 미안하고 평교수로서 잡무를 맡을 때는 부담스러웠다”며 “교수들은 잡무에서 도망갈 권리가 있고 시키는 사람은 미안해할 책임이 있다”고 전했다.
더군다나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받기 위한’ 업무라면 그냥 눈 딱 감고 맡도록 하자. “이의제기하면서 못 하겠다고 버티다간 자칫 동료 교수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학과 교수들의 의견이 하나가 될 가능성은 없다.” ‘나랏돈’에 얽매이는 것이 싫지만 현실적인 대처법인 셈이다. ‘다른 교수도 피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이 그들은 학과장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는 사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