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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생활백서]④의욕적으로 준비한 강의가 폐강됐을 때
[교수생활백서]④의욕적으로 준비한 강의가 폐강됐을 때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7.09.16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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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줄고 자책감 밀려오지만…

폐강 통보 절차는 간단하다. 학과 행정실에서 교수에게 “정원을 채우지 못 해 폐강됐다”고 개별 연락한다. 짧은 통화지만 끊고 나면 씁쓸한 마음은 꽤 오래 간다. 그 때부터 ‘왜 폐강됐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학생들이 좋아할만한 강의가 아니라서, 필수과목이 아니라서 등 ‘객관적으로’ 폐강 이유를 분석해 보지만 자책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내가 못 가르쳐서 폐강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막막해지더군요. 예전 수업의 강의평가서도 한 번 더 들춰보게 되고….” 누구나 한 번씩 겪는 폐강 경험이지만 막상 겪고 나면 부쩍 자신감이 줄어든다.

특히 시간강사에게 폐강은 실업과도 같다. “실컷 준비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폐강됐다”는 말엔 허탈감이 묻어난다. ‘베테랑’ 시간강사도 자신이 맡은 과목이 폐강될까봐 불안해 수강신청 게시판에 슬쩍 들어가 본 경험을 전한다.

“늘 90명 정원을 채우던 과목이 있었는데 작년에 수강신청 게시판을 보니 이틀이나 지났는데 10~20명밖에 없더군요. 불안해서 학과 사무실에 전화 해봤어요. 그쪽에서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면서 필수과목과 시간이 겹쳐서 그런 것 같다고 했어요.”

학생들 사이에선 ‘A 수업이 재밌다’ 보다 ‘A 교수의 수업이 재밌다’는 말이 입소문을 탄다. 학점을 잘 주는 수업을 선호할 거라 예상하지만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잘 가르치는 교수를 찾는다.

영어강의는 자주 폐강될까.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영어강의가 폐강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교수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경제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이론수업을 지루해 하기 때문에 중간에 반드시 재밌는 얘기를 하고 넘어 간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농담을 할지도 미리 생각 한다”며 웃는다. 농담도 썰렁한 농담이면 안 된단다. ‘품위를 지키면서 재미를 줄 수 있는 농담거리’를 개발하는 것도 새 학기 수업시작 전 해야 할 일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폐강되는 수업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법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법학 과목이 취업과 연관돼 있어 그런지 학생들이 많이 듣는다”며 “오히려 전공수업에서 로마법과 같은 특수법은 폐강 된다”고 지적했다.

의욕적으로 준비한 수업이 폐강되면 아쉬움이 오래 간다. 최근 한 대학에서 30명이 수강신청한 과목이 폐강되기도 했다. “교수들 사이에서 ‘정말 너무하다’는 불만이 오고갔어요. 30명이 적은 숫자인가요.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죠.”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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